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장이 말하길 그 식당에 도보 여행객이 몇 번 들렀고, 며칠 전에는 강원도 고성에서 해남 땅끝마을까지 가는 젊은이 세 명이 여기서 밥을 먹었단다.
‘아! 땅끝마을에서 강원도까지?’ 내 뇌리에 깊이 박혔다. 800km 국내 최장 코스를 처음 염두에 둔 것은 그 식당에서였다.
지구촌 사람들이 찾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코스가 정해져 있고 각각의 종착지에는 숙소 알베르게가 마련되어 있다. 무거운 짐은 유료로 이동한다.
우리 땅에도 도보 여행길이 곳곳에 있다. 부산과 강원도 고성을 잇는 해파랑길,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삼남길, 서울 둘레길 등등 걷는 게 유행하며 지자체마다 도보 여행길을 내놓았다.
명칭이 붙은 길에는 표식이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가 적고 정해진 길로만 다니면 된다.
그러나 국토종단이나 횡단은 다르다. 도보 여행자가 스스로 코스를 정해야 한다. 체력에 맞게 하루 걸을 거리를 정하고, 어디에서 숙박할 것인지 사전에 계획을 세운다.
무턱대고 걷다가는 인가도 없는 길 한복판에서 낭패 보기 십상이다. 젊었으면 패기와 도전 정신으로 이겨내겠지만 나이 들어서 무리는 금물이다.
이번에도 촘촘하게 계획을 세우느라 거의 한 달 이상 걸렸다. 계획에는 매일매일 출발지와 도착지, 도착 지점에서 숙소가 없으면 인근 숙박 가능한 지역을 찾는 것도 포함된다.
장거리 도보여행에 배낭 무게는 가장 중요하므로 필수품만 챙긴다. 도보여행은 고행길이지만 무척 설렌다. 두 달 가까이 준비 기간에는 힘듦은 없고 설렘만 가득하다.
가벼운 걸음으로 해남 땅끝마을에 들어섰다. 구불구불 오르막길을 걸어 갈두산 사자봉에 우뚝 서 있는 땅끝전망대에 올랐다. 날씨가 흐리고 운무가 짙어 바다를 볼 수 없었다. 전망대를 나와 계단을 따라 바닷가 땅끝마을 탑비로 내려갔다. 사면 삼각뿔 모양의 끝이 뾰족한 탑비는 도전적이다. 마치 여기가 끝이 아니라 대양으로 치고 나갈듯한 기세다. 아무도 없기에 ‘으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대한민국은 섬 아닌 섬이다. 이곳 땅끝마을은 한반도 남쪽 절반의 땅끝일 뿐이다. 전 세계에서 국경선(휴전선) 양쪽으로 폭 2km, 길이 155마일의 비무장지대 철책을 설치한 나라가 남한과 북한 말고 어디 있을까.
한반도 절반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땅끝은 강화 교동도 왼쪽에 있는 황해남도 연안군 어디쯤이다. 이곳 갈두가 한반도의 진정한 땅끝이 되길 소망한다.
저녁을 먹으러 어슬렁거리며 식당을 기웃거렸다. 시간이 늦기도 하였으나 횟집이나 매운탕 식당만 보였다. 몇 군데 들어가서 물어보았지만, 혼자라서 거절당했다. 이곳 땅끝마을은 유명한 관광지였다.
겨우 한곳을 찾아 밥을 먹었다. 한반도 땅끝이라는 감동에 약간의 흠집이 생겼지만 이내 봉합하였다. 난 내일부터 국토대장정에 나갈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