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친구 외할머니의 부고 소식으로 장례식장을 이틀 연속 가게 되었다. 슬픈 장소에서 우리는 종종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난다. 그동안 소식이 끊겼다가 누군가의 부고로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여행에 관련된 얘기를 하게 되었다. 최근 딸이 3학년 2학기를 헝가리로 교환학생을 가서 공부 중인데, 학기 중에 시간을 내어 오스트리아, 체코,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을 여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딸이 처음 오스트리아에 도착하고, 고사우호수와 그 주변을 보더니, ‘엄마 컴퓨터 바탕화면인 줄 알았어’ 하며 그 풍경에 감탄을 했다고 말했다. 유럽이 너무 이뻤다고 딸이 말하더라고 했더니, 그 애기에 아는 지인은 지인의 동생도 유럽이 너무 예뻐서 돈만 생기면 유럽을 간다고 한다.
‘유럽 너무 이쁘지, 그런데 너무 비싸잖아. 난 그냥 동남아시아가 좋아. 가격도 저렴하고, 요즘은 자주 다녀서 구경보다는 그냥 커피 마시고, 밥 먹고, 사람들 보고 머물다 오는 여행을 해’라고 말했더니,
‘그럴 거면 외국을 왜 가냐’고 묻는다.
그 순간 난 알았다. 이 사람과 더 이상 여행에 관해 말을 하면 안 되겠구나를. 그런 여행도 있구나 하고 듣는 게 아니라, 딱 선을 긋는 듯한 뉘앙스는 서로 다른 취향을 설명한들 이해를 하려고 하지 않겠구나라는 분위기를 느꼈다.
여행의 취향은 각자 다르다. 관광위주의 패키지여행이나 자유여행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행보다는 한달살이 개념으로 여행을 하는 사람도 있다. 좀 다른 여행스타일이지만 그 또한 여행이다. 뭔가 새로운 환경에서 살고 싶어서 한달살이든 2 주살이든 선택한다. 그냥 머물고 여행하기 위해서 해외로 가는 이도 있고, 유튜브 콘텐츠작업을 위해 한달살이를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디지털노마드(이게 바로 내가 진정 원하는 여행이다.)로 해외에서 여행하며 일하는 사람도 있다. 그건 여행자의 여건과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서로 취향과 목적이 다른 것이다. 이건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다름에 굳이 내 기준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난 그게 좋아’하며 입을 닫는다.
아마, 내가 좀 더 젊었거나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남을 이해시키려고 설명했을 것이다. 내가 옳아서 그런 것보다는 이런 여행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굳이 남이 들으려 하지 않는 이야기를 쓸데없이 떠드는 행동인 줄도 모르고, 하지만 최근에 읽은 쇼펜하우어의 글로 인해, ‘사람은 자기 기준이상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사람들과는 관계를 멀리하라고 쇼펜하우어는 딱 잘라 말한다. 나와 대화가 되지 않는 이들과 계속 머물고 부딪히면 나만 더 추해질 뿐이라고.
이런 단순한 대화 하나조차도 이렇게 힘들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를 계속 이어가고 싶다면 그냥 조용히 말없이 있어야 한다. 그 대화가 나와 맞지 않고 불편하다면 그 자리는 내가 빠져나와야 하는 것이다. 간단하지만, 어려운 관계이다. 갈수록 어려운 게 인간관계가 아닐까. 이제는 더 이상의 고민거리는 아니지만, 아무튼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렇게 자리를 마무리하고 헤어지는 그 순간이 좀 아쉬웠다. 이 사람 또한 나와 다르구나를 느끼는 순간이 왠지 내 가슴에 허전함으로 다가왔다. 내가 괜히 말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게 된 순간처럼 느껴졌다. 앞으로 아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두렵기도 하다. 오랜만에 만난 이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정말 어려운 숙제이다. 점점 더 사람을 잃어가는 느낌이다.
쇼펜하우어처럼 외로움을 즐기며 혼자 지내야 하는 건가…
그리 친한 지인은 아니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반응에 조금 쓸쓸함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스페인 속담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당신의 아들에게 행운을 주고 그를 바다에 던져버려라.‘
쇼펜하우어 소품집에서 나온 스페인 속담이다. 아이의 삶이 독립적이고 강하게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스페인 속담처럼 행운을 주고 바다에 던져라. 20대의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도전정신을 가지고 넓은 세상을 보고 경험하기를 항상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