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살아요? / 조성현

by 조성현

어디 살아요? / 조성현


노원구아파트거주교사 D(27.여) 강남 사는 남자를 선호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친구들 사이에 청담·반포·대치·서초·압구정 남자가 소개팅 들어오면 ‘꺅!’, 잠실·용산·분당·목동 남자를 만나면 ‘오호~’, 그 밖의 지역은 ‘응?’ 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해요. 대놓고 말은 못해도 동네로 재산 수준은 가늠할 수 있잖아요?


강남구원룸거주회사원 C(29.여) 도곡동 원룸으로 이사 왔어요. 주변 사람들 대우가 180도 달라지더군요. 인천 살 때는 ‘거기서 어떻게 다니냐’ 던 사람들이 도곡동에 산다니까 ‘혹시 타워팰리스냐’ 물어봐요. 뚝 끊겼던 소개팅도 몰려들기 시작했고요.

모 일간지의 기사 내용이다. 이것을 보면 나처럼 ‘그 밖의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자식들 짝지어 보내기도 어렵겠다. 그래도 나는 근사한 사위를 얻었다. 몰락한 집 아들에게 겁 없이 시집온 제 어미를 닮아서인가, 딸아이도 일을 저질렀다. 겨울 스포츠인 스노우보드 동아리에 가입하여 겨울만 되면 주말마다 스키장에서 살던 딸아이를 동아리 회원인 어느 사내가 눈여겨보았다. 정 많고 감동 잘 받던 딸은 사내의 적극적인 구애에 마음이 흔들렸다. 스키장에서 대형 꽃장식을 준비하며 무릎까지 꿇고 청혼한 사내에게 딸아이는 함박웃음으로 답했다.


딸에게 사내 이야기를 들은 아내는 펄쩍 뛰었다. 학벌, 직장, 집안은 문제가 아니었다. 딸보다 나이가 열 살이나 많았던 것이다. 어미는 딸에게 “몇 년 후면 너는 서른이지만 그 사람은 마흔이야. 마흔에 자식 보면 아이가 스무 살 될 때 아비는 환갑 나이야”라며 반대했다.


얼마 후 딸의 생일날, 사내는 양주 한 병을 사 들고 내 집에 찾아왔다. 식사 분위기가 어색하게 흐르던 중, 사내는 무릎을 꿇고 떨리는 목소리로 딸을 주시면 행복하게 해 주겠노라며 간청을 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사내가 따라주는 술에 취기가 오른 나는 웃으며 승낙조의 말을 했지만, 아내는 특유의 냉정함으로 열 살의 나이 차 문제를 조목조목 거론하였다.


“입장을 바꾸어 그 집 부모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 것 같아요?”


고개를 숙이고 눈물만 떨구는 딸을 보며 나는 사내를 데리고 나와 생맥주 집을 거쳐 포장마차로 향했다. 술잔이 꽤나 여러 번 오가며 얼마나 내 딸을 사랑하는지, 딸의 고집스런 성격까지 들춰내며 그래도 평생 사랑하겠냐고 묻고 또 물었다. 술이 원수라, 기억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순한 얼굴의 사내는 두 눈을 또렷이 뜨고 정말 사랑한다고 말했던 것 같다. 몇 달에 걸친 딸아이의 눈물 바람에 결국 아내도 승낙을 하고 말았다.


따지고 보면 내 딸도 내세울 건 별로 없다. 예쁘장한 외모에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정도다. ‘어디 살아요?’의 기준으로 보면 관심권 밖이다. 내 사위도 마찬가지다. ‘그 밖의 지역’에 살고 있는 소박한 집안의 평범한 회사원이다. 무엇보다 나이가 딸보다 열 살이나 많으니 주위에서는 딸아이가 아깝다고들 한마디씩 했다. 어느 부모든 자기 자식이 낫다고 여기겠지만 나나 내 아내도 내 예쁜 딸이 아까운 건 사실이었다.


내 딸과 사위는 ‘그 밖의 지역’에서 연립주택 1층을 전세로 얻어 신접살림을 차렸다. 내부 수리를 했다지만 해가 잘 들지 않아 대낮에도 밝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내 딸은 출근하면 종일 제 남편이 보고 싶어 퇴근 시간이 기다려지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코앞에서 제 신랑 얼굴을 보면 이 세상 최고의 미남으로 보이며 무척 행복하단다. 나중에 남편이 늙어 벌이가 시원치 않아도 문제가 없단다. 간호사는 나이 먹어도 오라는 데가 있어 자기가 벌면 되기 때문이란다. 딸에게는 사랑이 최우선인 셈이다.


주변에서 나에게 시집간 딸이 어디 사느냐 묻곤 했다. 나는 ‘그 밖의 지역’ 연립주택이 내 딸과 사위의 행복한 보금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시댁과 친정 양쪽 집에 오가기 편하도록 중간쯤에 자리를 잡았다느니, 두 아이들이 무척 사랑한다느니 엉뚱한 말로 얼버무렸다. 딸아이가 강남 3구 어느 아파트에 살고 있어도 그랬을까? 겉 다르고 속이 달랐다.

같은 동네 살다가 강남으로 이사 간 지인 부부가 우리에게 강남으로 이사 오라고 권했다. 강남 가서 살아보니 강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는데, 나는 그 동네에 살 형편도 안 되지만 굳이 그쪽에서 살고 싶지도 않았다.


오래전부터 강남 학생들 사이에 아파트 평수로 친구들이 갈리고, 값비싼 외제 유모차를 가진 젊은 엄마들이 자신들만의 모임도 만들었다고 한다. 돈으로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믿는 천박한 천민자본주의자들이라고 흉을 보았다. 그들이 그런 사람들이라고?


내가 사는 노원구 상계동은 불과 삼사십 년 전만 해도 대표적인 서울의 빈민촌이었다. 60년대 당시, 정부에서는 노동자의 저임금에 기반을 둔 수출 공업위주의 정책을 펼쳤고, 저임금을 유지하고자 농민을 희생시키는 저곡가 정책을 시행했다. 농촌에서 축출된 농민들은 서울로 올라와 도시 빈민층을 형성했다. 정부는 도시 정비를 이유로 청계천변 판자촌을 철거하면서 빈민들을 강제로 성남, 상계동 등지에 풀어 놓았다. 이 후 도시 확장에 따라 이곳 외곽의 빈민촌은 또다시 강제 철거되었다. 이렇듯 상계동은 빈민, 철거 등 가난의 이미지가 깊게 박혀 있는 동네다.


나를 돌아본다. 누가 나에게 어디 사는지 물으면 상계동에 산다고 말했나? 아니다. 노원 또는 롯데백화점 노원점 인근에 산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상계동 산다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것이다. 나야말로 가진 것도 없는 천박한 천민자본주의의 숭배자였다.


사랑과 행복에 대한 딸아이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가, 얼마 전 모임에서 어느 도예가 선생님이 나에게 ‘어디 살아요?’ 물었을 때 자연스레 상계동이라 답했다. 나도 이제 철이 드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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