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의료현장에서 수많은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온몸을 내던진 의료진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거리로 뛰쳐나가지는 않았지만 분명코 오월 시민군이었으며 동시에 피아를 가리지 않고 인간의 생명을 구한 히포크라테스의 후예였습니다.) <계간 수필미학 연재>
5월 20일.
총상환자들이 병원에 계속 실려 왔다. 가슴이 찢기고 머리가 깨어지며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학생들의 희생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시민들이 시위에 대거 가담하며 시위는 시민 중심의 항쟁으로 변해갔다. 시위대는 공수부대의 살상에 맨주먹으로 대항하였다. 분노에 찬 광주시민들의 저항에 공수부대는 도청에 집결하였다.
석가탄신일인 5월 21일,
시민들은 시내버스, 관광버스, 영업용택시, 화물차 등 차량에 탑승하여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한 공수부대를 향해 도청으로 향했다. 갑자기 딱딱딱딱딱 M16소총 소리와 함께 수많은 시민들이 동백꽃이 되어 땅에 쓰러졌다. 외적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들이 비무장 대한민국 국민을 향해 조준사격을 가한 것이다. 병원에는 사망자와 중상자들이 끊임없이 밀려들어 왔다.
시민들의 구호는 “전두환 죽이자”에서 “전두환 찢어 죽이자”로 변했다.
"항쟁 초기 많은 부상자들이 시위와 상관없이 구타당했다고 진술했다. 제과점, 다방, 당구장, 도서관 혹은 학원 등에서 갑자기 난입한 진압군에게 영문도 모르고 맞았다." - 광주광역시의사회 전대병원 진료기록부 자료 분석
이것은 공수부대의 광주 투입 목적이 반란군 지휘부의 주장대로 시위 진압이 아니었음을 알게 해주는 중요한 자료다. 신군부의 대한민국 무력 찬탈에 전국의 학생들이 항거하였지만, 1980년 반란군 수뇌부는 작전을 세워 광주만을 표적으로 공격하였다. 광주 시민과 학생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위권을 발동하면서 5.18항쟁이 발발한 것임을 유용상 선생과 5.18기념재단은 증언한다.
<참혹한 환자 상태>
상상할 수 없는 공수부대의 총격으로 병원에는 유례없이 사망자와 중상자가 넘쳐났다. 특히 전시도 아니면서 다수의 총상 환자를 접한 의료진들의 충격은 상당히 컸다.
그동안 우리는 참상을 직접 본 광주시민들의 증언과 공수부대의 시민 구타와 시신을 끌고 가는 사진 등으로 학살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구체적인 살상 내용은 접하기 어려웠다. 의료진들이 보고 겪은 증언이야말로 군부의 만행을 증명하는 실체적 진실이었다.
“한 환자는 심장에 총을 맞아 트럭에 실려 오면서 응급처치로 심장을 누르면서 도착하여 결국 고생을 하여 치료했으나 사망해 정말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이OO는 서울에서 내려오다 검문에 걸려 군홧발로 머리를 뒤에서 찍혔다. 맞아서 눈알이 터졌고 눈썹부터 눈이 밀려 수술을 해 눈알을 제거했다.” - 김승호 당시 전남대병원 안과 레지던트1년차
“M-16 총탄에 팔이 없어져 버린 환자, 일가족 집중사격을 받고 척추가 마비되어 버린 어린아이 래향이, 도착 시 사망한 어느 환자의 손에는 구릿빛 탄환이 단단히 쥐어져 있었다.” - 유용상 전 전남대병원 인턴
"20일 밤 20대 남자가 총상을 입고 입원했다. 좌측 쇄골 직상부에 작은 총상 입구가 있었고, X선 촬영 결과 윗가슴 뒤편에 산탄 총알 같은 것들이 퍼져서 박혀 있었다. 그 환자는 수술도 받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다음날 도청 앞 집단 발포 때 총상 입은 환자들의 X선 소견도 비슷하였다. 수술하여 보니 얇은 총알 껍질 속에 납탄이 들어 있어 납덩어리가 산산조각 나며 치명적 상해를 입혔다. (...) 이렇게 넓은 부분을 닥치는 대로 휘젓고, 찢고, 자른 후 박한 이 납 총알 파편들은 척추나 기타 신경이 있는 부위에 손상을 줘서 목숨을 건지더라도 불구의 몸을 만들었다." - 김성봉 당시 광주기독병원 외과과장
“병원 앞 버스정류장에서 학생들이 내리고 공수부대가 곤봉으로 학생들을 때리자 피하다 맞아 엎어졌다. 그러자 공수부대원들이 가슴을 군홧발로 밟아 짓이긴 후 바로 트럭에 싣고 갔다. 환자 중엔 얼마나 심하게 맞았는지 두개골이 쫙 벌어진 경우도 있었다. 보통 교통사고 등에서도 보지 못한 것으로 두개골이 그렇게 벌어진 것은 그때가 처음이고 지금까지도 보지 못했다.” - 오충남 동진외과의원장
“박금희라고 하는 여학생이 여기(기독병원)에서 헌혈을 하고 갔는데, 세상에 금희가 헌혈한 지가 한 시간이나 되었을까. 그런데 시체로 돌아왔다고 그래서 우리 직원들이 ‘엉엉’ 우는 소리가 막 나요. 그래서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이렇게도 잔인할 수가 있어요? 그 어린 것이 헌혈하고 갔는데 무슨 죄가 있다고 세상에 그래요?” (퇴각하던 공수부대가 시민들이 탄 버스에 장갑차 기관포를 휘갈겨 그 여학생은 얼굴이 거의 없어져 버린 피투성이 시체로 실려왔다) - 안성례 당시 기독병원 간호감독
“전장에서나 볼 수 있는 처참한 부상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엄청난 손상 앞에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두개골이 파괴되고 뇌수가 흘러나온 이 청년은 아직 실낱같은 맥박은 뛰고 있었다. (...)
도청 앞에서 ‘탕’ 소리가 나고 조금 있자 어김없이 업혀 오는 중상자 혹은 주검. 한 중상자는 총탄이 뒤쪽에서 복부로 관통되었는데 소장과 간 등 내장이 쏟아져 나와 최후의 붉은 꽃을 피운 것처럼 처참한 모습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직 의식이 있을 때 그의 이름 석 자를 묻고 링거를 꽂아 후송하는 일이었다.” - 방충헌 당시 복음외과의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