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때 도암면을 지나고 있었다. 파출소, 보건소, 면사무소, 우체국 등 행정기관이 줄지어 서 있는 거리에 식당이라곤 몇 되지 않았다. 면사무소를 지나 허름하고 작은 백반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손님들이 바글바글한 데 칠십 대 여주인 혼자 음식 조리와 서빙까지 하느라 분주하다. 주인장은 반찬 십여 가지와 찌개, 밥을 담은 커다란 쟁반을 통째 식탁에 올려놓는다. 반찬 가짓수가 많지만 모두 실하다.
혼자인데 밥 먹을 수 있는지 주인 할머니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들어와 주춤대는 사내에게 주인은 잠시 망설이는 듯싶더니 앉으라 한다. 혼자 먹나 둘이 먹나 쟁반 하나에 담긴 반찬의 종류와 양은 똑같다. 주인 할머니가 혼자는 안 된다고 하더라도 섭섭하지 않았을 것이다.
쟁반 가득 음식을 내어주며 바쁜 와중에 할머니가 어디 가느냐고 물으신다. 강원도까지 걸어서 간다라고 하니까 “워매 징하네” 하며 밥 한 공기 더 주신다. 고마움의 표시로 나는 반찬 한 올까지 남기지 않고 다 비웠다. 남도 인심이다. 나는 서울 토박이들만 아는 ‘물장수상’을 실현한 셈이다.
십여 년 전 완도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홀로 여행하며 완도에서 제주행 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두 시가 넘어 시장기가 돌아 식당을 기웃거리다가 ‘돼지등갈비찜 정식 8,000원’이라고 적힌 간판을 보고 들어갔다. 식당에는 주인장인 중년 여성과 할머니, 종업원이 식사 중이었다. 모든 식탁에는 휴대용 가스버너와 등갈비찜 냄비, 먹다 남은 반찬과 밥그릇, 수저와 빈 소주병 등이 어지러이 널려 있어서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단체 손님이 나간 뒤 산더미 같은 설거지를 하기 전에 식사하는 중이었다.
나는 그분들에게 식사할 수 있는지 물었다. 잠시 주춤하더니 들어오라며 자신들과 같이 먹자는 것이었다. 이래도 되는지 생각하기보다는 고픈 배를 해결하는 게 먼저였다. 그녀들의 식사 자리에 덥석 앉았다. 후덕하게 보이는 여주인이 돼지등갈비와 묵은지를 잔뜩 내왔다.
아니 이런 경우가 있을까? 초면인 식당 손님을 자기네 먹던 밥상에 같이 먹자고 청하는 주인이나 같이 먹겠다는 손님이나 별난 사람들 아닌가. 체면도 잊고 허겁지겁 그 많은 등갈비찜을 다 먹었다.
중년의 여주인과 종업원, 할머니까지 세 사람은 여행에 대해 간단히 물어보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웃 어느 집 밭에 심은 고추가 어떠하더라, 누가 뭘 먹으라고 주었는데 맛이 어떻더라, 미장원 여자가 뭐라 하더라는 등 일상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하고 구수한 남도 사투리로 들으니 입은 먹어서 즐겁고 귀는 들어서 흥겨웠다. 밥상 한구석에는 내가 먹고 난 돼지갈비뼈가 수북했다. 후식으로 커피와 과일도 내준다. 그녀들의 이야기에 나도 끼어들었다.
제주 가는 배 시간이 가까워 아쉬운 마음으로 일어서 셈을 치르려 하는데 여주인이 그냥 가라 한다. 그래도 식당에서 밥 먹고 그냥 갈 수 없어 돈을 건네자, 자기네 먹는 밥상에 같이 먹었는데 무슨 밥값을 받겠는가 하며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려는데 팔십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내 손을 잡으시고는 내 늙어 또 볼지 모르지만, 완도 오면 꼭 들르라고, 행중에 무사하라고 말씀하신다. 나도 할머니 손을 꼭 잡았다.
오늘 저녁은 강진 시내 사의재 주막에서 국밥 한 그릇 먹으려고 했으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 하루 쉰다는 쪽지를 보고 돌아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