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 음악의 위대한 작품으로 손꼽히는 J.S. 바흐의 <무반조 첼로 모음곡>이 있기 전 그 표본이 되었던 수많은 첼로곡들은 17세기 이탈리아에서 완성되었다. 지금은 잊혀진 이름이 되었지만 살바토레 란제티, 도메니코 가브리엘리 등 첼로 음악의 기틀을 확립한 이탈리아의 천재 연주자들은 실내악 반주의 한 파트로만 활용되던 첼로가 가진 독주악기로서의 가능성을 탐구하였고 첼로 소나타, 리체르카레, 무반주 첼로 솔로 등 다양한 음악 형식 속에서 첼로의 아름다움을 확장시켜 나갔다. 이들 음악가들이 있었기에 바흐의 무반주 첼로 걸작이 탄생할 수 있었고, 고전파 첼로 소나타의 양식이 확립될 수 있었다. 아니 무반주 첼로 형식은 바흐 이전에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이미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음반에 실린 다채로운 첼로곡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 음반의 진짜 주인공은 비올로네(violone)라고 불렸던 17세기 고악기 첼로다. 피아노와 마찬가지로 첼로라는 악기도 현대의 첼로가 등장하기 전 수많은 진화를 거쳤다. 시대에 따라 크기도 소리도 무게도 명칭도 달랐다. 17세기 이탈리아에서 사용된 비올로네의 크기는 현대 첼로보다 컸다. 소리도 더 무겁고 어둡다. 바로크 시대에는 바로크 첼로와 비올로네가 공존했는데 두 악기가 함꼐 연주되는 소리를 들어보면 비올로네의 소리가 더 두텁다. 하지만 그 소리는 비올로네의 제작자 및 국가에 따라 달랐던 것 같다. 이탈리아의 첼리스트 알레산드로 팔메리가 이 음반 녹음을 위해 사용한 비올로네는 1685년 악기 제작자 시모네 치마파네(Simone Cimapane)가 로마에서 제작한 악기이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몇 안 되는 귀중한 비올로네이며 이탈리아 바로크 음악의 거장 아르칸젤로 코렐리(1653–1713)의 오케스트라에서 사용되었던 역사적인 악기이다. 제작자 치마파네는 비올로네 연주자이기도 했는데 코렐리와 함께 연주했던 기록도 남아있다. 그런 이유에서 연주자 팔메리는 이 음반의 제목을 <코렐리의 첼로>라고 지었다. 코렐리가 사용했던, 혹은 코렐리 시대를 대표하는 악기 비올로네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첼리스트 팔메리와 비올로네. 현재의 첼로보다 몸집이 크다
이 비올로네의 소리는 깊고 거칠며 풍부한 잔향이 돋보이고 저음은 무겁고 둔중하게 가슴을 울린다. 음악을 떠나 비올로네의 소리 자체만으로 감상의 가치가 있는데 풍성한 저음이 느리게 움직이면 숭고한 소리가 들리고, 빨리 움직이면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잔향의 섞임은 시적인 여운을 남기며 상상력을 자극한다. 특히 4~6번 곡 로렌조 루리에의 소나타에서는 오르간의 그윽한 반주와 어우러지는 저음의 첼로 소리가 마치 성당의 높은 천정으로 울려 퍼지는 소리 마냥 마음을 편안히 적셔준다. 오르간 소리에 깃든 색채감이 어두운 비올로네와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첼리스트 팔메리는 비올로네의 매력을 탐구하며 동시에 초기 첼로 음악의 양식을 탐구하고 있다. 도메니코 가브리엘리, 쥬세페 보니, 쥬세페 콜롬비, 지오반니 비탈리의 음악들이 그것이다. 이들의 음악은 비올로네와 함께 발달한 17세기 첼로 음악의 전형을 보여주며, 동시에 비올로네에서 현대적 첼로로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마중물이 되었다. 볼로냐 태생의 도메니코 가브리엘리는 17세기 첼로 음악을 대표하는 인물인데 그의 무반주 첼로 음악과 바흐의 첼로 음악 사이의 유사점을 찾는 음반 <바흐 인 볼로냐 Bach in Bologna>가 발매될 정도로 첼로 음악 발전의 선구적 역할을 했던 음악가였다. 리체르카레(ricercare)라는 이름을 가진 그의 작품들은 한 성부의 선율이 다른 성부의 선율을 모방하고 따르는 곡으로 나중에 푸가(fuga) 양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가브리엘리는 이러한 리체르카레 곡들을 다수 남겼는데 이 점에서 후대의 바흐가 즐겨 사용한 푸가의 원형적 모델로 비교되곤 한다. 어려운 음악 용어를 떠나 가브리엘리의 멜로디 자체가 단순하고 이탈리아적인 선율미가 살아있어 감상이 쉽고 즐겁다.
보니, 비탈리, 콜롬비 역시 직간접적으로 코렐리에게 추천을 받거나 함께 활동한 경험이 있는 음악가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활동이 볼로냐, 모데냐 등 이탈리아 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17세기 볼로냐는 첼로 음악 발전에 역사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첼로가 반주 악기에서 발전해 독립적인 악기로 발전할 수 있는 음악적 기틀을 닦았으며 악기가 가진 기교적 가능성을 확장시키기도 했다. 콜로비의 <샤콘느>와 <트롬바>는 무반주 비올로네의 탁월한 기교가 돋보이는 곡으로 솔로 악기로서의 비올로네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보니의 첼로 소나타의 2악장에서 스타카토 음형으로 경쾌하게 뛰어나가는 비올로네의 소리 또한 유쾌하고 즐겁다. 이런 연주기법은 현대 첼로와 바이올린에도 두루 쓰이고 있다.
볼로냐에서 이런 첼로의 기법이 발전되지 않았더라면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도,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도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작품도 존재하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을 떠나 첼로의 저음을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나 비올로네의 묵직한 아름다움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악기의 소리 그 자체만으로 황홀한 음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