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의료현장에서 수많은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온몸을 내던진 의료진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거리로 뛰쳐나가지는 않았지만 분명코 오월 시민군이었으며 동시에 피아를 가리지 않고 인간의 생명을 구한 히포크라테스의 후예였습니다. 당시 전남대 의대 인턴 - 현 광주시 소재 아동병원장 - 이었던 유용상 선생의 증언과 광주시의사회에서 편찬한 증언록 자료 및 5.18기념재단의 자료를 참조하였음을 알립니다.) <계간 수필미학 연재>
누구든 의료진들의 증언록을 접하면 몸서리를 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가해 군인 개개인도 부모 형제를 둔 사람이자 대한민국 국민이고, 야수와 달리 인간의 본성을 지녔을 텐데, 자발적으로 이런 만행을 저질렀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광주시민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짓밟도록 명령을 내린 자들에게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현장에서 비무장 민간인을 학살한 군인들은 양심에 따라 고백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물론 개인적으로 자신이 저지른 만행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해방 후 수많은 국가 폭력의 피해자와 유족, 관계자들이 진상규명과 내부 고발을 시도하였지만, 부당한 권력에 의해 탄압당해왔기에 진실 고백 자체가 엄청난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소수이지만 5.18 가해 군인들이 양심 고백을 하고 사죄하였다. 이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예외 없이 군홧발에 밟힌 의료현장>
전쟁터에서도 구급차나 의료진, 민간인 환자는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광주에서는 그 모든 게 군홧발에 짓밟혔다.
“공수부대원들은 수술실에도 난입하여 마취기를 부수고, 두부열상 봉합 수술을 받던 환자와 다른 환자 일곱 명을 강제로 끌고 갔다.” - 우제인 정형외과의원장
“공수부대의 만행에 병원 여직원들까지 항의하려 하자 환자들을 병원에 넣어두고 최루탄을 병원에 터뜨렸다. 독한 가스가 2층 3층까지 올라와 곤욕을 치렀다.” - 김계윤 당시 김정형외과병원장
“공수부대 군인들이 폭도(?)들을 찾는다며 병원 응급실에 최류탄을 던져 넣었다. 21일 공수부대가 철수하며 병원에 대고 M16을 난사하였다. 그때 수술실에서 수술을 하고 있었는데 총알이 날아 들어왔다. 병원 벽 여러 군데에 총탄 자국이 몇 해 동안 남아 있었다. 적군도 병원에 폭격하거나 총을 난사하지 않는데, 이렇게 총을 마구 쏴대다니 대한민국 군인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 박중욱 당시 전남대병원 신경외과 레지던트 1년차
<현장의 의료진>
그토록 많은 사상자를 처음 접하였지만, 의료진들은 온몸을 던져 부상자를 치료하였다. 워낙 중상자들이 많았다. 수술에도 우선순위를 정해야 했다. 처음에는 총상으로 뇌가 많이 파괴된 사람들을 먼저 수술했는데, 그런 환자는 소생 가능성이 매우 적었다. 촌각을 다투는 수술 현장에서 생명의 희망이 있는 사람부터 순서대로 수술하고 처치를 하였다. 비록 사망 가능성이 크더라도 생명을 살릴 목적으로 메스를 대는 게 의사의 본분이지만, 전쟁터나 다름없는 광주의 병원 수술방에서는 의료진에게 최소한의 본분을 지킬 틈도 주어지지 않았다.
공수부대원들은 가정집에 난입하여 집뒤짐까지 하며 젊은이들을 진압봉이나 총 개머리판으로 짓이기며 끌고 갔다. 이런 악몽 속에서 광주 시내 상가 대부분이 철시하였지만, 의료기관은 문을 열고 부상자들을 살리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