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가운의 오월 시민군 – 제8화 (마지막)

하얀 가운을 입은 시민군 - 의료진

by 조성현

하얀 가운의 오월 시민군 – 제8화 (마지막)

(이 글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의료현장에서 수많은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온몸을 내던진 의료진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거리로 뛰쳐나가지는 않았지만 분명코 오월 시민군이었으며 동시에 피아를 가리지 않고 인간의 생명을 구한 히포크라테스의 후예였습니다. 당시 전남대 의대 인턴 - 현 광주시 소재 아동병원장 - 이었던 유용상 선생의 증언과 광주시의사회에서 편찬한 증언록 자료 및 5.18기념재단의 자료를 참조하였음을 알립니다. ) <계간 수필미학 연재>

<하얀 가운을 입은 시민군>

거대 악 앞에서 비폭력 투쟁만이 옳은 것은 아니다.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 이봉창 의사 모두 폭력적 수단으로 항거하였다. 넬슨 만델라도 군사조직 초대 총사령관이 되어 일련의 폭파 작전을 일으켰고, 에티오피아, 모로코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12.12 군사반란으로 군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5.18 전국 계엄 확대와 함께 고도의 진압훈련을 마친 공수부대를 광주에 투입하여 무차별 폭력으로 광주를 짓밟았다.

그러나 광주시민들은 분연히 일어섰고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자위권을 발동하였다. 5월 21일 광주시민들은 계엄군의 M16 총소리와 다른 종류의 총성을 들었다. 공수부대 공격인가? 아니다. “아군이다.” 시민들이 환호하였다. 화순 나주 등지의 예비군 무기고에서 구형 카빈총을 획득한 시민군들이었다. 정당방위 차원에서 무기를 획득할 수밖에 없었기에 일반 시민들이 호응한 것이다.


잘못된 정권과 부당한 폭력에 대한 광주시민의 저항 정신은 전 국민에게 민주주의 의식을 고취시켰다. 광주항쟁은 근세 동학농민혁명부터 시작하여 의병과 독립군 무장투쟁 그리고 3.1독립운동과 4.19혁명으로 이어지는 민중항쟁의 맥을 이어가며 민족사에 횃불로 길이 남을 것이다.


광주 의료진들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한가운데에서 활동하였다. 또한, 반란 군부의 명령에 따라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에도 앞장서는 박애정신을 보였다. 대한민국 어디서나 이런 부당한 폭력을 당했다면 광주에서와같이 민중항쟁이 일어났을 것이다.


의료진들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특별한 일을 하였지만, 시장 여성 상인들이 시민군에게 주먹밥과 물과 떡을 주던 마음과 총탄이 날아다니는 병원 마당에서 헌혈하겠다고 몇 시간씩 줄 서서 기다리던 시민들의 행동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게 바로 광주 정신이자 대한민국 국민의 정신이다.


“우리는 80년 광주의거 당시 대학병원 현장에서의 한 증인이다. 나를 포함한 우리 의사들이 단순한 치료자이었을까 하는 의문에 나는 단연코 아니라고 대답한다. 저항의 최전선에서 총을 잡지는 않았어도, 팔에 총상을 입은 채 다시 싸우러 나가려고 하는 시민군을 만류 하는가 하면, 가슴을 뻥 뚫린 흉부외과 입원 시민군의 환부 드레싱에 우리는 최선을 다하였다. 병원의 가운은 학생들과 젊은 시민을 숨겨 주는 유일한 도구였으며, 우리는 그야말로 또 한쪽의 시민군이었다.


하얀 가운의 시민군들은 그들의 노고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사상자를 포함한 피아의 모든 이들에게 인간의 임무를 다할 뿐이었다. 시민으로서의 당연한 의무를 다하는 것, 아무런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을 광주의 정신으로 여겼다. 지난 2022년의 5.18 의료체험 보고세미나의 생생한 증언들은 세월과 생활 속에서 잊혀가는 생생한 사실들을 기억게 하고 마음을 촉촉이 적셨다. 대한민국의 화합과 애국의 귀감으로 삼을 ‘하얀 가운의 시민군’을 기억할 이야기의 장이 지속되면 좋겠다.” (유용상 선생 구술)

광주의 의료진은 분명코 <하얀 가운의 오월시민군>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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