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쓰쿠루의 이름에 관한 부분이었다.
쓰쿠루 아버지가 아들 이름을 지어줄 때 어머니와 나눈 이야기가 한 페이지에 쓰여 있다.
다만 '쓰쿠루'라는 이름에 해당하는 한자를 '創'으로 하느냐 '作'으로 하느냐에 대해서는 아버지도 많이 망설였 던 것 같다. 읽을 때는 똑같은 발음이라도 글자에 따라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다. 어머니는 '創'을 추천했지만 며칠이 나 숙고를 거듭한 끝에 아버지는 보다 온건한 '作'을 선택했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난 다음 어머니는 그때 일을 떠올리고는 그에게 가르쳐 주었다. '創'이라는 글자가 이름에 들어가면 인생의 짐이 꽤 무거워질지도 모른다고 아버지가 그러시더라. 발음이 똑같이 '쓰쿠루'라도 '作'으로 하는 쪽 이 본인에게 가볍지 않을까 하고. 어쨌든 네 이름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정말 신중하게 생각했어. 첫아들이라서 더욱 그랬을 거야."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친밀하게 지낸 기억은 거의 없었지만, 아버지의 견해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多崎創'보다 는 '多崎作'가 분명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자신의 내면에서 독창적인 요소 따위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으므로. 그렇지만 그 덕분에 '인생의 짐'이 많이 가벼워졌느냐 하면, 쓰쿠루는 거기에 대한 판단을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이름 덕분에 짊어져야 할 짐의 형상이 약간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무게는 과연 어떨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레를 떠난 해] 내용 중에서
* '이룰 창(創)'과 '만들 작(作)'은 일본어 훈독이 똑같이 '쓰쿠루'다.
‘이룰 창(創)’이라는 글자가 이름에 들어가면 인생의 짐이 무거워질지도 모른다라고 쓰인 문장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이름의 한자 단어 하나가 삶의 무게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자연스레 과거 내가 부모로서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어떠했는지를 되돌아보게 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근사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은 바람은 어느 부모에게나 있다. 좋은 이름을 지어주어 성공적인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명소를 찾거나, 직접 이름을 짓기도 한다. 우리 부부 역시 고심 끝에 아들의 이름을 직접 지어 주었다.
아들의 이름 끝자 역시 ‘이룰 성(成)’이다. 소설 속 쓰쿠루 아버지의 말처럼, 혹시 우리 아이의 인생도 이 ’ 이루다‘라는 글자의 무게 때문에 인생의 짐이 무거워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0대의 젊은 부부였던 우리는 '이루다'라는 단어가 지닌 의미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했다. 그저 아이가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며, 난관에 부딪혀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강한 정신력으로 자기 인생을 충실히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무엇을 이루든’ 그 과정이 가져올 구체적인 무게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인생의 절반을 살아온 지금 돌이켜보니, ‘이루다’라는 말이 요구하는 노력이 얼마나 막대하고 그 무게가 얼마나 막중한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문득 그때의 내가 아이에게 뭔가 대단하고 무거운 숙제를 안겨준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에 미안함이 밀려온다.
단순한 글자 한 자에도 이토록 깊은 인생의 무게가 담겨 있을 줄이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인생의 반을 살고 나서야 얻은 깨달음이다. 이제는 아들의 인생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그저 가볍고 자유롭게 흘러가기를 바란다. 삶의 무게에 눌려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것보다 가벼운 삶이 되기를 바란다.
날개를 활짝 펴고 가볍게 날아오르는 삶이 되기를.
대한민국 2030들을 항상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