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의료현장에서 수많은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온몸을 내던진 의료진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거리로 뛰쳐나가지는 않았지만 분명코 오월 시민군이었으며 동시에 피아를 가리지 않고 인간의 생명을 구한 히포크라테스의 후예였습니다. <계간 수필미학 연재>
총에 맞고, 칼에 찔리고, 진압봉에 머리가 깨지고, 뼈가 부러졌다. 광주시민들은 총탄이 빗발치는 죽음의 현장에서 부상자들을 등에 업고, 손수레에 싣고, 화물차에 실어 병원으로 이송하였다. 1980년 오월 광주 의료인들은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고 무엇을 행하였을까.
항쟁의 최일선에서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느라 분투했던 어느 의사를 만나러 나는 광주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이 글은 5.18광주항쟁 당시 전남대병원 인턴이었던 현 광산수완미래아동병원장 유용상 선생의 육성 녹음과 1996년 광주광역시의사회에서 편찬한 <5.18의료활동 자료록 및 증언집>, 2022년 5월 20일 열린 5.18민주화운동기록관과 문화재청 주최, (사)인문연구원 동고송 주관 <5.18 의료인활동 구술증언집담회> 5.18기념재단 발행 <5.18열흘간의 항쟁> 자료를 토대로 구성되었음을 밝힌다.
<참극의 발발>
"정말 어떻게 군인들이 일반 시민을 그토록 폭행할 수 있었는가,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 학생들이 “전두환이 물러가라” 하는 정도로 데모한 것인데, 군인들이 학생 시민들에게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했어요. 군인들이 어떤 명령 체계로 작전에 투입돼서 일반 시민들을 갑작스럽게 폭력 현장으로 몰고 갔는지, 그때 폭력이 없었다면 광주시민들이 그렇게 일어날 이유도 없고, 5.18이 있을 수가 없었죠. 폭력 군인들의 선제적 폭력이 없었으면…." 유용상 선생 구술
10.26 박정희 대통령 사망 후 12.12 군사반란으로 군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였다. 이에 앞서 5월에는 전국 주요 도시 대학생들의 계엄 철폐 시위가 이어졌다.
시위 양상은 서울이 가장 격렬하였다. 5월 15일 서울역 광장에서는 버스에 전경이 압사당하는 사고도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최정예 공수부대를 광주에 투입하는 계획은 이미 이전부터 진행되었고, 계엄 전국 확대 포고 직전인 5월 17일 심야에 7공수부대는 광주로 이동하였다. 광주를 희생양으로 삼아 권력을 찬탈하려는 정치군인들은 이미 작전을 개시한 것이다. 공수부대가 투입되기 전, 경찰의 학생 시위 진압 과정에서는 심각한 부상자들이 발생하지 않았다.
1980년 5월 17일 자정 무렵, 공수부대는 전남대학교에 난입하여 학생들을 구타하며 연행하였고, 아침에 도서관에 공부하러 가는 학생들도 구타하며 끌고 갔다. 구타는 머리에 집중하여 전남대병원에서는 아침부터 여러 건의 뇌수술로 무척 분주하였다. (류재광 당시 전남대 인턴) 만행이 시작된 것이다.
이날 낮부터 시내에서 주로 젊은이들이 공수부대용 진압봉에 난타당하며 병원에 실려 오기 시작하였다. 다음날인 19일은 피의 일요일이었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이 가해졌으나 학생들의 시위는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공수부대의 총격에 민간인이 희생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저와 동갑인 그는 아직도 스물두 살의 청년으로 남아 있지만, 그 덕분에 나는 칠십이 가까이 잘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