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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텐 Sep 01. 2021

쿠프랭의 피아노가 그린 그림자

프랑수아 쿠프랭의 예술


바로크 클래식 음반 소개


음반명: 틱, 톡, 쇽 (Tic, Toc, Choc)

연주자: 알렉상드르 타로(피아노)

레이블: 아르모니아 문디



프랑스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도련님 같은 곱상한 외모와 에티켓으로 사랑받는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미하일 하네케의 영화 <아무르>에 출연하기도 했고 발매하는 음반들을 보면 진지한 클래식 레퍼토리부터 샹송 스타 바르바라의 노래를 연주한 크로스오버 음악까지 활동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타로의 첫 데뷔작은  프랑스 음악가 장 필립 라모(1683~1764)의 클라브생 작품집이었다. 물론 그는 피아니스트이니까 클라브생이 아닌 현대 피아노로 라모의 작품을 연주했다. 그리고 5년 뒤 2006년에 내놓은 이 음반 <틱, 톡, 쇽>은 역시  프랑스의 작곡가 프랑수아 쿠프랭(1668-1733)의 클라브생 소곡들을 피아노로 연주했고 대히트를 쳤다. 타로는 쇼팽, 라흐마니노프, 라벨, 바흐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녹음했지만 개인적으로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프랑스 바로크 음악인것 같다. 2019년에 발표한 음반 <베르사이유> 역시 베르사이유궁의 음악가들로 피아노 작품을 구성해 호평을 받았다. 프랑스 건반악기 음악은 장식음, 리듬, 정서적 표현에 있어 바로크적 경직성이 덜하고, 표현에 있어 적극적으로 앞서 나가며 감정의 섬세한 음영을 그리는데 뛰어나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바로크 음악에서 느낄 수 없는 공상적이고 문학적인 측면은 이미 낭만주의와도 맞닿아 있다. 이미 바로크 시대의 범주를 뛰어넘은 작품들이 쿠프랭의 건반악기 작품인 것.


     타로의 <베르사이유> 음반


 타로의 <라모> 음반

                                        

프랑수아 쿠프랭은 같은 이름을 가진 백부와 구별해 대 쿠프랭(Le Grand Couperin)으로 불린다. 그의 가문은 많은 음악가를 배출했는데 아버지로부터 삼촌, 사촌, 조카까지 쿠프랭 가문은 17-18세기에 걸쳐 뛰어난 음악가들을 배출한 음악 명문가였다. 그의 클라브생 곡들은 서정적인 필치, 낭만적 감수성으로 바로크 시대의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감정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연주자 반다 란도프스카야는 쇼팽을 '19세기의 쿠프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나는 이에 덧붙여 쿠프랭을 '17세기의 드뷔시'이라고 부르고 싶다. 쿠프랭이 남긴 총 4권의 클라브생 작품집은 그 방대함과 선구적인 표현으로, 쇼팽과 드뷔시를 연상시킬 만큼, 묘사과 감정표현에 있어 바로크 건반음악의 전형을 뛰어넘는다. 4권의 작품집은 총 27개 오르드르(ordre)로 구성되어 있고 27개의 오르드르 아래  240곡이 포함된다. 한 편의 오르드르 9~10개의 낱개 곡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쿠랑트와 가보트, 론도, 지그와 같이 그 시대의 춤곡 뿐만 아니라 문학적인 제목을 가진 곡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20번 오르드르는 8곡의 표제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Ordre 20ème de clavecin in G major        20번 오르드르 G장조

La Princesse Marie                                  마리 공주

La boufonne                                           어릿광대

Les chérubins, ou L'aimable Lazure        케루빔 혹은 사랑스런 라쥐흐

La Croûilli, ou La Couperinéte                 라 크루일리, 혹은 라쿠프레네뜨

La fine Madelon                                      친절한 마들롱   

La douce Janneton                                 상냥한 자네통

La Sezile                                                 라 세질

Les tambourins                                       탬버린



쿠프랭의 선구적인 면은 각 작품들이 제목을 가지고 있으며 그 표제를 관찰하고 묘사하는 방식에 미래의 낭만주의 혹은 인상주의적 면모가 있다는 점이다. 그의 음악엔 쇼팽의 시정, 드뷔시의 이미지, 베를리오즈의 대담함이 숨어 있다. 드뷔시와 라벨을 예견하듯 쿠프랭의 참신한 표현력은 아마도 프랑스 건반음악의 전통 속에서 면면히 내려오는 프랑스적 감성일까? 또한 그 시대 많은 곡들이 로코코 궁정의 여흥, 달콤한 사랑 놀음의 분위기를 타고 있었지만 쿠프랭의 곡들은 시대를 앞서나가는 진지한 내적 성찰이 돋보인다. 낭만적 자아의 내적 성찰이라는 개념은 18세기 말에서야 등장하는 개념이며 음악사에서 베토벤에 이르러서야 강하게 표현되기 시작한다. 감정과 취향에 있어 우아한 균형을 중시했던 고전시대와 달리 '낭만적 영혼의 넋과 꿈'을 껴안으며 인간 의식의 어두운 곳까지 샅샅이 탐구하는 낭만적 자아의 표현은 이성적 균형을  중시하던 바로크 음악에서는 흔치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쿠프랭은 <떠도는 그림자>와 같은 곡에서처럼 진지한 성찰을 시도한다.


이런 감정은 일반적 인간이라면 시대를 불문하고 모두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고 안하고의 문제는 큰 것이며 고정관념을 깨고 표현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표현적 성취는 매우 큰 것이고, 우리는 그런 성취를 선구적 예술이라 칭한다. 쿠프랭의 선구적인 음악에서 느껴지는 동요하는 자아, 고립과 적막, 깊은 우울과 어두움을 묘사하는 연주의 기술은 듣는 이를 깊은 심연 속으로 끌어들이며 성찰로 이끈다. 우리는 기쁨보다도 슬픔을 나눌때 더 큰 위안을 얻는다. 그건 쿠프랭의 작품 속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조화와 이성의 세계가 아닌 불안과 고독의 세계에서 우리는 쿠프랭의 위대한 면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달콤한 사랑과 귀여운 악상에서도 특별한 즐거움을 느낀다. 몇몇 곡들은 전원에서 펼쳐지는 여흥을 그린 와토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우수에 젖은 우아함이 '갈랑트 분위기'로 펼쳐진다. 그런 점에서 클라브생의 제한된 표현력보다는 훨씬 풍부한 표현이 가능한 현대 피아노로 쿠프랭을 연주했을 때 그 감정적 파급력이 더 클 수 있다. 타로는 그 점에 착안해 쿠프랭이 많은 작품들 속에서 피아노로 연주했을 때 그 묘사적, 정취적 표현이 잘 살아나는 곡들을 골라 음반 레퍼토리를 구성했다.


앙투안느 와토, 사랑의 노래, 1717년


예를 들면 피아노의 음향적 효과가 잘 살아있는 드라마틱한 <전쟁의 소음>, 쓸쓸한 정취의 <떠도는 그림자>, <갈대>, 로맨틱한 정취가 돋보이는 <요람의 사랑>, <쌍둥이>, 발랄한 로코코적 기쁨이 돋보이는 <뜨개질하는 여인>, <수녀들>, <틱, 톡, 쇽>, 시정이 넘쳐흐르는 사랑스러운 곡 <시테르섬의 종>, 세련된 우수의 감정이 잘 표현된 <라 쿠프랭>. 신비스러운 뉘앙스의 <신비한 바리케이드> 등 감정의 디테일을 샅샅이 묘사하는 듯한 피아노의 아름다움은 현대의 뉴에이지 피아노곡을 연상시킨다. 시대의 규범을 뛰어넘는 혁명적인 감정의 분출이다. 특히 <파사칼리아>는 후대에 나올 바흐의 파사칼리아를 연상시키는데  바흐의 걸작 <샤콘느 d단조>의 모델이 된 곡으로 알려져 있다. 음반을 끝맺는 마지막곡은 자크 뒤플리의 클라브생곡 <라 포투앵 La Pothuoin>이 실렸다. 뒤플리의 이 곡은 쿠프랭의 곡 보다 한참 뒤 시기의  곡인데 클라브생에 이어 현대적 피아노가 등장하기 전 그 과도기 시절의 작품이다. 따라서 현대적 피아노의 효과가 얼추 담겨있는 선구적인 곡이다. 타로는 쿠프랭과 그 후대의 음악과의 연결고리로서 뒤플리의 곡을 맨 마지막에 배치해 음반을 끝맺고 있다. 미래로 열어 놓은 구조이다.


클라브생은 아무래도 줄을 잡아 뜯어 소리를 내는 구조라 곡의 디테일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현대 피아노의 표현적 능력을 따라갈 수 없다. 반면에 클라브생으로 연주되던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기도 조심스럽다. 원전의 해석을 망치고 너무 분방하게 표현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타로는 그 위험성을 피해가기 위해 피아노 맞지 않는 곡은 제외했고, 피아노로 그 효과가 극대화 될 수있는 곡만 골라 모았다. 따라서 이 음반은 쿠프랭의 음향적 시도를 가장 적극적으로 펼쳐낸 음반이기도 하지만 알렉상드르 타로가 피아노를 어루만지며 가지고 노는 유희의 음반이기도 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E8VbuUdlcw8

https://www.youtube.com/watch?v=ktnJC4wQa7Q&list=OLAK5uy_kx32N5GSYVJXkOQpJ930sCFWyEu_dRupk&index=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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