새벽에 세운 하루

by 정성균

하루의 뼈대


새벽 네 시의 공기는 차고 정직하다.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눈꺼풀이 먼저 들리는 것은 몸이 기억하는 일정한 흐름 덕분이다. 침대에서 내려와 발바닥에 닿는 연회색 석재 바닥의 서늘한 감촉. 그것은 몽롱한 정신을 깨우는 첫 번째 신호다. 단단하고 매끄러운 질감 위로 새벽의 냉기가 얇게 내려앉아 전신으로 퍼진다. 정교하게 맞물린 바닥의 가지런한 바탕이 발가락 끝에 선명하게 감겨온다. 욕실로 향해 수도꼭지를 틀면 투명한 물줄기가 손등을 타고 부드럽게 부서진다. 얼굴을 적시는 물의 온도는 매일 조금씩 다르지만, 그것을 받아내는 피부의 느낌만은 언제나 또렷하다. 세안을 마치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면 비로소 하루를 지탱할 골격이 꼿꼿이 선다.


거울 속에는 어제보다 조금 더 뚜렷해진 주름을 가진 사내가 서 있다. 눈가에서 시작해 뺨의 곡선을 따라 길게 자리 잡은 선들이 조명 아래 그대로 드러난다. 집중하며 글을 쓸 때마다 이마에 깊게 패던 자국은 이제 지워지지 않는 선명한 흔적이 되어 얼굴에 남았다. 사내는 가만히 멈춰 서서 거울 속을 응시한다. 검지로 눈가에 머문 굴곡의 깊이를 천천히 따라가 본다. 손끝에 걸리는 거친 질감을 통해 자신의 시간을 확인하고, 그 고요한 확인을 거치며 오늘이라는 새로운 일상을 맞이한다. 그는 주름진 자신의 얼굴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한다. 시선이 단단하다.


서재 문을 열면 밤새 갇혀 있던 종이 냄새와 서늘한 정적이 섞여 코끝에 머문다. 책상 위에 놓인 스탠드 스위치를 올리면, 노란 불빛이 좁은 원을 그리며 백지 위로 떨어진다. 종이의 표면은 건조하고 매끄럽다. 갓 볶은 원두를 꺼내 그라인더에 담는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원두의 단단한 질감이 이내 경쾌한 소리를 내며 고운 가루가 된다. 묵직한 커피 향이 뜨거운 물과 만나 방안을 채우기 시작한다. 컵을 타고 전해지는 온기는 손바닥을 거쳐 온몸으로 퍼진다. 아직 닿지 않은 내일을 기다리는 일은 맑은 물로 잔을 채우는 정성과 닮아 있다. 연필 깎기 손잡이를 돌린다.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무껍질이 말려 나가고, 예리하게 날을 세운 흑연 심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 발을 딛고 선 지면의 단단한 질감을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일에서 모든 것은 시작된다. 연필을 고쳐 쥐는 손가락의 마디에 힘이 들어간다. 첫 문장을 적기 위해 종이 위에 연필심을 올리면 가느다란 저항감이 느껴진다. 그 저항을 뚫고 흑연이 종이의 바탕을 파고드는 순간, 머릿속 구상은 비로소 손끝의 확실한 무게감으로 치환된다. 책상 모서리에 놓인 시계의 초침이 차분하게 움직인다. 그 소리에 맞춰 호흡을 가다듬는다. 하얀 백지 위를 흐르는 연필심의 서늘한 촉각이 새벽 공기와 섞여 천천히 스민다.


침묵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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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생각과 마음의 결을, 책 속 문장과 함께 조용히 전합니다. 스친 만남이 믿음으로 이어져 각자의 하루에 힘을 더하는 장면들을 담담히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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