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 승진이 / 조성현

by 조성현

수험생 승진이 / 조성현


얼굴에 노기를 띤 중년 남성이 독서실 출입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섰다. 온화한 인상이 아닌 데다 기분이 상해 보이는 남자를 보며 유리 창구 너머로 어떻게 오셨는지 물었다. 물론 학생 아버지임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이승진이 아버지인데요, 승진이 지금 자리에 있어요?”


PC 모니터의 현황판과 CCTV 확인 결과 2시간 전에 입실했다가 지금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지금 승진이가 자리에 없습니다.”

“몇 시에 나갔어요?” 퉁명스럽게 묻는다.

“두 시간 전에 입실했는데 아마 1시간 이내에 나간 것 같습니다.”

남자는 답을 하는 둥 마는 둥 인상을 쓰며 나갔다.


대학입시 수능 시험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고3 수험생과 부모 모두 신경이 예민해지고 있었다.

나는 승진이와 친구 현석이에게 조심스레 문자를 보냈다.


‘승진아, 현석아~ 독서실에서 나간 지 오래되었구나. 어서 들어오렴. ^^’


답이 없어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잠시 후 승진이만 들어왔다.


“승진아, 현석이와 어디 있다 왔어?”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마음이 잡히지 않아 학교 운동장에 있다 왔어요.”

“그랬구나. 시원한 음료수 줄 테니 마시고 공부하거라.”

승진이는 음료수를 받아 들고 터덜거리며 열람실로 향했다.


승진이가 들어올 때 담배 냄새가 풍겼다. 어디 구석진 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왔거나 PC 게임방에서 놀다 온 게 뻔했다. 얼마 전 인근에 PC 게임방이 생겨서 학생들이 들락거린다고 들었다.


수능일을 앞두고 수험생들이 몰래 담배를 피운들, PC방에서 게임을 한들 재미있을 리 없다. 초조한 마음에 잠시라도 도망치고 싶은 그 속은 오죽하랴 싶다. 부모나, 학교나, 사회에서 대학에 가라 하니 책을 붙들고 있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내 꿈이 무엇인지 생각조차 없는 학생이 많다.


나는 학생들과는 친하게 지내는 편이라, 대학 가서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묻곤 했다. 잘 모르겠다는 답이 많았다. 아니면 내신과 성적에 맞춰 00대학 00과를 지원하려고 한단다. 어떤 여학생은 경영학과와 간호학과 두 군데를 생각 중이라 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와는 무관하게 난수표처럼 복잡한 입시 전형에서 자신의 과목별 등급에 따라 대학을 맞추다 보니 전혀 다른 계통을 두고 고민한다.


동물원 우리에 갇힌 곰이나 늑대가 반복적으로 왔다 갔다 하거나 고개를 계속 끄덕이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과자나 빵을 던져 주어도 관심없다. 들로 산으로 달리며 스스로 사냥하여 배를 채우고 살아야 할 즘생을 좁은 우리에 가두고 먹이만 던져 주니 스트레스가 워낙 심해 그런 행동을 한다. 멀쩡하던 동물들이 우리에 갇히면 정신 이상이 되므로 그곳은 동물들의 정신병원인 셈이다.

사람 나이 열아홉이면 걷기보다는 뛰어야 몸이 풀린다. 남보다 앞서겠다는 생각보다 함께 뛰놀아야 할 나이다.


원래 책상에 진득이 앉아 있지 않던 곰처럼 덩치 큰 승진이는 수능시험이 다가오자 더욱 부산해졌다. 승진이는 학교를 파하고 학원 수업을 마치면 독서실로 왔다. 환승이 없는 순환선 열차를 타는 승진이의 초조한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고 있다. 독서실 휴게실에 앉아 책을 들여다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열람실로 들어가거나 밖으로 나가곤 했다.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시간쯤 지나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와 중년 여성이 독서실로 들어섰다. 두 사람 모두 얼굴에는 불꽃이 일고 있었다. 이런 경우, 등록 상담하러 온 학부모가 아님을 바로 알 수 있다. 승진이 어머니와 누나였다. 그들은 나에게 무슨 잘못을 따지기라도 하는 듯 질문을 쏟아냈다.


“승진이 지금 자리에 있어요?”

“네, 지금 자리에 있습니다.”

“언제 들어왔어요?”

“이십 분쯤 전에 들어왔습니다.”

“오늘 몇 시에 들어왔어요?”

“여덟 시 반쯤 입실했습니다.”

“요즘 자주 자리를 비우나요?”

“그런 편입니다.”

“언제부터 그랬어요? 한 달 전부터예요? 보름 전부터에요?”

“아마 보름은 조금 넘은 것 같습니다.”


다니는 학생이 백수십 명이 되어도 누가 열심히 공부하는지 아닌지를 대강 파악하고 있다.


“누구랑 같이 다닙니까?”

“현석이라는 학생과 친한 것 같아요.”

“맞아, 얘, 그 현석이란 애와 어울리고 있다니까.”

친구 현석이를 죄인으로 몰고 간다.


“엄마, 얘가 모의고사 보고 나서 조금 잘 봤다고 흐트러진 것 같아.”

“얘는~ 잘 봤다고 해야 그 성적으로 어디 가겠니?”


수능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 책 속에 빠져 있어야 안심이 되겠지만 공부에 소홀한 아들에 대한 원망과 초조함에 그녀들은 이런저런 말을 두서없이 뱉어내고 있었다.

정숙이 기본인 독서실에서 그녀들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었다. 나는 조용해 주기를 정중히 요청하며 한편으로는 수험생 가족의 초조함에 마음이 쓰였다.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꺼내 한 잔씩 드리고, 주제넘게 한마디 거들었다.


“제 딸과 아들 모두 졸업하고 직장 다니다 결혼했습니다. 저도 오래전에 고3 부모 경험을 했습니다만 지금 가장 초조한 건 승진이 자신일 겁니다. 힘드시겠지만 승진이에게 따뜻하게 말씀해 주시고 포근히 안아주시면 힘이 될 겁니다.”


독서실 아저씨의 충고는 이미 열불이 나 있는 그네들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아이를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불안한 표정으로 승진이가 나오자 아이 어머니는 한마디 해야겠다며 밖으로 나오란다. 덩치 큰 승진이는 순한 암소마냥 눈만 껌벅이며 고개를 숙이고 따라 나갔다. 건물 복도에서는 여인의 날카로운 말소리가 한동안 들려왔다. 잠시 후 승진이가 들어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늘어뜨린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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