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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현 Dec 23. 2024

폭우를 만나다

전남 장흥

폭우를 만나다 장흥    

3일 차(4월 4)


강진~군동면~장흥읍~부산면 호계리~장흥 장동면 31km / 누적 91km     


알람 소리를 들으며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린다. 몸이 뻐근하지만, 아침 햇살은 맑다. 며칠 만에 보는 해다. 햇빛은 비타민D3를 합성하여 골다공증을 예방해준다고 하지만, 오늘 난 그냥 좋다. 오후부터 비가 많이 온다길래 부지런히 걸었다. 하루에 30km 이상 연이틀 걸었더니 힘에 부친다. 일정을 단축할까 생각했으나 오늘 광주에 사는 선배 수필가 한 분과 장흥에서 만나기로 하여 예정된 31km를 걷는다.


해남 땅끝마을에서 강원도로 가는 길은 강진에서 갈린다. 오지 여행가였던 국제구호활동가 한비야 님은 세계 오지 탐험을 마친 후 한반도 땅끝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걸었다. 그녀는 강진에서 북으로 영암-나주-광주-담양-순창을 거쳐 동북쪽으로 향했다. 나는 작년에 목포에서 서울까지 1차 국토종단 하며 목포-무안-나주-광주-담양을 걸었기에 이번에는 강진에서 동북쪽으로 장흥-보성-화순-곡성-순창으로 길을 잡았다.   

  

장흥 시내를 벗어나 부산삼거리에 이르면 직진과 좌 갈래로 길이 나뉜다. 직진하면 거리는 짧지만 4차선 도로이고 터널도 지나야 한다. 직선을 버리고 곡선의 구도로를 택했다. 이 길은 왼쪽으로 해발 540m의 용두산과 오른쪽으로 806m의 제암산 사이에 끼어있어서 양쪽으로 펼쳐진 논이 넓지 않다. 용두산 자락에는 마을이 듬성듬성하다.


2시가 넘으며 먹구름이 낮게 드리워 대낮인데도 사위는 어두워졌다. 가끔 지나는 차량은 전조등을 켰다. 오가는 사람 하나 없고 길에서 떨어진 집에서는 불빛조차 없었다. 적막하고 어두운 길을 걸으며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했다. 어디든 도로에 사람이 없더라도 나 혼자라는 느낌은 없었는데 여기는 달랐다. 


두 시 반이 지나며 굵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폭우에 가까웠다. 아래위 우비를 꺼내 입었고, 등산 모자 위로 우비 모자를 덮었다.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 머리를 때렸다. 우비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무게감이 예사롭지 않았다. 비 피할 곳이 없는 길에서 걸음을 멈출 수는 없어서 계속 걸었다. 빗물에 젖은 안경을 수시로 닦으며 전방 주시에 집중하고 길가에 붙어 걸었다.


남해고속도로 교량 아래에서 비를 피할 겸 잠시 멈추었다. 교량이 워낙 높아서 비바람에는 소용이 없었지만, 그래도 지붕 같아서 선 채로 휴식을 취했다. 


비를 막아주는 우비라는 게 그렇다. 밖에서는 빗물을 막아주지만, 안에서는 피부가 숨 쉬는 것도 막는다. 공기 중으로 숨이 발산하지 못하여 땀이 고인다. 밖에서는 빗물이 흐르고 안에서는 땀물이 흐른다. 땀이 나지만 동시에 춥다. 


다시 한참을 걷다가 버스정류장으로 들어갔다. 힘이 들어 오늘 종착지까지 버스 탈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한번 편해지면 습관이 된다. 번개가 번쩍이다가 내는 천둥소리에 대지가 울린다. 오늘처럼 걷는 건 극기훈련이다.


선배 수필가 박석구 선생과 장동면사무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면사무소이므로 비 피할 곳이 있으려니 했으나 오늘은 토요일이라 모든 건물이 잠겨 있었다. 아무도 없는 시골 면사무소의 부속 건물 처마 귀퉁이에서 우산을 받쳐 들고 오들오들 떨며 선생을 기다렸다. 


남들이 보면 처량하게 느낄 테지만, 나는 이조차 즐긴다. 약간의 돈과 약간의 시간이 허락되기에 전국을 유람하는 것 아닌가. 선배와 닭갈비에 소주로 춥고 배고픈 몸을 달랬다. 젖은 신발 말리는 데에는 신문지만큼 좋은 것도 없다. 신발 안에 신문지를 뭉쳐 끼워두면 아침에 신기 좋다.


오늘 만난 박 선생은 고교 문예반부터 활동한 문청이었지만 오랫동안 생업 때문에 문학을 떠났다가 뒤늦게 문단에 돌아오셨다. 그분의 글에는 미사여구가 없다. 자신의 삶을 솔직 담백하고 진정성 있게 표현한다. 선생은 전남 영암 농촌에서 태어났다. 비록 청소년기부터 광주와 다른 도시에서 살았어도 선생에게는 삭막한 도시풍이 보이지 않는다. 푸근한 형님 같다(선생은 몇 년 후 전남 영암 300년 된 옛집으로 귀향하였다).  

   

들풀의 향연


강진 시내를 벗어나며 동쪽으로 3km 직선도로를 만났다. 걷는 것도 맛이란 게 있다. 지방도로는 대부분 2차선에 길이 휘어져 있지만, 가끔 끝이 보이지 않는 직선 길을 만나면 지루하다. 남도에는 평야가 넓어서 끝이 보이지 않는 직선도로를 만나곤 한다. 지금 이 길도 긴 편이다. 


잠시나마 지루함을 잊게 하는 건 길가에 핀 잡초다. 아스팔트 길 가장자리에는 어디나 잡초가 무성하다. 걸음을 멈추고 유심히 보았다. 누가 씨를 뿌리지도 가꾸지도 않았지만, 자동차 매연과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도 잘 자란다. 강인한 생명력은 물론 가녀린 잎사귀 하나하나가 장미보다 더 예쁘다. 솔로몬 왕의 부귀영화도 들에 핀 꽃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조성한 화려한 원색의 꽃밭을 보며 결코 예쁘다고 느끼지 못하였다. 그런 내가 자동차가 일으키는 바람에 흔들리는 들풀과 들꽃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농부들은 들풀과 들꽃이 가장 성가시다. 뽑아도 비 한 번 오면 쑥쑥 자란다. 제초제를 뿌려도 질기게 다시 핀다. 농부들에게 들풀의 향연이 어쩌고저쩌고하다가는 몰매 맞기 십상이다. 


내일은 보성군을 지나간다.


4월이라 곳곳에 벚꽃이 만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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