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어디를 가나 한국인들의 여유로운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난 수요일에 개인사업을 하는 남편을 따라 춘천을 잠시 다녀왔다. 춘천에 도착할 무렵 무엇을 먹지 고민하던 중 발견한 음식점은 ’ 청강어탕 수제비‘이였다.
춘천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춘천닭갈비’- 춘천닭갈비는 개인적으로 먹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닭갈비 거리가 쭉 늘어서 있는 거리에 닭갈비가 아닌 메뉴, ‘어탕 수제비’ 가게를 발견했다. 너무 흔한 춘천닭갈비보다는 뭔가 다른 게 없을까 하고 찾다가 발견한 음식점이다. 구글 평점과 리뷰를 보니 제법 인기가 있는 것 같다.
살에 닿는 바람의 온기도 차가워지고,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기도 해서 어탕 수제비집으로 향했다. 가게 앞 주차장엔 벌써 차들이 일렬로 줄 서 있다. 춘천닭갈비 거리엔 유달리 이 집의 주차장만 차들로 붐빈다. 주차를 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는 음식을 만드는 공간의 건물에 테이블이 몇 개 있고, 그 옆으로 컨테이너로 간단히 만들어진 건물이 하나 더 있다. 코로나 이후 대부분의 가게가 그렇듯, 테이블 위에 탁자마다 주문하는 키오스크가 있고, 주문에서 결제까지 한 번에 이루어진다. 이런 신속함과 편리함을 받아들이는 한국소상공인의 민첩함이란 전 세계에서 탑 중에 탑일 것이다.
이 가게의 베스트 메뉴인 어탕 수제비를 시키고, 가게에 있는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본다. 직장인 같은 분위기의 남자 여러 명이 있고, 옆으로는 어르신 두 분이 식사를 기다리고 있다. 뒤로는 서로의 관심사를 나누는 여자 손님 등 다양한 손님들이 가게에 모여 있다.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우리 테이블 뒤로 춘천닭갈비축제 행사 관계자처럼 보이는 단체가 들어와서 내일 축제준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춘천닭갈비축제는 이 가게를 들어오는 길에 축제 플래카드로 확인할 수 있었다. 10월 16일부터 3일간 축제를 알리는 소식이 가로수마다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2025년 기준 인구 28만 명 정도인 춘천시의 어탕 수제비집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음식 하는 사람은 단 3명, 그리고 서빙하는 중년 남녀, 아마도 모두 가족인 것 같다.
손님들의 주문이나 요청에 대답을 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춘천사람은 아닌듯한 억양이다. 아마도 지방에서 장사가 되지 않아 춘천으로 이동하여 장사를 다시 이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방의 인구 감소, 소멸로 이렇게 전국 자영업자의 이동은 쉽게 접할 수 있고 발견된다. 이런 이동 또한 자본과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다.
음식 하는 요리사가 몇 명 되지 않아서 그런지, 주문을 하고도 한동안 기다린 후에 음식이 나왔다. 항상 급하게 밥을 먹고, 나가는 한국인의 습관이 몸에 배어 10분 이내로 음식이 나오지 않으면 뭐가 그리 급한지 답답함이 나의 내면에서 솟구친다. ‘왜 이리 안 나와’ 정말…
어탕 수제비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맛이 있지는 않았다. 수도권에서 먹었던 어탕의 시원한 맛은 없었고, 고추장의 걸쭉한 맛이 더 강했다. 아쉬웠지만 배가 고프기도 하고 배는 채워야 했기에 다 먹었다. 점심을 먹고, 카페로 이동했다. 남편이 아주 좋은 카페를 찾아놨다고 링크를 보내준다. 난 남편의 선택에 별말을 하지 않는 편이다. 그냥 가자는 대로 따라간다. 꼼꼼한 성격의 남편이 어련히 잘 찾아봤을까, 찾는 수고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남편은 아마도 더 이상 찾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나는 믿고 따라간다.
춘천은 몇 년 전 1박 2일로 여행을 온 적이 있었다. 남편은 직장을 다니고, 나는 자영업을 하며 정신없었던 그 시절, 하루 시간을 내어 다녀왔던 춘천이다. 그러고 보니 5년 만에 다시 찾은 춘천이었다. 그때는 춘천시내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높은 곳의 카페에 들렀다. 아마도 스타벅스였던 것 같다. 근처엔 네이버 데이터센터가 있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춘천의 조망은 그런대로 시야를 넓게 확장해 주었다. 자연을 느끼며, 태양은 피하고 향기로운 커피와 함께 오후의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번은 음식점 옆으로 소양강 물이 흐르는 강물길에 위치한 ‘Earth 17’이라는 카페로 갔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서 처음 마주하는 풍경은 자연을 잔뜩 품은 모습이다. 카페 앞으로 만들어진 넓은 초록의 공간은 눈을 시원하게 했다. 가짜 잔디이지만, 바닥에 깔려있는 초록 잔디의 모습과 잔디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베드 같은 쿠션, 간결한 테이블과 의자는 오후의 여유로움을 한층 더 편안하게 만들었다. 태양이 가장 강한 낮시간이었기에,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음악감상실이라는 이름으로 노키즈존, 정숙을 요한다고 표시되어 있다.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올드팝송은 이런 풍경을 더 평화롭게 만들어 주었다.
날이 좋아서 따라온 춘천에서
여유롭고, 향기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카페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여유롭게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남녀, 여유로워 보이는 중년의 부부, 밖으로는 어린 아기를 안고 온 젊은 엄마와 남편, 네이버 직원처럼 보이는 노트북을 하는 젊은 직장인 여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나른한 오후의 시간을 같은 공간에 있다.
지금도 여전히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여유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또 이렇게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 또한 자주 마주친다. 이 순간 어떤 모습으로, 내가 무엇을 하든, 그 주어진 나의 시간을, 나의 선택으로 최선을 다한다면 좋은 시간은 꼭 올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문득 최근에 읽은 오노레 드 발자크 ’ 고리오 영감‘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그 한 해 동안에 시민 고리오는 돈을 많이 모았다. 이렇게 해서 그는 나중에 거액의 돈을 가진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특권을 지니고 장사하게 되었다. 그저 그런 정도의 능력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일어나는 일이 그에게도 일어났다. 그는 이 평범성 때문에 구원받았다. 더구나 부자인 것이 더는 위험스럽지 않을 때에야 그가 얼마나 재산을 모았는가가 세상에 알려졌다. 따라서 그는 아무한테서도 시기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문장 중 ‘그는 이 평범성 때문에 구원받았다’는
그의 평범하고 튀지 않는 성격과 삶의 방식이 파리의 잔인한 생존 게임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패가 된 것이라고 한다. 큰 목표가 없었기에, 남들의 공격 대상이 될 이유도 없었다고 제미나이가 해석을 해줬다. 조금 돈이 벌리기 시작하면, 나를 드러내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자만심, 허영심이 생긴다. 그런 자랑은 상대에게 시기, 질투를 일으킨다. 그로 인해 내가 완성되기도 전에 무너지거나, 힘들어질 수 있다. 돈이 벌기 시작했을 때는, 가족이더라도 절대 드러내면 안 된다는 걸 10년 전 ‘세이노의 가르침’이라는 책에서 배웠다. 그렇게 조용히 묵묵히 내 삶을 살았고, 지금도 여전히 조용히 살고 있다.
지금의 나의 자유로움은 그때의 나의 평범함과 착실함, 꾸준함이었을 것이다. 지금 나를 아는 일부 사람들은 간혹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정말 사는 것처럼 산다고.
단기 여행이 아니라 장기 여행을 몇 주간 다니는 모습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그들이 젊었을 때 한참 소비하고 즐길 때.
내가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어떻게 절약하며 살았는지,
미래를 위해 내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모른다.
현재의 모습이 단순히 만들어지지 않음을 모른다.
그것을 아는 자들은 절대 쉽게 말하지 않는다.
200년 전에 글을 쓴 발자크 소설의 사람들 모습이나 현재나 다를 게 없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다. 이렇게 나에게 주어진 24시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모두 나의 선택이다. 나의 선택이 미래를 만들어간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이 오늘 하루도 축복이 가득한 하루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