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곡성
식당 하나 없는 면 소재지
도보 여행하며 취사까지 하려면 장비와 식자재, 물 등 배낭 무게가 상당하다. 젊다면 모를까, 나에겐 어림없다. 매식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아침 식사가 가능한 식당을 찾기란 쉽지 않다. 숙소에서 간단히 라면을 끓여 먹으려고 초소형 버너와 가벼운 양은냄비를 준비하였다. 물론 김치는 없다.
라면으로 아침을 먹고 21km를 걸어 두 시가 가까워서야 도착한 화순군 북면(백아면). 중간에 9km 지점인 동복면을 지나며 허기가 졌지만, 오늘 걸을 거리 36km를 감안하여 북면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면 소재지이므로 식당은 당연히 있으리라 여겨서 ‘뭘 먹을까, 밥은 두 그릇 먹어야겠다’라며 먹을 희망으로 도착했다. 그런데 내가 그동안 보아오던 면 소재지와 달리 식당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해우(解憂)에는 관공서가 깨끗하여 으뜸이다. 겸사겸사 파출소에서 일을 본 후 경찰관에게 식당을 물었다. 그의 말로는 식당은 없고 면사무소 앞에 간판 없이 면의 공무원들 밥 차려주는 곳이 있으니 거기 가보라는 것이다. 면사무소, 파출소, 119, 우체국, 보건지소, 복지회관, 농협, 초등학교, 중학교 등 각종 행정관서 등속이 즐비한 면 소재지에 식당 하나 없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경찰관이 알려준 간판 없는 식당을 찾아갔다. 드르륵 문을 옆으로 밀고 들어갔는데 전등은 꺼져 있고 주방에 아주머니 한 분이 마지막 정리를 하고 있었다. 남은 밥이라도 있는지 물었지만 없단다. 이미 밥때가 지나서 문을 닫은 후였다.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동복면을 지나며 식당을 지나친 게 후회가 되었다.
오늘처럼 강행군할 때는 뭐든지 열량 많은 음식으로 배를 채워야 했다. 근처 자그마한 하나로마트에서 소시지와 빵 두 개를 샀다. 초등학교 안에 들어가 등나무 아래서 게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체력 보충에 고기가 필요하여 소시지를 먹었지만 꿩 대신 닭이 되지는 않았다. 가지고 다니던 과자도 꺼내 먹었다.
식당 하나 없는 북면은 청정지역이다. 농가가 산 아래에 아늑하고 평화롭게 자리 잡고 있다. 논과 밭도 넓지 않다. 산이 많으니 공장이 들어서기 어렵다. 자연스레 청정지역이 된 것 같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당일 목적지에 도착하여 숙소에 들어가면 옷걸이가 몇 개인지, 방안에 빨래한 옷을 널 공간이 있는지 살핀다. 옷걸이가 부족하면 여관 주인에게 요청한다.
우선 먼지와 땀으로 범벅인 티셔츠와 아래위 속옷, 양말을 세면대에서 빨래한다. 매일 손으로 물을 짜내다 보니 셔츠 소매 실밥이 터진다.
배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 속옷과 셔츠, 양말은 착용한 것 외에 한 벌만 가지고 있기에 다음 날 아침 출발하기 전까지 말려야 한다. 두꺼운 등산용 양말이 마르지 않으면 다음 날 배낭에 안전핀으로 양말을 매달고 다닌다.
허름한 여관의 세면대는 막히기 일쑤여서 물바가지로 퍼내곤 한다. 바지는 한 벌밖에 없으므로 5~6일에 한 번 세탁한다. 빨래를 마쳐야 목욕을 하고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목욕할 때 따뜻한 물은 몸의 피로를 풀어주지만, 발 관리에는 해롭다. 온수 목욕을 마치면 반드시 찬물로 무릎과 발을 식혀준다. 관절을 오래 사용하다 보면 염증이 발생하는데 찬물이 화기를 가라앉힌다. 자리에 누워서 다리를 올려 벽에 기대는 것도 발의 피로회복에 도움이 된다. 마라톤을 즐기던 동료 수필가의 조언이 고맙다.
정이 깊은 죽마고우 부부
오늘 도착지 곡성군 옥과면에 소재한 전남과학대학교에는 친구 부인이 교수로 재직 중이다. 친구는 서울 효제초등학교와 인근 연동교회에 같이 다닌 죽마고우다.
그들 부부는 같은 대학 동문으로 전공은 달랐지만, 동아리에서 만났다. 사랑이 깊게 여물기를 기다렸을까, 오랜 시간을 기다려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 근거는 서로 달랐다. 아내는 전라남도 곡성의 대학교수이고, 친구는 천안에서 사업을 하며 자리를 잡았다. 양쪽 어느 하나 직업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주말부부 생활을 시작하여 삼십 년 가까이 이어오고 있다.
중년의 나이에 그 친구처럼 가정에 애착을 가진 사람은 보기 드물다. 아내와 두 딸의 사랑이 지극하다. 한번은 광주에 있는 친구 집에서 하루 묵은 적이 있다. 그들의 일상 대화는 가식적이지 않고 스스럼없었다. 정이 깊게 깔려 있음을 느꼈다. 사랑은 거리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배원석 손혜경 부부의 사랑이 영원하길 바란다.
내일은 전라남도를 뒤로하고 전라북도로 들어간다. 내일도 32km 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