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해남을 출발하여 강진을 거쳐 장흥 외곽까지 3개 군을 지났다. 해남 읍내를 벗어나 북동쪽 오르막에 접어들며 해남공설운동장을 끼고 우슬재를 넘었다. 해남으로 들어오는 관문이었던 이 길은 폭이 넓고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어서 안전하다. 우슬(牛膝)이란 명칭은 고개가 험해서 소도 넘어가다 무릎을 꿇는다고 하여 붙여졌다. 지금은 그 아래 4차선 13번 국도가 시원하게 뚫려 있다. 해남과 강진을 가르는 고갯마루에서 땀도 닦고 다리도 쉴 겸 앉아서 발아래 경치도 감상하였다.
고개를 넘어 내리막길을 따라 걷는 중이었다. 길옆 너른 터에 생소한 모양의 돌 비각(碑閣)이 눈에 띄었다. 네 개의 돌기둥 위에 돌로 만든 팔작지붕이 얹혀있는데, 중국풍 같기도 하다. 현판 격인 돌에는 효열부각(孝烈婦閣), 비석에는 효열부장수황씨기념비(孝烈婦長水黃氏紀行碑)라고 새겨져 있다. 내용을 담은 옆 석조물을 읽었다. 170여 년 전, 혼례를 치른 지 얼마 안 된 부인이 밤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소리를 듣고 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호랑이가 남편의 목덜미를 물고 가는 광경을 보고 열부는 호랑이 앞을 가로막고 “날 데려가시오. 그분 데려가면 집안 문 닫소”라고 외쳤다. 그러자 호랑이가 남편을 놓아주었다. 열부는 온갖 정성을 다해 남편을 치료하였고, 이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정성껏 대접했다. 시부모에게도 극진히 효도하며 3남 1녀를 낳아 잘 길렀다. 한글 석조물을 가만히 보니 관에서 지어준 것이 아니다. 근래에 증손자들이 다른 곳에 있던 기념비석을 이곳으로 이전하며 비각과 석조물을 조성한 것이다.
비록 시댁에 대가 끊기는 것을 막으려 호랑이 앞에서 목숨을 걸고 두 팔 벌려 소리 질렀다지만 젊은 나이에 짝을 위하는 마음이 대단하다. 산자의 목숨보다 혈통 유지를 더 중요시하였던 조선 시대의 풍속이 현재와는 사뭇 달라서 현대인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우슬재를 내려가며 자그마한 공원에 붉은 꽃이 만발하다. 길가에는 5‧18 민주항쟁 사적지(우슬재) 석판이, 뒤편에는 우슬재 시비(詩碑)가 자리 잡고 있다. 당시 우슬재 정상에 있던 군인들은 5월 23일 광주를 행해 가던 트럭에 총을 쏘아 여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광주를 중심으로 남도 끝 곳곳이 상흔이고 아픔이다. 외적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이 국민을 적으로 간주하여 살상한 대표적 사건이 5‧18 민주항쟁이다. 아픔과 치유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미당문학상과 동인문학상>
강진하면 누구나 다산초당과 백련사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다산초당을 가려면 6km 이상 돌아야 하므로 이번 여정에는 뺐다. 2년 전 국토종단 때 다산이 초의선사와 차 마시러 다닌 다산초당~백련사 숲길을 걸었다. 물론 다산초당과 백련사에도 들렀다.
강진 군청 인근 영랑생가를 찾았다. 지주 집안답게 규모가 꽤 크다. 아름다운 시를 많이 남긴 영랑 김윤식은 일제강점기에 창씨개명과 삭발을 거부하며 일제에 침묵으로 저항하였다. 앞서 영랑은 휘문의숙 3학년 때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강진으로 내려와 거사를 준비하다가 왜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서정주나 김동인, 모윤숙 등 몇몇 유명 시인과 소설가들은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일제의 징병과 근로정신대에 나가도록 적극적으로 독려한 것과 비교된다.
그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제에 협력할 수밖에 없지 않냐고 주장하는 이도 있지만, 그들은 생존을 위해 부역한 게 아니라 일신의 영달을 위해 일제에 적극적으로 야합하였다. 조국의 해방을 위해 죽거나 혹독한 어려움을 겪은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일제의 갖은 만행에도 굴하지 않은 분들 또한 부지기수인데 그런 얼토당토않은 주장은 이분들을 욕되게 하는 것이며 우리의 독립운동을 무력화시키는 잘못된 생각이다.
해방 후 청산되어야 할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이 그대로 권력을 잡으며 자신들의 아킬레스건을 보호하려고 지어낸 궤변에 동의할 수 없다. 서정주와 김동인은 해방 후 민족 앞에서 진정한 사죄와 함께 처벌을 받아야 했다. 그들은 사죄하지 않았고, 시대는 그들에게 죄조차 묻지 않았다.
문학의 순수성과 친일 문제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주장은 식민지배를 받은 나라 중 한국에서만 나타난 현상이다. 적극적 친일 문인을 기리는 미당문학상과 동인문학상은 폐지되어야 한다. 근래 두 친일문학상 수상을 거부하는 문인들이 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