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 그늘 / 조성현
이년쯤 전이었다. 그의 아내에게 두통과 발열이 찾아오더니 강도가 심해졌다. 뇌수막염이었다. 병원 신세를 지며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한숨을 돌린 지 얼마나 되었을까, 다시 심한 두통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청천벽력이었다. 그녀의 뇌에 암 덩어리가 생겼다. 그녀 나이 이제 갓 육십을 넘겼을 때였다.
머리를 열고 종양 제거에 들어갔다. 이어 항암 치료를 받았지만, 병세는 더욱 깊어져서 누구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가 되었다. 미혼인 아들과 딸은 효자효녀였다. 특히 아들이 입퇴원을 반복하는 모친의 병수발을 거의 전담하였다. 환자 돌봄은 물론 그녀가 해오던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다.
그들에게 한 가닥 희망도 빛을 잃어갔다. 치료방법과 회생 가능성이 없는 말기에 접어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의식이 없어지며 자가 호흡이 어려워졌다. 그녀에게 임종 징후가 나타난 것이다. 의료진은 중환자실로 옮겨 그녀에게 인공호흡기를 부착하였다. 주치의는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인공호흡기를 떼면 그녀는 생을 마감할 것이다. 의료진은 절차에 따라 연명의료 중단 여부를 가족에게 물었다. 가족 모두의 동의와 서명이 필요했다. 그들 부부가 살아온 세월이 수십 년, 남편은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지만, 중심을 잡아야 했다. 딸과 함께 동의하였다.
그러나 아들은 한사코 반대하였다. 사람에게 기적이란 게 있지 않나요? 기적적으로 병이 나을 수도 있잖아요. 주치의에게 물었다. 불가능이라는 답변이 돌아왔어도 둘째는 연명의료를 고집하였다. 엄마가 잠시라도 의식이 돌아왔을 때 마지막으로 얼굴이라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중환자실에서 연명한 지 한 달이 넘었다. 하루 한 번 잠깐이나마 눈을 감고 있는 어머니를 보려는 마음에 아들은 병원을 떠나지 않았다. 인공호흡기는 장기간 부착할 수 없다. 의료진은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고 그녀의 기관을 절개하여 목을 통해 호흡이 가능토록 하였다. 여전히 의식은 없었다. 콧줄을 통해 유동식을 공급받았지만, 모친은 점점 뼈만 남은 상태가 되어 갔다. 중환자실 환자에게 욕창은 거의 필연적이다. 바쁜 간호사들에게 여러 명 중환자들의 자세를 자주 바꿔주기를 요구하기는 어렵다. 의식 없는 환자들도 아픈 부위를 건드리면 얼굴을 찡그린다. 그녀는 고통 속에서 연명하고 있었다. 이런 모친을 매일 보는 둘째는 물론 가족 모두 속이 타들어 갔다.
병원비가 가족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기울고 있던 남편의 사업은 코로나 펜데믹을 겪으며 직격탄을 맞았다. 그나마 전에 들어둔 보험으로 병원비를 충당하였으나 사용할 수 있는 기간도 만료되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더 이상 엄마를 힘들게 하지 말자, 병원비도 큰 부담이라며 이제 보내드리자 했으나 막무가내였다. 아버지라고 해서 장성한 아들의 고집을 강제로 꺾을 수 없었다. 그의 고민은 아내의 고통에 더해 경제적 어려움으로 더욱 깊어갔다.
평소 가까이 지내던 이모들이 설득하러 찾아왔다.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다, 네 엄마가 저러고 살아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 의식이 없어도 얼마나 고통스럽겠냐, 너의 효심을 충분히 이해했으니 아버지의 말을 따르라며 만류해도 소용없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개월을 병원에서 지낸다는 게 보통 고생이 아닐 터, 석 달이 되도록 아들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병원 직원들은 그런 아들을 두고 좀처럼 보기 힘든 효자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나 그들은 가족이 아니었다. 모친이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시간은 지나가고 있었다.
임종기에 접어든 지 넉 달이 채 안 되어 모친은 차가운 병실에서 여러 가닥 생명줄을 주렁주렁 단 채,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아들의 바람은 바람에 날려 하늘로 날아올랐다.
늙어서든 아니든 병으로 생을 마감하면 그 사람의 명은 거기까지가 아닐까 싶다. 평균 수명 이전에 죽으면 더 애달플 따름이다. 억지로 명을 늘려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노환 사망은 오래 살다가 장기 기능이 정지된 자연사다. 지금은 소수만 노환으로 사망한다. 복 받은 분들이다. 노인들에게 임종기에 인공호흡기 연명 여부를 물으면 다수는 싫다 한다. 노인들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신청 급증이 이를 증명한다. 병사든 아니든 명대로 살다 가고 싶어도 못하게 만드는 세상이다. 많은 이들에게 존엄한 죽음은 아직은 요원하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기계가 사람의 명줄을 쥐고 흔든다.
조금 일찍 가면 어떻고 조금 늦게 가면 뭐 어떠랴. 산 자들의 기억 속에 잠시 머물다 사라질 뿐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