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일, 1번 국도 기점인 구 목포문화원을 출발하여 19일간 450km를 걸어 서울시청에 도착하였다. 나의 첫 번째 장거리 도보여행이자 국토종단이었다.
이듬해 4월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를 목표로 해남 땅끝마을 출발하여 2차 국토종단 길에 나섰지만, 무리한 탓에 다리에 상처를 입었다. 경상북도 상주에 진입하며 절뚝거리는 다리를 끌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다음 해 4월 상주에서 다시 시작하여 21일 동안 470km를 걸어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올라 북녘땅을 바라보았다.
이젠 도보여행이 연례행사가 되었다. 종단을 두 번 하였으니 국토횡단을 하고 싶어졌다. 서해 최남단에서 동해 끝자락인 부산까지 걷자 하여, 횡단 17일간 420km를 걸었다. 두 번의 종단과 한 번의 횡단까지 1,700km, 4천 리를 넘게 홀로 걸었다. 이 글은 중년 남자가 홀로 걸어서 전국을 다니며 몸으로 머리로 쓴 기록이다.
왜 걸을까.
코미디언 이홍렬 씨는 쉰아홉의 나이에 부산에서 서울까지 홀로 걸었다. 그는 진행하던 네 개의 방송 프로그램을 중단까지 하며 나이 육십을 넘기 전에 국토종단을 결심하였다. 이것은 분명 생의 도전이다.
치열한 경쟁으로 일관한 나의 회사생활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더 이상 도전과 응전의 역사를 쓰고 싶지 않았다. 산악인들이 산이 있어서 산에 오른다는데 나도 마찬가지다. 길이 있어서 길을 걷고 싶었다. 나에게 장거리 도보는 생의 도전이 아니다. 평소에도 걷는 걸 좋아하기에 거리를 늘렸을 뿐이다.
자동차를 타면 보이지 않지만 걸으면 보인다. 오천 년 역사를 지닌 작은 한반도는 광활한 시베리아나 만주 벌판에 비해 인구 밀도가 높은 편이어서 곳곳에 사람들의 흔적이 널려 있다. 지정학적으로 대륙과 일본 섬의 중간에 위치하여 외세의 침략도 잦았고, 동족상잔의 비극도 겪은 땅이다.
자동차로 이동하면 스쳐 지나갈 뿐이다. 걷다 보면 소소한 유적지를 자주 접한다. 이 글에서는 세인의 관심을 끌만큼 유명하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지만 걸으면서 만나는 삶과 역사의 흔적에 나의 단상을 담았다. 글 속의 역사관이나 생활관은 나의 주관적 관점이므로 이견의 소지는 남아 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며 그날의 감상과 에피소드를 매일 스마트폰에 적어 기록하였다. 걷는 것도 힘들었지만 졸린 눈을 비비며 쓰는 기록도 만만치 않았다.
국토종단과 횡단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에 걸쳐 진행하였다. 책으로 엮기 위해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게 2021년부터다. 몇 년 지났지만, 당시의 기록과 사진 그리고 인터넷 지도 거리뷰 덕분에 이번 기행 산문 집필이 가능했다. 걷다가 잠시 쉬어 간 장소도 찾아냈고, 길 곳곳에서 땀 흘리며 걷던 기억이 모두 생생하게 살아났다. 아날로그 세대인 내가 디지털 시대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이 글에는 목포~서울 종단을 제외하였고, 해남에서 고성까지의 종단과 진도에서 부산 횡단 이야기를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