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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텐 Sep 15. 2021

스코틀랜드의 흥겨운 선술집에서

18세기 하이랜드 게일 음악


바로크 클래식 음반 소개 


음반명: 영원한 행운-18세기 스코틀랜드 음악  

연주자: 레 뮤지시앙 드 생-줄리앙, 프랑수아 라자레비치 

레이블: 알파



음반 <영원한 행운 For ever Fortune>은 18세기 스코틀랜드의 떠들썩한 술집, 웅대한 자연 속으로 우리를 이끄는 랜선 여행, 아니 스피커 여행 음반이다. 스코틀랜드의 북쪽 하이랜드를 여행하며 마주치는 풍경은 끝없이 펼쳐진 평원과 그 사이로 흐르는 강, 울창한 숲 그리고 그림같이 우뚝 서 있는 성이다. 그런 그림같은 풍경 사이로 드라이브를 하다보면 절로 민요 가락이 떠오르는데 스코틀랜드 민요는 우리에게도 이미 많이 익숙하다. '작별'이라는 제목으로 번안해 부르는 <올드 랭 사인>은 너무 유명하고, <애니 로리>, <바바라 알렌>의 애닮은 감정도 익숙한 멜로디이다. 보이스카웃 노래집에도 실린 <화톳불>은 그 차분한 무드에 담긴 민요 감성이 아름다운 곡이다. 가장 쉬운 예로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 도입부의 틴 휘슬 피리 소리가 스코틀랜드-아일랜드 음악의 무드를 느껴보기에 좋은 곡이다.



음반 <영원한 행운>을 녹음한 프랑스의 고음악 앙상블 레 뮤지시앙 드 생-줄리앙(생-줄리앙의 음악가들)은 플룻과 백파이프 연주자인 프랑수아 라자레비치(François Lazarevitch)가 리더이고 프랑스와 영국의 고음악을 주로 연주하는 단체다. 이들은 알파 레이블에서 3장의 영국음악 음반을 냈다. 지금 소개하는 <영원한 행운-18세기 스코틀랜드의 음악> , <킬케니로 가는 하이로드 - 17-18세기 게일 음악>, 그리고 <여왕의 즐거움- 17-18세기 영국의 노래와 민속춤>인데 주로 스코틀랜드-아일랜드를 포함하는 게일(켈트) 문화권의 민속음악을 집중적으로 들려주었다. 이 게일 음악은 잉글랜드와는 전혀 다른 또 다른 무드의 민속음악이다. 18세기에 들어서 게일 문화권에서는 서민의 민속음악과 클래식 음악이 혼합 창작되어  색다른 크로스오버 음악을 만들어냈는데 이런 퓨전 경향은 민족주의적 의식까지 겹치며 19세기 브루흐의 <스코틀랜드 환상곡>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게일 지역의 민속 음악은 이민자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의 민요, 블루그래스, 컨트리 음악의 뿌리를 이루기도 했다. <오, 수재너>, <메기의 추억>같은 미국 민요의 기원이자 서부 영화에 자주 등장하던 선술집의 피들(바이올린) 음악이 그것이다. 가장 친근한 예로 영화 <타이타닉>에서 디카프리오와 윈슬렛이 3등실로 내려가 춤을 출때 흘러나오던 신나는 피들 음악이 바로 스코틀랜드-아일랜드 계열의 게일 춤곡이다.


18세기 스코틀랜드의 음악가들은 당시 유럽 문화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로 유학가 아르칸젤로 코렐리와 같은 대가에게 음악을 배웠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이탈리아 양식의 세련된 음악을 소개하고 연주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민속 5음계 '스콧 튠'이라고 하는 지방색을 버리지 않고 섞어 넣어 '이것은 스코틀랜드의 음악이다'라는 인장을 선율에 새겨 넣었다. 예를 들면 3-4개 악장으로 구성된 클래식 소나타를 작곡하더라도 한 개 악장에는 반드시 민속음악 형식을 끼워넣어 지방색을 유지하곤 했다. 서민층에서 유행하는 신나는 피들 춤곡을 소나타 형식에 믹스하기도 했고 바이올린 등으로 백파이프 선율을 모방하기도 했다. 


당시 스코틀랜드 음악가들은 이탈리아의 선진 문화를 본받아 바이올린의 연주법과 제작법도 발전시켰다. 바이올린 보다는 피들이라는 용어가 이 지역의 음악에는 더 정확할 것 같다. 피들, 피들러라는 용어가 게일 음악을 이야기할 때 빈번하게 사용되는데 피들은 바이올린이지만 주로 서민적이고 신나는 춤곡 연주에 사용되었고, 게일 음악에서 흔히 보이는 메들리 스타일의 쉼없이 이어지는 경쾌한 리듬을 특징으로 삼았다. 피들 스타일은 오늘날 미국의 컨트리 음악에서 벤조 등과 함께 연주되는 바이올린 음색과도 동일하다. 이 음반에 실린 음악들을 보면 피들의 경쾌한 연주에서부터 민요조의 소박한 선율까지 모두 스카치 위스키향이 나는 크로스 오버의 특징이 뚜렷하다.



음반을 여는 첫 곡 <Saw Na Ye My Peggie>는 1725년에 발표된 곡으로 술집에서 불리던 서민적인 흥겨운 노래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18세기 스코틀랜드에는 퍼브가 많이 있었고 노래는 그 분위기를 십분 반영하고 있다. 두번째 곡 <Johnnie Cope-Lauchalns' Lilt>는 두 개의 민요를 메들리로 섞어 놓았는데 쉼없이 이어지는 듯한 피들의 신들린 연주의 흥겨움을 듬뿍 맛볼 수 있다. 이런 피들곡들을 들어보면 당시 서민들의 떠들썩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하고, 백파이프 음악의 화성을 연주하는 듯한 연주 효과에서는 잠시 하이랜드의 도시 인버네스(Inverness)나 아버딘(Aberdeen)의 어느 골목길에 서 있는 듯한 기분도 난다. 음반의 19곡 모두 하이랜드 게일에서 불리고 연주된 음악으로 대륙과 다른 특유의 음악적 성취를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소스는 민요나 저잣거리의 노래들에서 왔지만 편곡과 변형을 통해 매우 세련되게 다듬어졌다. 


앙상블의 리더인 프랑수아 라자레비치는 플룻과 백파이프 연주자인데 그의 피리 소리는 신묘하다는 말이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빠른 패시지에서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민첩하게 날아다니는 피리 소리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청아한 틴 휘슬의 소리처럼 높이 치솟는 피리 소리는 게일 음악의 주요 음색톤을 담당하며, 음악 전반에 걸쳐 하이랜드의 웅대한 자연에서 느껴지는 향수감을 자극한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플룻의 구성진 선율, 꺾기와 장식음이 번뜩이는 토속 정서 가득한 선율들은 스코틀랜드 음악의 소박한 매력을 진심으로 담고 있다. 음악과 함께 하이랜드의 높은 산과 계곡 사이를 걷는 상상 속의 하이킹. 요즘같이 답답한 코시국에 음악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최고의 여행이 아닐까?






https://www.youtube.com/watch?v=NCvyjJylpPc


https://www.youtube.com/watch?v=BKyUBwTDHV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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