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보다 값진 만의총 - 54화

해남 옥천면

왕릉보다 값진 만의총 / 해남 옥천면     

국토횡단 4일 차(4월 20일)

해남읍~강진~장흥 군동면 25km / 누적 97km          

<왕릉보다 값진 만의총>

옥천면을 지나 너른 들녘에 왕릉보다 규모는 작지만 커다란 무덤이 길손을 붙잡는다. 직경 15m에 높이가 5m에 달한다. <옥천 성산 만의총>이다. 이곳은 정유재란 때 강진을 넘어 해남을 향해 진격해오는 왜병들을 맞아 이 일대에서 창의한 의병이 격전을 벌여 모두 전사한 곳이다. 왜군은 전투에서 이겼으나 궤멸 수준이 되어 장흥방면으로 퇴각했다. 옥천 성산대첩이라 명명된 이 전투로 왜군은 세력이 크게 약화하였고, 이는 정유재란의 종결로 이어졌다. 이때 전사한 1만여 의병 시신을 모아 합장한 무덤이 ‘만의총’이다.

임란 당시 왜병이 쳐들어오는데, 왕을 정점으로 권력층은 한밤중에 백성을 버리고 한양 도성을 몰래 빠져나와 의주로 도망갔다. 왜병의 침략 조짐이 있었지만, 대비조차 하지 않은 왕과 권력층이 국정을 농단한 때문이다. 부산포를 침공한 왜군은 불과 이십여 일 만에 한양을 함락하였다. 도로 사정이 좋은 지금도 만만치 않다. 하물며 수레길도 미흡한 당시에 전투도 벌여가며 짧은 기간에 한양을 함락하였다는 것은 조선군의 저항이 왜군의 진격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는 6‧25 전쟁 당시 이승만 정권과 매우 흡사하다. 그들은 1948년 정부 수립 후 국방력 강화는 손 놓고 북진통일을 주장하며,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라는 허구적 정치 수사를 내뱉었다.

6.25 전쟁이 터지기 전에도 38선을 두고 수백 회 소규모 전투가 있었으므로 국방력 강화는 필수였으나 당시 정부는 국방력 강화와 경계를 소홀한 점, 개전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된 점, 단기간에 낙동강 전선까지 침공당한 점 그리고 최고 권력자가 국민을 놔두고 몰래 수도에서 도망친 점 등이 선조 때와 유사하다.

이승만 대통령과 내각은 전쟁 발발 이틀 후 비밀리에 서울을 빠져나와 대전에 머물렀다. 군은 거짓 승전보를 남발하였고,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시민에게 맥아더와 미군의 참전 결정과 이른 시일 안에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사전에 녹음된 방송을 내보냈다. 결과적으로 서울시민의 피란을 막은 셈이다.

서울시민을 속이다가 발발 3일 만에 예고 없이 한강 다리를 폭파하였다. 이때 팔백 명가량의 시민이 죽었다. 서울에 갇힌 시민들은 인민군에게 갖은 고초를 당하며 목숨을 부지하려고 부역할 수밖에 없었다. 선조와 이승만의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이승만 정권은 9‧28 수복 후 인공치하에서 살아남기 위해 북한군에게 협조한 서울시민들을 샅샅이 가려내어 부역자란 이름으로 가혹하게 처벌했고 다수를 처형했다.

전쟁을 대비하지 않은 죄는 선조나 이승만 정권이나 동일하지만, 이승만 정권은 자신들의 잘못을 국민에게 죽음으로 갚았다. 시인 김수영도 피해자였다. 그는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에 징집되었으나 탈출하여 9‧28 수복 후 서울로 겨우 살아 돌아왔다. 서울에서 경찰을 찾아가 강제징집과 탈출 사실을 털어놓았지만, 체포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2년간 고초를 겪었다. 장기 집권을 꾀하던 부당한 권력은 4‧19혁명으로 비참한 말로를 맞았다.

선조는 죽어 경기도 구리 동구릉 내 거대한 목릉에서 문인석 무인석의 호위를 받으며 발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동작동 현충원 대통령 묘역에는 장기집권 부정선거로 4.19혁명이 일어나 하야 후 쫒기듯 하와이에 머물다 세상을 떠나서야 돌아올 수 있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이 왕릉에 버금가는 규모로 묘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선조나 이승만 모두 최고 권력자로서 의무를 지키지 못해 국민에게 고통과 죽음을 안긴 죄에 대해 최소한의 사죄를 했다는 기록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권좌에서 물러나기까지 권력을 누렸다.

여기 만의총이 목릉이나 현충원 이승만 대통령 무덤보다 의미가 훨씬 더 큰 이유가 있다.     

쉴 때면 물집 예방용 베이비파우더를 바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