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에 접어들면, 보통 결혼 후 20여 년의 시간이 지나고, 자녀들도 대부분 성인이 된다. 남편과 맞벌이로 아직 한창 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업주부의 경우 이 시기부터 자유시간이 많아진다. 그로 인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나 동창을 만나고 여러 가지 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모임은 처음에는 친구를 만나서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횟수가 거듭될수록 누군가의 자랑, 누군가의 불평으로 모임의 색깔이 퇴색하곤 한다.
누군가의 자랑은 어느새 다른 이의 시기, 질투로 변한다. 처음에는 ‘너, 참 대단하다’고 칭찬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반복되면 어느새 모임은 불편한 자리로 변한다. 내가 이런 애기나 들으려고 모임에 나온 것이 아닌데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정말 50대 이후로는 모임에 참여할 때, 이런 기분이 들 때가 자주 있다. 40대까지만 해도 누군가 자랑을 하고, 누군가는 질투나 불평을 하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넘기며 모임을 이어 갔다면, 50대가 지난 후부터는 그런 게 싫어진다.
인생의 반을 살아와서 그런지 이젠 모임을 하는 그 시간마저도 헛되게 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왜 굳이 나의 귀한 시간에 자기 자랑만 쏟아내고,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사람을 만나야 할까 하는 고민이 시작된다. 자랑뿐 아니라 습관적인 불평과 불만 또한 아주 불편하다.
삶이란 나의 선택이고 내가 살아가는 것인데, 왜 본인의 처지를 불평하고 불만스러워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인생이 꽃밭인 사람이 그리 많을까. 인생이 항상 우상향만 하고 좋은 일만 가득할 수 있을까.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부유한 사람도 한순간에 추락하고, 아주 어렸을 때 인기와 행운을 넘치도록 받았지만 성인이 되어 폐인이 되는 사람도 있다. 혼자 돈도 많이 벌고 잘 나가지만,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온다. 그래서 항상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잘된 것은 내 탓이요, 잘못된 것은 남의 탓이다. 50세의 나이가 들어도 그런 깨달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정말 소수이다.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보면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들은 항상 조심스럽다. 자기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이래서 50대의 모임은 서서히 정말 나와 맞는 사람과의 만남으로 정리가 되는 듯하다. 이젠 헛되이 소모하는 시간이 아깝다. 모임이 퇴색해지는 그런 상황이 결코 반갑지 않다. 반면에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 인간이 왜 홀로 고립되어야 하는지 고민이 될 때도 있다.
지금은 그럭저럭 견딜만한 수준의 모임은 그대로 유지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정말 나 혼자 외로이 지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혼자가 편하다고 해도, 늙어서까지 철저히 혼자가 되는 건 상상만으로도 두려운 일이다. 언젠가 한국 시골 마을 배경의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할머니들만 있는 마을을 보면서 나의 삶 또한 저럴 수 있으니 친구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은 포기할 때는 아니다. 괜찮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작년 한국에서 불었던 쇼펜하우어의 열풍을 보고 책을 읽으며, '인간관계를 억지로 유지할 필요 없다'는 그의 말에 공감했다. 고독을 선택하자고 다짐도 해봤지만, 과연 그런 삶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지는 모르겠다.
정말 혼자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어떤 심리학자는 인간관계를 다 끊지는 말고, 마음에 안 들지만 그중 한 명의 친구는 그냥 받아들이고 지내라고 했다. 그의 말이 위로가 될 줄이야.
사람을 만나면서 배려가 있고, 따뜻하고, 솔직한 사람은 놓치면 안 된다는 걸 50대에 들어서야 느꼈다. 내 인생에서 만났던 사람들 중 한 두 명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알아차리지 못한 내가 문제였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