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숙소에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작년에도 그랬다. 밤새 세찬 비바람 소리에 여러 번 잠에서 깼다.
첫발을 내디디며 몸은 묵직했으나 발걸음은 가벼웠다. 땅끝마을을 벗어나 오른쪽 77번 도로를 탔다. 남해 코앞에서 하늘로 뻗은 700m 두륜산은 남쪽으로 천태산, 달마산, 연포산으로 이어지다가 땅끝에서 바다에 잠긴다. 나는 왼쪽으로 연포산 자락을 끼고 오른쪽 남해를 보며 걸었다. 바람이 거세고 구름은 낮게 내려앉았다.
흑일도 백일도 두 섬이 두 팔을 벌려 바다에 펼쳐진 김 양식장을 품에 안고 있다. 잔잔한 물결을 헤치며 조그마한 배가 양식장으로 다가간다. 밤새 일던 자연의 심술도 어민들의 먹고살고자 하는 의지에는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갖춘 듯하다.
약 10km를 지나자 길은 북쪽 내륙으로 방향을 틀었다. 무슨 꽃인지 모르겠지만 향기로운 꽃향기에 내 마음은 중늙은이가 아니라 청춘으로 돌아간다. 두 시간 넘게 걷다가 마을 앞 버스정류장에 앉아 쉬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내 옆에 앉으셨다.
“어디 등산 가나?”
“아닙니다. 강원도까지 걸어가는 중입니다.”
“거까정 뭐더라고 가나?”
뭐라고 답할까, 떠오르지 않았다.
“과자나 뭐 먹을 거 있으면 줘봐.”
순간 당황했다. 낯선 이에게 먹을 걸 요청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여쭐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점심으로 먹을 빵과 과자를 꺼내 드렸다.
“할머니 어디 가시는 중이세요?” 입성이 나들이 복장 같지 않아서 물었다.
“저 앞에 사는 디 심심해서 나왔어.”
할머니가 빵 드시는 걸 보며 나도 여분의 빵을 꺼내어 우물거리고 먹었다. 이번 도보 여행길에서 만난 분과 처음 나눈 대화였다. 왜 걷냐는 질문에 딱히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이후 강원도까지 걸으며 이 질문을 자주 받았다. 나는 걷는 게 좋아서 걷지만, 이것을 이해할 사람은 많지 않다. 이래저래 우물쭈물한다.
갈기 빠진 수사자
길가 밭에서 어느 할머니가 버럭 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밭에서 무를 뽑던 할머니가 조금 떨어져서 일하던 할아버지에게 지른 소리였다. 할아버지가 일을 제대로 못 한다고 구박하는 것이다. 할머니가 그러거나 말거나 할아버지는 대꾸도 하지 않고 땅을 보며 일만 하신다. 처음이 아닌 듯싶었다.
아마 저 할아버지도 젊어서는 저러지 않았을 것이다. 작년 국토종단 때 광주에서 담양으로 가던 때가 생각났다. 시골 버스정류장에 앉아 쉬고 있는데 칠십 중후반의 노인이 밭에서 일하던 복장으로 정류장 안에 들어왔다. 나를 힐끔 보며 뭐 하는 사람이라 묻기에 도보 여행자라 하였더니 노인은 자신의 신세타령을 늘어놓았다. 젊어서는 돈도 벌 만큼 벌며 광주를 주름잡았는데, 늙으며 돈도 떨어지고 힘도 약해지면서 부인에게 잡혀 산다는 하소연을 생면부지인 나에게 털어놓으셨다. 지금도 밭일하다 말고 부인 몰래 광주로 놀러 가는 길이란다.
우리 세대도 젊어서는 아내에게 유세를 떨었다. 세상 물정이 급격히 변하며 사실상 집안에서 남녀는 평등화되었다. 하지만 세태 변화와 무관한 게 나이다. 호르몬의 변화 때문인지 중 노년 이후에는 여성들이 강해진다. 91세에 돌아가신 내 아버지도 젊어서는 기세가 등등하였다. 칠십이 넘어서는 어머니에게 간간이 큰소리를 치는 정도로 약해졌다가 팔십이 넘자 어머니께 고분고분해지셨다. 반면 어머니는 아버지가 팔십이 넘자 기세를 역전시켜 두 분 사이에 주도권을 장악하셨다. 암사자들에게 군림하던 수사자가 늙어서 힘이 없어지면 무리에서 쫓겨난다. 암사자는 애달파 하지 않는다. 남자가 늙어서 고개를 숙이는 건 아내에게 밥이라도 얻어먹기 위해서일지 모른다. 여하튼 가정은 평온해진다.
오늘 이모저모
오후부터 비가 온다더니 하늘에는 먹구름이 내려앉고 바람이 더욱 거세졌다. 점심 먹을 곳이라곤 출발지에서 20km 떨어진 북평면이 유일했다. 그전에 길가 적당한 곳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빵으로 요기를 했다. 이번 여행을 시작하며 휴식에 관한 규칙을 정했다.
“한 시간 걷고 휴식을 취한다. 최대로 한 시간 삼십 분 이상 연속 걷지 않는다.”
국토종단은 장거리 도보이므로 체력 안배가 중요하다. 힘이 있다고 무리하면 후유증이 따르고 오래 걷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첫출발부터 이 규칙을 어겼다. 두 시간 지나서야 휴식을 취했다. 걸으면서 시간 확인이 어렵고, 산천을 두루 감상하며 걷다 보면 언제 시간이 지났는지 잊기 일쑤다. 걸으며 뷔페식 식당을 만나면 반갑다. 싼값에 다양한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 북평면에서 그런 식당을 만났다.
늦은 점심을 마치고 오늘의 종착지인 북일면을 향해 가던 중 세찬 바람과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의를 입었다. 오른쪽의 응봉산과 왼쪽의 두륜산자락 사이 쇄노재를 앞두고 빗줄기가 거세졌다. 바지 우비도 꺼내 입고 오르막길을 한참 걸었다.
4월 초라 우비를 입었어도 오한이 일었다. 숲이 우거진 쇄노재에는 대낮임에도 어두워서 지나는 차량이 전조등을 켜고 달렸다. 우거진 숲길에 비까지 내리기 때문이다. 편도 1차선 가장자리에 바짝 붙어서 걸었다. 사고 위험이 크기에 신경이 곤두섰다.
내가 무엇 하러 이 고생을 사서 하느냐, 이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로지 전방을 주시하며 걸을 뿐이다. 숲이 우거진 고갯길을 벗어나 시야가 트인 길로 나오자 오늘 묵을 민박집이 보였다. 민가에 방 한 칸을 개조해 민박으로 꾸몄지만 따뜻한 구들과 차가워진 몸을 데울 따스한 물이 나오니 이만하면 족하다.
걸으면 단순해진다. 첫날 일정을 무리하게 잡았더니 지친다. 나를 격려하려고 가게에서 비싼 병 커피를 사와 숙소에서 마셨다. “성현아! 오늘 고생했다.” 토닥토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