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해 전 일이다. 입사 2년 차 회사원인 아들은 영업부서에서 일했다. 늘 ‘을’이었다. 한번은 중요 고객의 골프 모임에 소위 거물을 모시라는 회사의 명을 받았다. 함께 골프를 치는 접대가 아니라 운전기사 노릇이었다. 그의 지인도 함께 모셔야 했다. 아침 7시 티업이라, 고객과 지인의 집까지 경유하므로 집에서 4시경에 차를 몰고 나갔다. 아들은 내 차를 빌렸다. 중요 고객이라 아들 차보다 조금 넓은 내 차로 모신다는 것이다. 아들도 고객 만족의 의미를 알아가고 있었다. 그들만의 라운딩 네다섯 시간 동안 아들은 차 안에서 부족한 수면을 보충했다. 일행은 식사와 함께 술판까지 벌였기에 아들은 또 몇 시간을 기다렸다. 그들만의 술자리였다. 오후의 귀갓길은 역순이었다. 경기도에서 서울 강남북을 거쳐 차량 정체 시간에 회사로 복귀한 아들은 밤늦게야 퇴근했다. 고객 만족의 의미를 아는 듯했던 아들도 입이 다발로 나왔다. 다만 고객이 아들에게, 부친에게 드리라며 과일 한 상자를 사서 건네는 바람에 조금은 기분이 풀어졌다. 회사생활로는 아들의 대선배인 아비가 아들에게 자신 있게 훈계했다.
“거물 고객은 회사 매출과 여러 측면에서 영향력이 크다. 그런 분이 너희 회사에 요청한 것은 오히려 반길 일이다. 그분이 너에게 호감 가질 좋은 기회다. 기사 취급받았다고 기분 상할 것 없다. 오히려 반겨라.”
아들도 아비의 훈계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와 아들은 스스로 물질에 고개 숙였다.
그들이...
신문 기사 하나가 내 눈을 잡았다. 어느 유통업체로부터 무려 월 10억 원어치를 납품받는 대형 점포 대표가 공급업체 직원을 머슴 부리듯 했다는 것이다. 그 직원은 아침에 점포로 출근하여 문 열고, 청소, 진열, 점포 대표의 자동차 주차대행과 아들의 통학, 이삿짐 나르기, 은행 일, 운전기사 노릇과 심지어 심부름하러 휴일에도 불려 나갔다.
점포 대표는 유통업체에서 알아서 한 것이고, 업계 관행이라고 했다. 유통업체는 월 10억 원 규모의 거래선이라 놓칠 수 없었고, 직원에게 업무 명령을 내린 것이다. 점포 입장에서는 그 정도의 서비스는 당연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 직원은 회사의 명령에 불복은커녕 점포 대표에게도 불쾌한 표정조차 드러낼 수 없었다. 슈퍼 갑들이 그 직원에게 불만을 품으면 그는 자칫 밥숟가락을 놓아야 한다. 회사는 그에게 투명인간이 되라 했고, 돈과 돈 사이에서, 그들은 그 사람을 실종시켰다.
그러나 진심이 담기면...
을의 반란인가 아니면 고차원적 자본 논리인가. 어느 편의점 점주가 공지한 ‘우리 편의점 절대 수칙’ 중 3항이 내 눈길을 잡았다.
3. 부당한 고객에겐 절대 머리를 숙이지 말 것
자신이 맞는 서비스를 했음에도 불구 부당요구, 욕설을 시전하는 고객에게 절대 고개 숙여 사과하지 마세요. 손님이 왕인 시간은 사장인 내가 근무할 때뿐임. 고객보다 위가 근무자님들이라는 걸 절대 잊지 마세요! 정말 노답인 경우에는 경찰신고 + 맞쌍욕을 허락합니다.
언론에 보도되고, 온라인 공간에서도 이 내용이 날개를 달았다. 갑질 손님은 숫자도 몇 안 되고, 매출에 별 도움이 안 되므로 무시하는 대신 새로 단 날개가 고객을 끌어오고, 그 편의점 사장은 안타를 쳤을 것이다. 나는 그 점주에게 진정성이 있다고 믿는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의 신년 간부회의에서 대표는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해 간부들부터 앞장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순이익을 증가시켜 주주들 배당을 두둑하게 하라는 초강력 주문이었다. 매출을 올리든, 다양한 방법으로 원가를 절감하든 과정보다 결과로 보이라는 강력한 명령이었다. 얼마 후 내가 맡은 사업본부에 고참 직원들을 자르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눈 덮인 산 위에서 눈덩이를 굴리면 스스로 커지듯, 자본주의는 자가증식 능력이 있지만, 인간을 소외시키기 때문에 멸망할 것이라는 칼 마르크스는 자본의 변형능變形能을 간과했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자가 발전하며 변형하여 인간을 지배하려는 최고 수준의 인공지능처럼 자본은 인간을 소외시키는 본질을 숨겨두고 스스로 변형하여 증식해왔다. 직원들에 대한 거대기업의 앞선 복리후생도 보이지 않는 자본의 손에 의한 것은 아닐까?
자본주의에게 변형능이 있다면 인간에게는 방어기제가 있다. 돈보다 인간다움을 추구한다. 주 52시간만 일하며 가족과 저녁 먹고 싶어 한다. 인간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자본은 인간이 ‘돈’에 굴복하도록 양극화를 심화시켜 인간의 방어를 무력화한다. 극소수의 최상층부에게 부富를 몰아주고, 다수의 양극화 하층에게는 기계 부속이 되라 한다. 자본은 성과라는 이름으로 조직에서 다수를 밀어내고, 이들은 살길을 찾아 자영업이라는 무한 경쟁의 밀림에 몰린다. 무서운 일이다.
오래전 아비는 가정보다 회사 일이 우선이었다. 자본에 스스로를 내다 바치고 겨우 마름 자리를 얻는 데 만족했었다. 대가는 지금까지 이어진다. 출가한 자식들이 지금도 대소사 모두 엄마와 의논한다. 세월이 지나며 아비의 생각도 바뀌었다. 출가하여 가정을 이룬 아들에게 전과 다르게 워라벨을 강조한다. 회사에 지나친 충성 대신 가족과 시간을 많이 가지라 한다. 은퇴한 아비도 저들에 맞서고 있다. 늦게 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