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독서모임의 두 번째 책 앤드루 포터의 소설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작가는 작고 얇은 소설집 안에 10개의 단편 소설을 실었다.
이 10개의 소설 중 가장 마음에 와닿고 인상적이었던 소설은
폭풍, 코네티컷이다.
여덟 번째 단편 폭풍은
50대가 된 부모로서 내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나, 앨릭스의 관점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누나는 언제나 내게 어떤 영향력이 있었다.
로 시작한 내용은 누나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 앨릭스의 시선으로
내가 그동안 잘 알고 있다고 ‘판단 또는 속단’했던 누나의 행동은
내가 그동안 보아왔던, 겪었던 과거의 누나였다.
변화되고 성장한 내면의 누나 모습은
누나가 말로 설명해 주거나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 한 나는 알 수 없다.
누나의 갑작스러운 귀국,
약혼자를 두고 혼자 귀국한 모습에서,
누나가 한 말에서,
그래 ‘누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로 판단해 버리는 앨릭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앨릭스는 여전히 조용히 옆에 있어 주고,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누나가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린다.
심리학자들이 어린 시절 누나와 내게 건넨 책들에는,
부모 중 하나가 죽게 되면 그 자식들은 절대 다시 행복해질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 부문에선 ‘우리는 더 이상 행복해질 수 없구나 ‘하는 체념이 보이는 듯하다.
어린 시절 그곳에 앉아 아버지가 일터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지난날의 늦은 오후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언덕 아래로 아버지의 자동차 전조등 불빛이 보일 때 누나가 미소 짓던 모습을.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기쁨처럼 보였다.
그 불빛, 자동차,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안다는 그것은.
하지만, 마지막 단락에서 누나의 솔직한 말과 설명으로 앨릭스는 기쁨을 느끼게 된다.
어린 시절 그곳에 앉아 아버지가 일터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지난날의 늦은 오후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로 표현했다.
자녀를 키우고 그동안 보아왔던 자녀가 성장하고 변화된 모습으로, 그의 말과 행동으로 우리는 그 자녀를 판단한다.
내면의 변화는 그 당사자가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동안 앨릭스가 알던 누나는 리처드와의 관계에서 부딪히고, 싸우고, 참고, 대항하며 성장했다.
그동안 앨릭스가 봤던 누나가 아닌 것이다.
누나가 동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나를 받아준 유일한 사람이야.
앨릭스, 내 평생,
너는 나를 이해해 준 유일한 사람이야.
아~
내가 그동안 내 딸을, 내 아들을 어떻게 대했고, 또 어떤 판단을 했는지
되새김하는 시간이었다.
기다려줘야 하는구나.
그냥 옆에 있어줘야 하는구나.
충고나 조언이 아이에게 필요한 게 아니었구나.
아이도 자신의 내면에서 정말 많은 고민을 하고 세상과 부딪히고,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또는 대항하고 있었구나.
내가 젊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왜 부모가 되어서 그때의 나를 잊었을까.
왜 기다려주지 못하고, 먼저 충고하려 하고, 나섰을까.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아이는 언젠간 스스로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을, 믿음을 심어준 내용이었다.
옆에서 가만히 있다가도 가끔씩 쓸데없이 참견하고, 충고하려 했던 나에게 소설은 ‘가만히 있으라’고 말했다.
자녀에 대한 사랑 속에 감춰진 나의 불안을, 걱정을 없애버리는 마지막 단락이 나를 한 단계 더 성장하게 했다.
마지막 단편 코네티컷,
이 소설은 아들이 보는 엄마의 모습이다.
이런 모든 일이 일어난 지 일 년이 되어가던 그때,
혼자 살기 위해 섬으로 들어간 아버지의 결심은 우리 삶에 구멍을 남겼으나,
우리는 그 구멍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나는 당시 열세 살이었고,
너무 어려 아버지의 병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누나와 어머니와는 달리, 어쩐지 직감적으로,
아버지의 마음에 생겨난 일이 영속될 것 같다고 느꼈다.
아버지의 병으로 갑작스럽게 변화된 가족의 상황을 아들, 스티븐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 해 가을 수요일 학교를 몰래 빠져나와 집 근처 뒤편에서 보게 된 어머니와 이웃집 벤틀리 부인의 행동은
스티븐을 혼란에 빠지게 한다.
사회통념에 어긋나는 포옹이었다.
누구나 혼란에 빠지는 때가 있는 법이야.
돌이켜보면, 그 시절 내가 마음속에서 공들여 만들어낸 환상들은 아마도 그 둘 사이에 실제로 있었던 일보다 훨씬 비도덕적이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비도덕한 행동을 직면한 스티븐은 누나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당사자인 어머니에게도 묻지 않으며, 결국 나 혼자 알고 있는 것이 최상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혼자 상상하고, 혼자 판단하고 받아들인다.
어쩌면 그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러나 어머니는 아무 불평 없이 자신의 의무를 다했고,
나는 어머니가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후회하거나 회한에 차 있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저녁, 벤틀리 부인이 떠난 그 저녁이 자꾸만 떠오른다.
어머니가 이윽고 자신을 추스르던 모습,
부엌으로 들어가 설거지를 하던 모습,
방에서 내려온 누나에게 미소를 짓던 모습,
그리고 그 후,
개수대가에 서서, 마치 누군가가 자기에게 와주리라고 아직도 믿는 듯이,
마치 저 멀리 있는 그림자가 뜰의 가장자리에서 걸어 나와 자기를 되찾아갈 것이라고 아직도 믿는 듯이,
그렇게 간절하게 서 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몇 년 뒤 아버지가 섬에서 돌아왔고, 벤틀리 부인은 떠났다.
벤틀리 부인이 떠날 때 보였던 어머니의 모습으로 스티븐은 이렇게 마지막 단락의 이야기로 끝을 낸다.
아버지가 홀로 섬으로 떠나고, 남겨진 어머니와 딸, 아들
그리고 몇 년 뒤 다시 돌아온 남편.
하지만 어머니는 아무런 불평 없이 자신의 의무를 다한다.
아들이 보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과연 어머니의 내면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왜 어머니는 벤틀리 부인이 떠났을 때 함께 따라가지 못했는지,
왜 그냥 그대로, 그 자리에 남아있었는지
아들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잊혀지지 않는 그 저녁 어머니의 모습으로,
아들은 이렇게 상상하며 마무리한다.
누군가 자기에게 와주리라고 아직도 믿는 듯이,
마치 저멀리 있는 그림자가 뜰의 가장자리에서 걸어 나와
자기를 되찾아갈 것이라고 아직도 믿는 듯이,
그렇게 간절하게 서 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과연 어머니의 내면은 무엇이었을까,
나도 알 수 없다.
아들이 생각하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어머니는 벤틀리 부인과 함께 떠나지 않았다.
그대로 남아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여운을 남기는 마지막 단락이다.
폭풍과 코네티컷 외에도 여덟 편이 더 수록되어 있다.
각각의 단편에서 주인공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작가의 감성이 아주 탁월한 작품이다.
작가의 공통된 흐름은 ‘받아들임’, ‘인정’, ‘내면화’, 삭일 것이다’, ‘두려움’, ‘위안’, ‘위로’ 등 이러한 단어로 표현한다.
괜찮은 작가를 알게 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