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수필

by 조성현

강남역 / 조성현

어느 여성이 공중화장실에서 모르는 남성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했다. 그것도 번화한 강남역 한복판에서 이유도 모른 채 그녀는 죽어갔다. 그는 화장실에 숨어서 여자만을 기다렸다. 그녀를 추모하는 발길이 줄을 이었다. 경찰은 조현병에 의한 ‘묻지마 범행’이라고 서둘러 발표했지만, 강남역에는 추모 포스트잇과 국화꽃이 산을 이뤘다.


유신 말기, 내 나이 이십 대 초반 때다. 젊은 여성이 담배 피우면 유흥주점 종사자나 운동권 여성으로 간주 되었다. 예전에는 여염에서 고된 시집살이에 지친 여인들이 잠시나마 시름을 덜고자 담배를 피웠던 터, 고부간 맞담배질도 허용되었다. 언제부턴가 담배가 남성의 전유물로 변질되며 여성 노인을 제외하면 길거리에서 여성의 흡연이 용납되지 않았다. 그런 시절에 나는 외국영화에서 본 것을 흉내 내어 종종 여성이 담배를 물면 얼른 성냥불을 붙여주었다. 친구 중 여성 몇몇이 담배 피우는 운동권이었다. 남자들의 비난이 뒤따랐다. 여자가 담배 피우는 것도 못 봐주겠는데 불까지 붙여주냐는 것이다. 나는 담배는 기호품이므로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누구나 피울 권리가 있으므로 여성의 흡연을 터부시하는 남자들의 행태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응수했다. 나도 남녀 평등주의자가 된 듯싶었으나 그것은 나의 첫 번째 착각이었다. 본인이 직접 담뱃불을 붙이면 천박해 보이므로 남자가 불을 붙여주어야 한다는 논리는 상대에 대한 배려라기보다 사람 차별이고, 여자는 남자의 보호 안에 있어야 한다는 무언의 성 차별적 행위였다.


80년대 중반, 회사원이 된 나는 남자 직원들이 여직원들을 “미스 김”, “미스 리”라고 부르는 소리에 반감이 들었다. 직급이 높은 사람은 심지어 “김양”, “이양”이라고까지 불렀다. 여기가 다방이나 술집도 아니고 회사에서 어떻게 저런 호칭이 사용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침에 출근하면 여직원이 부서 직원들에게 커피 한 잔씩 타서 책상에 놓고 갔다. 물론 남자 직원들에게 한해서였다. 얼마 후 나부터 변화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여직원에게 “미스 김” 대신에 “김OO 씨”라고 불렀다. 그 여직원은 좋아했다. 말은 안 했어도 자신을 “미스 김”이라고 부르는 것을 좋지 않게 여겼던 것이다. 동시에 나는 여직원에게 아침 커피 심부름에서 나를 빼달라고 요청했다. 내가 직접 타 먹었다. 얼마 후 임원을 제외한 부장 이하 직원들은 아침에 직접 커피를 타 먹기 시작했다. 호칭에도 변화가 왔다. 어느 틈엔가 “미스 김”, “이양”이 사라지고 “김OO 씨”가 등장했다. 이어서 여직원만 입던 유니폼도 막을 내려, 여직원들의 의류 구입비가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분명히 시대가 바뀐 때문이었으나, 나는 오랫동안 나의 진보적 의식을 자랑하고 다녔다. 이것이 나의 두 번째 착각이었다.


졸업하기도 전에 결혼식을 올린 내가 직장을 잡기 전이었다. 아내는 직장을 다녔고, 백수 남편은 잠시 집안일을 했다. 셋방에 살며 남자가 부엌 드나든다고 집주인 내외가 쳐다보든 말든 개의치 않았다. 내가 취직을 한 후, 맞벌이 부부에게 가사노동은 정확히 반분해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었다. 남자나 여자나 직장생활 고된 거야 매양 한가지인데, 여자가 쇳덩이가 아닌 이상 집안일까지 도맡을 수는 없다고 여겼다. 아내가 직장 회식으로 늦을 것 같은데 괜찮은지 물었을 때, 내 눈치 볼 일 아니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 나는 아내의 허락을 구하지 않는데, 아내도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집안일을 여자에게만 맡기는 남자들을 보며, 자기 편해지자고 여자 부려먹는, 기본이 안 된 인간이라 흉을 보았다. 나는 누가 봐도 자타가 인정하는 남녀평등론자이자 페미니스트였다.


중학생이던 딸아이의 말 한마디에 가면을 쓰고 살아온 나의 실체가 드러났다. 아내는 그때 전업주부였다. 맞벌이 부부의 가사노동 분담을 주장하던 나는 아내가 전업주부이므로 집안일은 아내 몫이라 생각했다. 어느 일요일이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과로와 스트레스에 찌들어 소파에 몸을 던져 쉬고 있을 때 딸아이가 다가와 말했다.


“아빠처럼 엄마도 일주일 내내 집안일 하느라 힘들었는데 일요일에는 엄마도 쉴 권리가 있어요. 일요일에도 엄마 혼자 집안일 하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머리에서 쿵 소리가 났다. 논리가 정확했다. 나를 돌아봤다. 스스로 양성평등주의자라 떠들고 다닌 건 타인에게 내가 진보적 사고를 가진 자로 인식하게끔 하기 위한 위선이 아닌가? 아니면 게으름 탓인가?


언제부턴가 운전이 서툰 여성 운전자를 비하하는 동영상이 ‘김여사’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 널리 유포되기 시작했다. CCTV가 도처에 깔리고, 차량용 블랙박스가 등장하며 다량의 동영상이 급속도로 퍼졌다. ‘김여사’는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여성 차별 용어가 되었다. 그런데 자칭 페미니스트라고 떠벌리던 내가 인터넷에서 ‘김여사’를 검색하여 동영상을 보며 웃고 있었다. 여성 혐오의 출발은 여성 차별이라는 기본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강남역 인근에서 몇몇 남성들이 모여 희생자 추모객들을 비난하며 조롱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럼에도 추모객들의 발길은 멈추지 않았다. 국화꽃을 든 남성들도 적지 않았다.

-《한국산문》 202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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