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의료현장에서 수많은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온몸을 내던진 의료진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거리로 뛰쳐나가지는 않았지만 분명코 오월 시민군이었으며 동시에 피아를 가리지 않고 인간의 생명을 구한 히포크라테스의 후예였습니다. 당시 전남대 의대 인턴 - 현 광주시 소재 아동병원장 - 이었던 유용상 선생의 증언과 광주시의사회에서 편찬한 증언록 자료 및 5.18기념재단의 자료를 참조하였음을 알립니다.) <계간 수필미학 연재>
<대동 세상>
5월 21일 무장한 시민군과 교전하던 공수부대는 광주에서 철수하며 모든 도로와 철도, 항공 운행을 차단하여 광주는 봉쇄되었다. 반란군 수뇌부는 광주시민 학살 사실이 서울 등지로 알려져 전국적인 시위가 일어나는 것을 크게 우려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광주 외곽에서는 민간인 집단 학살이 계속되었다. 계엄군은 봉쇄 사실을 광주 전남 지역에 알리지 않았다. 그 사실을 모르고 봉쇄선에 접근하는 시민들에게 무차별 난사하였다.
고속도로를 이용해 광주를 빠져나가려던 사람들 10여 명이 살해당하고 교도소 뒷마당에 가매장 당했다. 군은 이들을 “교도소를 습격하려 했다”고 왜곡하였으나, 광주에서 농기구를 구입하여 담양 집으로 돌아가던 농부도 있었고, 5살짜리 딸과 아내를 화물 자동차에 태우고 고향 진도로 향하던 일가족도 예고 없는 총격으로 살상되었다.
5월 23일, 광주에서 화순으로 가던 미니버스에 공수부대원들이 총격을 가했다. 십여 명을 그 자리에서 사살하고 중상자 2명을 인근 야산으로 끌고 가 총살하였다. 희생자 중에는 십 대 소녀도 네 명이나 있었다. 1988년 청문회에서 당시 여고생이었던 생존자와 7공수여단 출신의 증언 그리고 군 상황일지가 증언한다. 이외 평소 광주 시내·외를 드나들던 시민들 다수가 희생되었다.
5월 27일, 탱크를 앞세운 공수부대의 공격으로 시민군이 장악한 도청이 함락되기까지 5일간 광주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폭력과 살상에서 잠시나마 해방되는 기쁨을 누렸다. 상점도 영업을 개시하였고, 경찰의 치안 활동이 없었지만, 은행 등 금융기관과 금은방에서도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 기간에 범죄 발생률은 평소보다 매우 낮았다. 학생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거리를 청소하였다. 총기류 등 무기도 도청 사수와 순찰대 및 외곽 경비에 필요한 수량을 제외하고 자진해서 반납하였다. 시민들은 빠른 속도로 질서를 찾아가고 있었다.
“병원 입원환자가 수십 명이었는데 전화하면 쌀과 부식 등을 보내주었다. 약품회사도 연락하면 무조건 의약품을 갖다 주었으며 모든 물품 공급이 제대로 되었다.” - 이무원 당시 광주적십자병원장
“당시 시민군들은 빵이나 우유를 가지고 와서 의료진들과 나눠 먹었고, 무엇이 부족한지 마이크로 묻고 다녔다. 수액제가 부족하다고 말했더니 시내에서 얼마나 많이 갖고 왔는지 응급실 한편에 가득히 쌓였다.” - 김승호 당시 전남대병원 레지던트
총탄이 빗발칠 때도, 공수부대가 도청에서 철수한 후에도 중상자들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출혈 환자와 수술 환자로 인해 혈액과 산소가 매우 부족하였다. 병원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헌혈자들이 줄을 이었다. 서로 먼저 헌혈하겠다고 야단법석이었다. 더 이상 혈액을 보관할 수 없어서 헌혈을 중지한다고 하자 돌아가지 않고 내 피 뽑아달라고 아우성치는 바람에 의료진들은 이들을 돌려보내느라 애를 먹었다.
산소통이 필요하면 어디서든 구해왔고, 의료용품도 조직화된 시민들이 조달했다. 여성들은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대동 세상이 광주만의 정신이었을까? 유용상 선생의 생각은 달랐다.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로 혼란의 상황이 되면 폭력과 범죄의 위험에 노출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로스앤젤레스폭동은 백인들의 인종 차별에 저항한 것이지만 약탈과 폭력으로 얼룩졌지요.
그런데 광주는 그게 아니라 대동 세상이 되었다는 거 이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국가의 부당한 폭력이 광주 지역이 아니라 대구나 부산이나 울산에서 일어났어도 저항사태는 일어나고 대동 세상이 되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성을 믿는 것이지요. 부당한 압제에 분연히 저항하고 함께 화합하는 것이야말로 헌법에 실려야 할 광주 정신이자 대한민국 정신인 것이지요.” - 유용상 선생 구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