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날씨가 도와주었다. 약간의 안개비 정도가 조금 내렸을 뿐, 비록 우중충한 날씨였지만 바람도 세지 않아 걷기 좋은 하루였다.
녹차의 고장 전남 보성에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미력면에서 복내면까지 12km 도로에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어느 곳에서는 듬성듬성 서 있고, 다른 곳에서는 빽빽하다. 그 길을 나는 개선장군 기분을 내며 힘차게 나아갔다.
메타세쿼이아의 대표 고장 담양에는 입장료를 내고 2km 산책할 수 있다. 유명 관광상품이다. 이곳 보성의 메타세쿼이아는 도로에 줄지어 있어서 지나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앞으로의 여정 동안 오늘 걷던 멋진 길을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듬지의 새 둥지가 소담스럽다.
보성군을 지나며 길 가던 초로의 남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국 길림성에서 이곳까지 한국에 돈 벌러 온 부부였다. 대처에 일 보러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이란다.
“여기서는 무슨 일 하세요?”
“농사일하고 있어요.”
“중국에서는 무슨 일 하셨어요?”
“중국에서도 농사일했어요.”
“한국까지 오셔서 힘들지 않으세요?”
의외의 답을 들었다. 자기들은 여기서 몇 년 벌어 중국으로 돌아가면 생활이 풍족해지지만, 한국 사람들 보면 사는 게 힘들어 보인단다. 잠시 헷갈렸다.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이 중국보다 훨씬 높고, 그 때문에 중국에서 한국으로 힘든 일을 마다치 않고 돈 벌러 오지 않는가.
부부의 눈에는 한국 사람들이 자신들을 고용하며 돈은 많아 보이지만 쫓기며 사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하긴 OECD 회원국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가 거의 최하위다. 갤럭시가 세계를 제패하고 현대자동차가 세계를 누비고 다녀도 국민이 불행하면 무슨 소용 있을까. 아랫목은 절절 끓는데 윗목은 냉골이다.
이들 부부는 조선족인가 재중교포인가?.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미국 국적의 한국인을 재미교포라 해요. 일본에 사는 사람을 재일교포라 하는데 중국에 사는 한국인은 왜 조선족이라 하지요? 재중교포가 맞지 않나요?”
언론에서건 어디서 건 조선족으로만 들어왔기에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당황했다. ‘조선족’은 다민족 국가인 중국에서 소수민족 중 하나인 우리 교포를 두고 부르는 말이다.
중국에 사는 그들도 분명 한국 이민자의 후손인데 우리는 그들을 조선족이라고 부른다. 요즘에는 중국이 미국과 빅2의 강국이 되었다. 예전에 한국인은 경제적 이유로 중국인들을 멸시에 가깝게 무시했다. 돈 몇 푼 가지고 중국에 가서 거들먹거렸다. 마치 60년대 일본인들이 한국에서 하던 짓과 다름없었다. 우리가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것도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천박한 천민자본주의에 물들었기 때문 아닐까.
한국에 온 조선족(재중교포)들 다수는 자신들의 정체성은 중국에 있다고 한다. 이것도 한국에서 그들을 조선족이라 부르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유야 어떻든 그들은 재중교포다.
어제에 이어 오늘은 순천에 사시는 선배 수필가 안규수 선생이 격려차 찾아주셨다. 양탕 곱빼기에 밥 두 그릇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해치웠다. 점심시간에 혼자 먹을 식당을 찾지 못해서 지니고 있던 양갱과 과자로 허기만 달랬는데 저녁에는 포식하였으니 살은 빠지지 않을 것 같다. 발은 고생, 입은 호강이다. 안규수 선생의 글에서는 서정미와 서사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다. 전체적으로는 이야기 전개가 주를 이루지만 글 속에서는 비유와 은유가 섞여 있어서 고품격 글을 쓰는 분이다.
내일은 보성 복내면에서 화순 동복면까지 30km를 걸어야 한다. 걷기 나흘째이지만 아직도 걸을 때마다 발바닥이 아프다. 하지만 난 걷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