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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현 Dec 27. 2024

바르게 살자?

전남 곡성

바르게 살자? / 곡성     

6일 차(4월 7)

화순군 남면(사평면)~동복면~북면(백야면)~곡성군 오산면~옥과면 36km / 누계 180km     


오늘은 몸에 무리가 갈 정도로 힘든 날이었다. 어제 길을 잘못 들어 손해 본 9km를 매일 조금씩 보충하려 했지만, 욕심이 생겨 오늘 하루 만에 모두 채웠다. 도보 중 필수인 중간 휴식도 걸렀다. 아침 8시에 걷기 시작하여 9km 지점에서 휴식을 취하고, 21km 지점에서 두 번째로 쉬고는 36km 도착지 곡성 옥과면까지 쉼 없이 걸었다. 


욕심을 부리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30km 지점인 곡성 오산면에서 갑자기 왼발 새끼발가락에 심한 통증을 느끼며 주저앉았다. 양말을 벗고 보니 물집이 터진 것이다. 물집을 짜내고 소독약 바른 후 반창고로 조였다. 정상보행이 어려워 절룩이며 걸었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는데 통증이 심해 속도가 나지 않았다. 경치 구경이고 뭐고 오로지 목표 지점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해가 저물어가자 한기가 돌았다. 면 소재지이지만 대학교가 있어서 하루 묵을 곳이 있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맡겼다.


허기와 피곤에는 고기가 필요하다. 오늘 저녁에도 역시 돼지 부산물이 그득한 순대국밥을 찾았다. 오늘은 처음으로 터널을 지나왔다. 칠백 미터 길이의 독재터널이다. 도보 행자들에게 터널 통과는 악조건이다. 앞으로 여러 개의 터널을 지나야 한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니 군말이 필요 없다. 


바르게 살자?


가까운 곳에 농가도 없는 밭두렁에서 꼬부랑 할머니가 쑥인지 뭔지 캐고 계신다. 옆에 유모차 모양의 보행보조기가 있는 걸 보니 한참을 걸어 여기까지 오신 것 같다. 일이 삶이고 삶이 일이 되어 평생을 살아온 이 땅 민초의 모습이다.


그런데 민초들이 뭘 그리 잘못 살았다고, 군청이나 면사무소 옆 심지어 동네 어귀 어디든 ‘바르게 살자’라고 새긴 커다란 석물이 흉물스럽게 서 있다. 


새벽부터 일어나 논과 밭에서 열심히 일했건만 나라에서는 산업화라는 미명으로 농업을 희생시켜왔다. 배춧값이 오르면 외국에서 대거 수입하여 값을 뚝 떨어뜨린다. 다음 해 배추가 풍년이면 똥값 되어 농민들은 피멍울을 안고 갈아엎는다. 배추만 그런가, 양파 파동은 또 어떤가. 이 모든 문제를 농민 개개인의 문제로 돌린다. 


외국에서는 농산물 정보화 시스템을 구축하여 과량 생산을 막는다는데, 우리는 제자리걸음이다. IT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육칠십 년 대부터 시작한 산업화 시대의 도시 노동자 그리고 농지에서 축출된 농민들은 저곡가 저임금 정책의 희생양이 되었다. 경제 발전의 과실은 기업 중에서도 대기업이 독점하다시피 가져갔다. 


수많은 자영업자가 망해가도 개인 문제로 돌린다. 고용 유연성이라는 허울 좋은 단어로 수많은 회사원이 정년 전에 직장에서 쫓겨난다. 중년의 나이에 재취업은 매우 힘들다. 결국, 600만 자영업자의 대열에 합류하여 치열한 경쟁으로 내몰리고 다수는 도태되는 게 현실이다. 정말 개개인이 무지하고 바르게 살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인가?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민초들은 남을 사기 칠 줄도 모르고 열심히 일해왔다. 그러나 여전히 윗목 냉골에서 지내고 있다. ‘바르게 살자’ 석물이 갈 데는 따로 있다. 김지하 시인의 시 「오적」에 따른다면 재벌, 국회의원, 고위공직자, 장성, 장‧차관 집 앞에다 옮겨다 놓아야겠지만 지금은 무소불위의 권력 기관인 검찰청과 권력 해바라기인 언론사 앞에도 두어야 한다. 


혹자는 청와대 앞마당에도 옮겨다 놓아야 한다고 할지 모르겠다. 문구는 바꿔서. ‘바르게 살아라!’


오늘의 이모저모


오늘은 우리 산하의 또 다른 아름다움에 홀렸다. 지나는 길 근처에 산 몇몇이 앉아 있고, 그 뒤에 또 다른 산이 서 있고, 저 멀리 다른 산이 아스라이 팔짱을 끼고 있다. 병풍을 두른 듯, 겹겹이 둘러친 산의 모습이다. 


어느 하나만 우뚝 솟아 있으면 멋이 나지 않는다. 일본 후지산을 보며 모양이 별나다고 생각할지언정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다. 우리의 산은 혼자 잘났다고 우쭐대지 않는다. 모두 이웃하여 다정스레 어깨동무함으로써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움을 더하며 함께 간다. 


우리의 산은 이처럼 어울려 지내건만 어이하여 사람들은 돈과 권력을 더 가지려 머리를 들이밀며 조화와 평화를 깨는지 모르겠다.


평온한 길이다
한폭의 그림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저 석물...
재를 넘다 아래를 보니...
한 겹, 두 겹, 세 겹... 우리의 산은 서로 이웃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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