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가 숨을 틔운다. 단단히 얼었던 땅이 부드럽게 녹아 흐르고, 그 균열 사이로 연한 풀잎이 하나둘 고개를 내민다. 기어이 찾아온 봄의 전령들이다.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서 나는 정돈된 마음으로 자리에 바르게 앉는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정면을 응시하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분실한 채 살아가고 있는가.
생명이 깨어나는 시기라지만 대중의 의식은 되레 깊은 겨울잠에 빠져들고 있다. 보행자들의 시선은 대부분 지면을 향한다. 고개는 아래로 꺾여 있고 손에는 얇고 매끄러운 화면이 들려 있다. 엄지손가락이 유리 평면을 쉼 없이 밀어 올리는 동안, 수많은 정보와 잔상들이 신속하게 스쳐 지나간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생동하는 생생한 소리보다 손바닥 위 작은 장치가 뱉어내는 인위적인 신호에 본능이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밖에서 밀려드는 자극이 마음의 자리를 채울수록, 홀로 물음을 붙들던 시간은 소리 없이 흩어진다.
왜 우리는 이 유혹에서 쉽게 탈피하지 못할까. 깊게 고민하는 수고로움보다 안락한 수용을 택하는 것은 본능에 가깝다. 성찰의 행위는 아주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지만, 디지털 도구가 보여주는 강렬한 영상은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며 우리를 익숙한 편안함에 가둔다. 수동적인 태도에 젖어들수록 복잡한 문제를 들여다보는 일은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신속한 결과에 길들여진 의식은 긴 문장을 따라가는 인내심마저 잃어간다. 깊이를 상실한 시대는 그렇게 고요히 우리 곁에 도착했다.
기술의 발전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우리는 이전 세대가 상상하지 못했던 속도로 지식에 접근한다. 며칠이 걸리던 탐색이 몇 초 만에 끝나는 세상이다. 그러나 정보에 닿는 속력은 빨라졌을지언정 그것을 충실하게 제 것으로 만드는 공정은 생략되었다. 자료는 넘쳐나지만 그것을 거를 기준이 없다면, 우리는 타인의 결론을 자신의 믿음이라 착각하며 살아가게 된다. 성찰은 멀리 가는 능력이라기보다 깊이 내려가는 힘이다. 속도를 높이기보다 방향을 바로잡는 데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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