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장흥으로 가는 길 - 56화

장흥 수문리

by 조성현


장흥으로 가는 길 / 장흥 수문리


국토횡단 5일 차(4월 21일)

강진 군동면~장흥군~우드랜드~장흥 안양면~안양면 수문해수욕장 26km / 누적 123km

이번 도보여행 떠나기 전부터 목감기로 목이 따끔거렸다. 연일 계속되는 황사와 미세먼지, 자동차 흙먼지로 목 상태는 나아지지 않는다. 이젠 코까지 올라왔다. 기침과 콧물이 기승을 부린다.


강진 군동면에서 장흥군까지는 2년 전 국토종단 때 걸었던 길이다. 당시에 강진에서 동북쪽 곡성으로 가려고 장흥과 보성을 지나갔다. 이번에도 동쪽 순천 방면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길이 유일하다. 눈에 익은 길을 다시 걷는 것도 괜찮다. 출발지 군동면에서 등교하는 중학생들에게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하였다. 학생들이 “아저씨 어디 가시는 거예요?” 묻는다. 부산까지 걸어간다고 하니 “와 아저씨 대단하네요” 한다. 학생들에게는 도전 정신이 도움이 될 것 같아 도보여행을 말했지만, 돌아서서 생각해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구닥다리 아저씨다. 여기부터 약 3km가 직선 도로라서 끝이 보이지 않는다. 장흥까지 탐진강을 따라 걷는다.


장흥읍에 다가가며 탐진강 근처 기암괴석인 사인암 언덕배기에 사인정(舍人亭)이 보여 올라갔다. 조선 단종 때 이조참판을 지낸 김필이 세조의 왕위 찬탈인 계유정난에 반발하여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한 곳이란다. 정자 옆 바위에 第一江山이라 새겨진 글자가 눈길을 잡는다. 백범 김구 선생은 상하이로 망명길에 오르면서 왜경의 눈을 피해 이곳 사인정에서 지친 몸을 쉬어 갔다. 백범은 1948년 정부 수립 후 총선 유세차 장흥초등학교로 내려와 연설하였고, 제일강산이라는 친필을 써주었다. 이 바위 글자가 백범 친필이다.


장흥으로 들어서자 초입에 장흥공설운동장과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보였다. 3년 전 목포-서울 걸을 때 전라북도 정읍의 황토현 동학혁명 전적지와 전봉준 생가, 공주 우금티에 들렀고 동학농민운동에 관심이 많은 터, 기념관에 들어섰다.


먼저 시원한 생수로 목을 축이고 있는데 키가 훤칠한 중년의 기념관 여직원이 안내를 자청했다. 무거운 배낭을 안내소에 맡기고 동선을 따라 설명을 들었다. 장흥은 정읍 황토현과 공주 우금티 마루, 장성 황룡과 함께 동학혁명 4대 전적지이자 이곳 석대들 일대는 대규모 농민군의 최후 최대 격전지였다. 조선 후기에는 지배계층의 탐학으로 백성의 삶은 한계치에 몰렸고, 권력층은 외세 특히 일본과 야합하여 나라의 주권은 풍전등화였다. 동학농민혁명은 반봉건 반외세를 기치로 정읍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농민전쟁이었다.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500:1의 화력 열세로 패하였지만, 정신은 살아서 항일 의병과 독립군 활동, 3.1운동으로 이어졌고,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임정의 자주 민족 민주 정신은 부당한 권력에 대항한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으며, 직선제 개헌으로 군부정권을 종식한 1987년 6월항쟁으로 연결된다. 걸으며 보고 느끼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오늘의 이모저모>


장흥읍을 벗어나 동쪽으로 향하며 500여 미터 억불산 자락의 편백숲 우드랜드를 지났다. 편백나무는 자연 항균 물질인 피톤치드를 발산하여 산림욕을 돕는다지만 나는 지나칠 수밖에 없다. 기산사거리에서 오른쪽 18번 국도를 타고 남동쪽 해안으로 향했다. 800여 미터 제암산이 앞을 막아 우회했다.


수문리 관문 격인 수문천 앞에 愛鄕 水門이라 새겨진 입석이 외지인을 환영한다. 수문마을은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넘어오는 마한 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오래된 마을이다. 250여 호 가구 중 100여 호가 키조개 양식에 종사하여 키조개 마을로도 유명하다. 수문해수욕장에는 거대한 키조개 조형물이 위용을 자랑한다.


오늘 식사는 이번 도보여행 중 최고였다. 점심에는 장흥시장에서 소고기국밥을, 저녁 식사로는 수문리 해안에서 바지락회무침 정식을 사 먹는 호사를 누렸다.


바닷가 민박이라 경치는 좋았다. 성수기가 아니라 오랫동안 비워두어서 그런지 방바닥에 흙먼지가 굴러다니고 화장실 수도에서 녹물이 나올 정도로 민박 상태는 좋지 않았다. 수건을 빨아서 한참 동안 방을 닦고 또 닦았다. 방바닥은 따뜻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온몸이 쑤셨다. 오늘은 유난히 발바닥이 아프고 더 힘든 하루였다. 저녁 7시경에 잠시 누웠는데 깨어 보니 아침 6시다. 몸도 개운했다. 다시 출발이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연재
이전 25화미당문학상과 동인문학상 - 5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