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화순
아뿔싸 길을 잘못 들었네
자동차가 드문드문 오가고 지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길을 신바람 나게 노래를 부르며 걸었다.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을 부르다가 경상도가 떠올라 <부산 갈매기>를 멋들어지게 불렀고, 이어 충청도가 생각나 <대전발 영시 오십 분>을 불러댔다. 육지 노래만 할 거냐, 아니다 하여 <울릉도 호박엿>에 이어 이미자 가수의 <섬마을 선생님>도 목청껏 소리를 내었다.
이쯤 되면 나는 지역감정 조장하는 정치인들과는 달리 국민 화합의 아이콘이 된 셈이다. 너 자신을 알라! 노래를 부르기는 했으나 제대로 기억하는 가사가 없어서 즉석 작사로 불렀다. 듣는 이 없는 이 자유로움이여!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자유의 바람> 등등 김광석으로 가다가 트윈폴리오가 등장하여 <웨딩 케익>, <하얀 손수건>으로 넘어간다. 메들리 원맨쇼 공연이다. 내가 들어보면 그럭저럭 들을 만한데, 노래방에서 내가 한 곡 부르면 다시 청하지 않는다.
두 시간 가까이 걸어 쉴 때가 되었다. 마침 어느 마을 앞 멋들어진 정자가 눈에 들어왔다. 마을 정자는 도보 여행자에게 최고의 쉼터다. 그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할머니 몇 분과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근에 등산할 높은 산도 없는데 등산복에 커다란 배낭을 메고 가는 나에게 할머니들은 호기심으로 뭐 하는 사람이냐, 어디까지 가냐 등등 질문이 이어졌다. 도보여행 중이고 오늘은 복내에서 화순 남면(사평면)까지 간다고 답했더니, “오매 반대로 한참을 와부렀네” 합창을 하신다.
스마트폰을 꺼내어 위치를 확인했다. 아뿔싸! 길을 잘못 잡아 동북 방향으로 가야 할 길을 서쪽으로 잡아 9km나 반대 방향으로 간 것이다. 그것도 비가 와서 우산을 쓰고 세 개의 고갯길을 헉헉대며 넘었다. 도보여행할 때 길에 취해 맥 놓고 걸으면 길을 잘못 들 때가 있다. 오늘이 그날이었다. 걸어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무려 사십여 킬로미터를 걸어야 한다. 스마트폰 지도를 펼쳤다. 화순까지 버스로 이동하여 화순에서 도착지 사평면까지 걷기로 하였다. 그러면 얼추 하루 걸을 거리가 된다.
어제 올린 글 내용 중 하나를 수정한다. 보성 곳곳의 메타세쿼이아 길을 보며 이런 멋진 길을 이번 여행에서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 했지만 이것은 나의 짧은 생각이었다.
길을 가며 옆을 보고 뒤를 돌아보니 어디 하나 아름답지 않은 길이 없다. 포근하게 감싸는 산이 이어지고, 그사이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농가가 있고, 굽이굽이 휘어지는 길과 오르고 내리는 길, 길가에 피어나는 들풀조차 아름답다. 군데군데 누워있는 둥그런 무덤도 우리의 산과 들에 안겨있다. 아름다운 우리 땅, 우리 길이다.
오늘 길을 잘못 들어 예정보다 9km를 가지 못했다. 내일부터 조금씩 보충해야겠다. 내일은 화순군 남면에서 곡성군 옥과면까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