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임종 / 조성현

by 조성현

어느 임종


늦은 밤 쿵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저녁으로 사료를 잘 먹고 30분 전에 소파로 뛰어 올라갔던 개가 맥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소리로 보아 머리부터 떨어진 것이다. 네 다리를 뻗고 부들부들 떨며 경기를 일으켰다. 눈을 보았다. 겁에 질린 눈빛이었다. 급히 심장 마사지를 하며 온몸을 주물렀다. 점차 두 눈의 초점이 흐릿해지면서 네 다리는 허공에서 버둥거렸다.


숨을 거칠게 내쉬면서 내뿜는 고약한 입 냄새에 고개를 돌렸다. 늙은 개의 썩은 이빨에서 나는 냄새를 오랫동안 맡아왔지만, 여전히 참기 어려웠다. 얼마 후 입이 반쯤 벌어진 채 송곳니와 이빨 몇 개가 드러나며 푸르딩딩한 혀가 한쪽으로 늘어졌다. 동공의 움직임도 멈췄다. TV에서 본 것을 흉내 내어 심폐소생술이랍시고 가슴을 강하게 압박 이완하였다. 아무 변화가 없었다. 이미 숨은 넘어갔다.


명이 다한 생명에 손을 댄들 얼마간은 숨을 더 쉴지 모르지만 결국 죽고 만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키우던 늙은 개가 숨을 쉬지 않자 사람에게 하듯 개 코를 막고 입에다 숨을 불어 넣는 인공호흡을 시켜 소생시켰다고 한다. 물론 얼마 살지 못하고 그 개는 죽었다. 얼핏 그 생각이 났지만 개 입에 내 입을 댈 자신이 없었다. 사람에게는 의사가 사망선고를 내리지만 이 개에게는 내가 사망선고를 내렸다. 16년간 한집에서 살던 하얀푸들 깨비가 눈을 뜨고 죽었다.


깨비가 16년 전 처음 내 집에 왔을 때가 생각났다. 개를 분양받으려는 사람들은 작고 아주 어린 강아지를 선호한다. 깨비는 그 시기가 지나 사가는 이가 없자 일없이 밥만 축내기에 판매자의 구박을 받은 것 같았다. 생존의 본능인지 모르지만 그 강아지는 아내에게 아양을 떨었다. 아내는 마음이 여렸다. 퇴근하며 한 잔 먹고 집에 온 나는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강아지를 안고 말했다.


“이제 한집에 살게 되었으니까 네가 죽을 때까지 같이 사는 거다.” 그 약속은 지켜졌다.


죽은 깨비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눈동자만 봐서는 푸른빛이 약간 감도는 검은 눈동자가 더 깊어 보이는 것 말고는 살아 있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뜨고 있는 눈을 감겨야겠다고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오래 키우던 개이지만 죽은 얼굴에 손을 대기가 꺼림칙했다.


온기가 남아 있는 사체를 조그마한 무릎 담요에 싸고, 커다란 쇼핑백에 담아 중간 문을 열고 현관에 두었다. 죽은 개를 집안에 둘 수는 없었다. 조금 전에 소주 한 병을 마셔서 더 이상 술 생각은 나지 않았다. 대신 달달한 봉지 커피를 타서 마셨다. 별맛이 없었다.


아내는 TV 뉴스에 개 학대 장면이 나오면 이를 부득부득 갈 정도로 개를 귀여워했다. 그런 아내가 깨비의 ‘임종’을 보지 못했다. 그날은 딸이 첫애를 낳고 퇴원하는 날이라서 아내는 딸네 집으로 갔다. 나는 깨비의 죽음을 아내에게 알리지 않았다. 저녁 먹으며 술을 한잔한 상태라 운전할 수도 없고, 깨비를 아낀 아내에게 알리지 않고 태워 가루로 만들 수는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집에 온 아내는 울음을 터뜨렸지만, 그 울음은 길지 않았다. 2년 전 심장병에 걸려 약을 먹여온 터, 그 약을 먹으면 1~2년 넘기기 어렵다 하여 마음의 준비를 해왔다. 개에게 약을 먹이는 일은 수월치 않다. 자칫 물릴 수도 있지만 아내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2년 가까이 약을 먹였다. 그 덕분에 2년씩이나 더 산 것이다. 내가 먹는 고혈압 약값은 두 달에 오만여 원이다. 보험이 없는 개 약값은 매월 십오만 원이었다.


인터넷을 뒤져 바로 화장을 끝낼 수 있는 곳으로 차를 몰았다. 개 화장 비용은 무게에 따라 다르다. 깨비는 5kg 이내라 이십만 원이었다. 만약 70kg이라면 백삼십만 원이다. 사람 화장 비용은 화장장이 위치한 지역민의 경우 십이만 원이고 외지인은 백만 원이다. 사람 화장 비용이 더 싸다. 개가 죽으면 아무 데나 묻을 수도 없다. 법에 걸린다. 돈 없으면 죽은 개 치우기도 어렵다.


개 화장장은 인가가 없는 소규모 공업지대 복판에 있었다. 까만 바지에 하얀 드레스 셔츠를 입은 노타이 차림의 직원이 흰 장갑을 끼고 깨비 사체가 든 쇼핑백을 받아 들었다. 개 사진을 보내 달라는 그의 요청에 문자 첨부로 전송하였다. 2층 사무실 겸 대기실로 올라가 결제를 마쳤다. 홀을 채운 신발장 같은 납골당에는 칸칸마다 유골함과 개 사진, 견주가 가져다 둔 기념물이 그득하다. 사람 납골당과 비슷하다. 유골함에 넣어둔 사람 골분도 몇몇 이들의 기억 속에 잠시 남았다가 사라지므로 넉넉잡아 삼십 년도 못가지 싶다. 하물며 개 납골당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준비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안내받은 작은 방으로 들어섰다. 벽걸이 모니터에는 깨비 사진이 올라와 있다. 영정사진인 셈이다. 그 아래 하얀 종이에 싸인 깨비 사체가 놓여있었다. 하얀 종이는 수의이고 방은 빈소였다. 조문객 없는 빈소에 나와 아내는 졸지에 상주가 되었다. 애도의 시간을 가지라고 하였지만 7월의 무더위에 추모 시간으로 2~3분이면 족했다.


하얀 장갑을 낀 직원이 상자에 담긴 깨비 사체를 들고 화로 앞 유리 너머로 우리에게 꾸벅 절을 했다. 아버지 어머니 화장할 때에도 유리 너머 화로 앞에서 직원이 절을 했었다. 이어 개 사체는 화로로 옮겨져 30분씩이나 걸려 가루가 되었다. 기본 유골함은 화장비 이십만 원에 포함되지만 화려한 유골함은 비싸다. 굳이 비싼 유골함을 택하지 않았다. 주먹만 한 기본 함에 깨비 뼛가루가 담겼다.


지인의 개가 10살이 넘어 병에 걸렸다. 죽음이 가까워지며 고통이 심해지자 견주는 동물병원에서 안락사를 요청했고, 처리도 병원에 맡겼다.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거기에 비해 깨비는 장수에 천수까지 누렸고, 죽기 직전까지도 팔팔하여 고통 없이 죽었다. 사람도 어려운데 집에서 임종을 맞았고 주인이 임종을 지켰으니 사람보다 나은 상팔자인 셈이다. 반면 나는 부모님 돌아가실 때 임종을 지키지 못하였다. 불효자식이다.


개 화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며, 아침밥을 대충 먹어서인지 시장기가 돌았다. 맛집을 찾아 점심을 제대로 먹고 싶었지만, 아내는 입맛이 없다며 거절했다. 집에 돌아와 혼자 라면을 끓여 먹었다. 며칠 후 혼자 컴퓨터 파일에 저장해 둔 깨비 동영상을 돌려 보았다. 죽기 얼마 전에 찍은 것이다. 요즘도 그놈 생각나면 가끔 혼자서 꺼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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