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 중에 처음으로 하루 휴식을 취했다. 어제 진료한 의사의 권고 때문만은 아니다. 오른쪽 발목과 정강이 사이의 염증과 붓기가 호전되지 않으면 중도에 그만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디테일이 승부를 가른다’라는 말이 있다. 제아무리 원대한 계획과 전략도 실행 과정에서 작은 문제 하나로 실패할 수 있다는 뜻이다. 비행기 사고도 작은 부속품 하나에 이상이 있거나 소소한 정비 불량으로도 일어난다.
회사 생활하며 사소한 부분을 제대로 챙기지 않아 전략 자체에 문제가 생긴 경우를 경험했었다. 굵직하고 핵심적인 부분에는 시간과 돈과 노력을 집중하므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사소한 부분을 소홀히 하면 자칫 문제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전체가 무너진다. 머피의 법칙은 살아 숨을 쉰다.
이번 도보여행을 돌이켜 보았다. 도보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첫 번째가 체력이다. 종종 고기도 먹어야 하지만 나 홀로 여행에서는 비용 문제로 고기를 구워 먹기 어렵다. 그 대신 내장, 간, 머리 고기 등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순댓국을 자주 먹는다. 순댓국밥집에서는 혼자라고 문전박대를 당하지 않는다.
문제는 발과 다리에서 생긴다. 몸을 튼튼히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며 발 다리 관리를 소홀히 하면 반란을 일으킨다. 자주 휴식을 취하고 건조가 중요하다. 하루 일정을 마치면 찬물로 냉찜질을 해준다. 무엇보다 혹사하면 안 된다.
작년에 목포~서울 450km 완주 경험이 있기에 이번 여행 계획을 세우며 장거리 도보에 자신이 생겼다. 난이도는 작년에 비해 높으나 하루 도보거리를 더 길게 잡았다. 내륙을 대각선으로 관통해야 하므로 계속 산을 넘어야 하는 난코스의 연속이었다. 초반부터 하루 30km 강행군을 하면서도 몸은 과히 지치지 않았다.
그동안 발과 다리는 침묵을 지키며 잘 따라와 주었지만, 순종적이던 지체들이 픽픽 쓰러졌다. 사소하다고 여긴, 당연히 별문제 없으리라 믿었던 발목 부위의 염증에 내가 걸려 넘어진 것이다. ‘디테일’을 소홀히 한 결과였다.
내 삶도 이러한 잘못을 자주 범했다. 회사 퇴직하고 자영업 하며 생각했다. ‘이 사업체를 경영하며 시간 여유가 있다. 몇 년간 새로운 분야의 전문지식을 습득하고 노력을 기울이면 현재 사업을 그만둘 때 그동안 칼을 갈았던 새로운 분야로 갈아탈 수 있다’라고.
인생 이모작의 전략적 틀을 이렇게 세웠으나,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디테일에 소홀하였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먹고사는 문제만이 아니었다. 내 삶 전체의 이모작이었다. 물론 글 판에 들어와 수필을 쓰게 된 것은 내 인생 후반부에 잘한 결정이었다.
영동은 포도 재배에 적합한 기후조건이어서 전국 제1의 포도 산지다. 가는 길 곳곳에 포도밭이 널려 있었다. 내일은 충청북도와 작별하고 경상북도 상주 땅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