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내면 거리가 시끌벅적하다. 생선 좌판에 파리 꼬이듯 장날 아침부터 대통령 선거 유세 꾼들이 모여들었다. 마침 오늘이 장날이라서 각 당의 선거 유세차량이 모두 모였다. 파란색, 빨간색, 하늘색, 노란색 등등 청사초롱을 모아 놓은 듯 색색의 유세차에서 로고송을 한껏 뿜어낸다. 고막을 때리는 각 정당의 확성기 소리가 뒤섞여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유세 효율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일당 받고 유세하는 사람이나 지구당 관계자나 선거 결과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대통령 후보자가 와서 보면 혀를 내두를 것 같다.
양복 정장을 입고 머리에 기름 바른 느끼해 보이는 중년 사내들이 두서넛씩 짝을 지어 돌아다니며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악수를 청한다. 공손하지도 않다. 그들의 눈은 악수하며 상대방을 보지 않는다. 먹잇감을 찾듯 악수할 다른 사람을 찾는다. 배가 불룩 나온 양복쟁이 둘이 배낭을 짊어진 나에게 악수를 청하기에 난 이곳 사람 아니며 이미 사전 투표했다고 말했으나 그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나 보다. 내 손을 잡던 그들의 시선은 내가 말하는 중에도 나를 벗어나 있었다. 쓸데없는 말은 삼가야 하는데 나는 그 버릇을 아직 버리지 못했다.
장날 시장 풍경은 요란한 유세 꾼들을 무색하게 했다. 눈여겨보니 장에 나온 사람들은 양복쟁이들이나 유세차 고성에는 무심하다. 가게마다 늘어놓은 물건 살피며 고르느라 분주하다. 각종 고무장화를 늘어놓고 파는 가게 앞을 지났다. 농촌에서 장화는 필수다. 남자용 검은색과 군청색 옆에는 빨간색, 보라색과 붉은 체크무늬까지 여성용 장화가 다양하다. 발목까지 오는 반 장화도 색색으로 진열되어 있다. 잠시 서서 오색의 향연에 빠져들었다.
<히치하이크>
장거리 도보여행하며 잠은 어디서 자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여관이나 모텔이라고 말하면, “아무 마을이나 이장 집을 찾아가서 하루 묵어갈 집을 부탁하면 들어주지 않겠냐”라고 묻는다. 낭만적인 말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처음 보는 사람을 누가 재워줄까?
3년 전 국토종단 하며 충청도를 지날 때였다. 길가 밭에서 할머니들이 일하고 계셨다. 생소한 작업이었다. 장대 끝에 털을 매달고 복숭아꽃을 살살 건드리는 것이다. 궁금증에 다가가서 물었다. 복숭아 인공 수분 중이었다. 잠시 이야기 나누던 중 어느 할머니가 나에게 물었다.
“근방에 산도 없는디 어디 등산가요?”
“아닙니다. 목포에서 서울까지 혼자 걷는 중입니다.”
“아이고, 거기까지 뭐 하려고 걸어요?”
말이 막혔다. 그냥 걷는다고 할밖에. 질문이 이어진다.
“어디서 자고 다녀요?”
“여관 같은 데서 자고 갑니다.”
“아저씨는 착하게 생겨서 이장한테 말하면 마을회관에서 재워줄 텐데.”
할머니들 눈에는 내가 착하게 생겼나 보다. 사실 그것도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종종 마을을 가로질러 갈 때 마을 어귀부터 도무지 사람 구경하기도 어렵고, 이장 찾는 건 더욱 어렵다. 설혹 이장에게 하루 잘 곳을 부탁하더라도 거절당하기 십상 같아서 그만두었다.
오지 여행가였던 한비야 님은 마을에 들어서서 누구든 붙잡고 혼자 사는 할머니 집을 소개받았다. 숙소 찾아 헤맬 필요도 없고, 안전한 곳에서 할머니가 해주는 집밥도 먹으니 일석삼조(一石三鳥)다. 외로운 할머니에게도 하루 말동무가 생겨서 좋다. 아니면 교회나 절에 가서 하루 재워달라며 부탁했단다. 그것은 30여 년 전 이야기다.
내가 젊었다면 모를까, 하루 일정을 마치면 무척 피곤하여 편히 쉴 공간이 필요하다. 씻고 빨래도 해야 한다. 면 소재지에도 숙박업소가 드문 판에 리 단위에는 잘 곳이 없다.
숙소를 찾아 읍이나 군으로 나와야 하는데 시골에서는 버스가 드문드문 다닌다. 어제도 종착지인 문내면 신흥리에 도착하여 버스를 기다리는 중에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졌다. 히치하이크를 하기로 했다. 오가는 차량이 드물어서 어쩌다 지나는 차에게 손을 들었지만, 지나치거나 손을 흔들며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 나라도 배낭 짊어진 중년 사내를 쉽사리 태워주지 않을 것이다. 작년 도보여행 때에도 경험이 있는지라, 승용차보다 작은 트럭을 집중공략 하였다. 20분 정도 지나 승용차가 멈췄다. 덩치가 큰 두 명의 중년 사내가 타고 있었다. 차 안은 지저분했다. 공사용으로 사용하는 차라며, 운전자는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17년 전 모 회사 영업부장 때 구입한 차라고 말했다. 이어 당시 자신의 연봉이 6천만 원이었고 영업비도 매달 2백만 원을 받았다며 은근히 자랑한다. 공짜로 차를 얻어 탔으니 나도 예의 삼아 “엄청나시네요. 잘나가셨군요. 대단하십니다” 추임새를 넣었다. 세상인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의 이모저모>
황산초등학교 담 화단에 핀 꽃이 예쁘다. 내가 좋아하는 진달래도 활짝 피었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꼬부랑 할머니 두 분이 유모차에 의지해 지나가면서 꽃이 예쁘니 사진 많이 찍으라 하신다. 할머니들께 말은 건넸다. “할머니들이 이 꽃보다 더 이쁘요.” 약간의 전라도 사투리를 섞어 익살을 떨었다. “뭔 말을 그리 한다요.” 하시지만 두 분 모두 해맑게 웃으며 좋아하신다.
전라도는 평야 지대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곧게 뻗은 도로를 자주 접한다. 이런 길을 걸을 땐 길가 들풀과 들꽃을 보며 걷는다. 오늘은 푸르른 청보리밭이 대신했다.
첫날과 둘째 날보다 3일째가 되면서 더 힘들다. 아직 몸이 길에 적응하지 않았다. 시간과 걸음이 더 필요하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발이 아프다. 통증과 친해져야 한다.
오늘 해남 지역 미세먼지가 무척 심했다. 스마트폰에 설치한 미세먼지 알림 앱에서는 수치가 무려 199다. 걷는 도중 계속 목이 칼칼하다. 비가 오면 도로에서 교통사고 위험도가 높아지고 해가 나면 복병인 미세먼지가 뛰쳐나온다. 이래저래 쉽지 않다. 내일 강진을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