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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텐 Sep 16. 2021

우울과 광기의 연인에게

18세기 영국 바로크 음악


바로크 클래식 음반 소개


음반명: The Mad Lover  

연주자: 토마 던포드(류트), 테오팀 랑글루아 드 스바르트(바이올린)

레이블: 아르모니아 문디



이 음반의 아이디어는 17세기 영국의 희곡 <Mad Lover 미친 연인>에서 시작되었다. 공주와 사랑에 빠진 군인의 이야기 <미친 연인>은 엇갈린 사랑에서 오는 멜랑콜리와 병적인 감정을 다룬 드라마이다. 음반의 제목도 그 연극에서 가져왔다. 셰익스피어와 동시대를 살았던 영국의 극작가 존 플레쳐(John Fletcher)의 <미친 사랑>은 1617년에 첫 상연되며 런던에서 히트를 쳤고 이후 개작이 되고 리바이벌되면서 다시 인기를 끌기도 했다. 영국의 작곡가 존 에클스(John Eccles)가 연극에 붙인 악도 유명세를 탔다.


음반의 첫 곡 존 에클스의 <Ground>는 <미친 연인>에 붙인 극음악 3분 남짓의 짧은 아리아. 류트가 베이스 반주를 받혀주고 그 위를 스케이팅하듯 흘러가는 바이올린의 선율이 애잔하고 서정적인데 연극의 어두운 속성을 매우 감화력있게 드러내고 있다. 바이올린 연주한 스바르트는 이 짧은 곡에서 영감을 받 음반 레퍼토리 구성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연극에 붙여진 극음악 전체를 연주한 것은 아니다. 대신에  <미친 연인>이 유행하던 17-18세기 런던에서 활동 영국의 음악가들 존 에클스(1668-1735), 니콜라 마티스(1650-1714), 다니엘 퍼셀(1664-1717), 헨리 퍼셀(1659-1695), 헨리 에클스(생년미상) 영국 음악가문의 작곡가들을 한데 모았고  <미친 연인> 연극이 유행하던 17-18세의 런던으로 음악적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을 이 음반의 주요 개념으로 잡았다. 그 시대 런던의 연극무대와 거리에서 연주된 음악을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이 시기의 영국의 음악은 연극 전통이 강했던 영국의 문화적 풍토에 맞게 극 부수음악의 형식을 통해 발전했다. 이 음반에 선보이는 작곡가들은 모두 극음악 분야에서 활동했던 작곡가들이다. 


영국은 엘리자베스 1세 시대부터 가면극이 유행했고, 음악을 즐기는 여왕의 영향으로 새로운 악기에 대한 개발도 이루어졌다. 가면극은 이탈리아 오페라가 영국에 들어오기 전 영국에서 유행했던 고유 음악극 양식인데 오페라라기 보다는 음악 드라마에 가깝다.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면서 독창과 합창이 반복되고 반주도 가벼운 앙상블로 이루어졌다. 레치타티보와 연기를 통해 이야기를 끌어가는 오페라라기 보다는 노래들이 모여 이루는 연극이었다. 가면극이 궁정 예술이라면 대중적으로 엘리자베스 시대는 셰익스피어로 대표되는 연극의 시대였다. 연극 무대에서도 음악은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오늘날 영화의 배경음악처럼 연극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드라마틱한 효과를 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희곡에서는 가벼운 노래가 비극에서는 트럼펫과 드럼을 사용한 극적인 음악이 사용되는 등 작품의 분위기에 따라 악기 구성을 달리하며 적합한 음악적 효과를 찾았다. 또한 연극 무대에서 기악 연주도 자주 이루어지곤 했는데, 이렇게 영국의 16-17세기에 음악과 연극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했고 존 에클스, 헨리 퍼셀  등 17-18세기의 영국 음악인들은 당연히 이런 종류의 극음악을 작곡해야했다. 


첫곡에서 시작해 28곡 모두가 시적이고, 정적이며, 어둡다는 특성, 모두가 영국의 바로크 음악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레퍼토리 구성에서 엄격한 통일성이 느껴진다. 우울과 침잠은 희곡에서 처럼 이 음반의 주된 정서다. 토마 던포드와 테오팀 드 스바르트, 두 젊은 연주자는 음악적 멜랑콜리 상태를 명상의 상태처럼 활용해 고요한 가운데 서로의 연주와 교류하고 또 자신의 마음과 교류하는 방식으로 음악을 연주했다. 특히 바이올린 연주는 섬세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펼쳐지는데 28곡 모두를 관통하는 어두운 정서를 정제된 선율로 드러낸다. 그 정서의 깊이는 굉장히 깊고 무거워서 음반의 끝에 이르러서는 어떤 감정의 승화가 느껴진다. 프랑스 바로크 음악은 감정을 에둘러 상상할 수 있도록 표현하지만 영국의 음악은 감정을 직선적으로 드러내는 경향이 있는데 그 사실을 28곡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동판화 <멜랑콜리아>, 1514


각각의 곡에 대한  해설은 무의미할 것 같다. 음반 전체를 관통하는 '광기와 우울'의 음악을 통해 우리의 유한한 삶 속에 끼어든 사랑이라는 정신 현상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충분할 것이다. 멜랑콜리는 근세 서양문화에서 천재들의 기질로 이해되었으며 인간이 가진 4가지의 기질 중 하나로 검은 담즙이 일으키는 병리적 현상으로 이해되었다. 독일의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동판화 <멜랑콜리아>(1514)는 천재의 우울을 도상적으로 드러낸 작품으로 턱을 괴고 우울한 상념에 잠겨있는 천사와 그 주위에 널려있는 여러 관측기구들은 세상의 지식을 이해하고 그것을 표현는 예술가의 고뇌, 천재의 우울을 알레고리화해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 예술가는 자연에 대한 지식을 앞에 두고 우울에 빠진 것일까? 나는 이 그림이 우주의 질서 앞에 잠시 깜빡이다 사라져 버리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명상이라고 보고 싶다. 멜랑콜리아는 상실이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언어를 배우고 사회가 만들어 놓은 질서 속으로 편입되어 들어갈 때 잃어버리는 '그 무엇'이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을 그것을' objet a  오브제 아' 라고 표현했는데, 사라진 욕망 대상에 대한 일생의 추구를 뜻한다. 우리의 삶은 결핍을 채우기 위해 그 '오브제 아'를 쫓는 헛된 여정인가?  


미친 연인이란 무엇인가. 광기의 사랑을 말하는 것인가?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자 앙드레 브르통은 <미친 사랑>이라는 소설에서 사랑을 향한 욕망이 일으키는 착란의 세계를 실험한다. 사랑은 내가 가지고 있는 않은 이미지를 상대방에 투사하여 상대방이 아닌 그 위에  덧씌워진 나의 이미지와 감정적으로 교류하는 일종의 병리적 현상이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너에 입혀진 나를 사랑한다.


그것(연인)은 섹슈얼 파트너의 존재가 아니다. 한 개인의 특정성이 아니다.

내가 타입이라고 불러왔던, 말하자면 이미지라는 것과 지극히 친밀한 어떤 것이다.

 - 쟈크 라캉,  세미나 I , p. 121.


자아는 특정한 개체이지만 자이가 가진 이상은 그가 지녔던 환상, 상상계 속의 이상형이다. 이마고(자아이상, 환상 속의 이상형)는 타입이지 개체가 아니다. 연인과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지금, 여기'의 상징계는 떠도는 말의 세계이다. 개체가 명확하게 손에 잡히는 몸의 세계가 아니다. 자신의 이마고(imago)를 상대에게 투사(projection)하는 행위 자체가 기표로만 존재하는 연인의 특성을 증명한다. 그런데 우리는 연인을 특정 개체로 착각하고, 너와 내가 하나라는 꿈을 버리지 않는다. 그 꿈은 죽음이라는 '무위 無爲' 속에서 순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지만,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르네 마그리트, 연인 II, 1928


내가 가졌던 이마고라는 '타입'에 '개체'로서의 연인을 동일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가능에 의한 조바심 때문에 에로스는 공격성향을 띄고 나타난다. 질투와 증오와 애증은 상상계와의 갭에서 태어난다. 연인을 자아의 이상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환상을 강요하게 된다는 사실. 우리는 상대를 보지 않고 상대방에 투사된 자신의 모습에 미혹되어 있다는 것. 때문에 자아 이상과 다른, 개체로서의 상대를 나에게로 교화하려는 공격 본능을 서슴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그 공격 본능은 사디즘적 미친 사랑으로 나타나 상대를 파괴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교화하려는 대상은 연인이 아니라 허상일 뿐이다. 불가능한 하나를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사랑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사랑은 맹목적이고 공격적이다. 그리고 그 파괴 이후에 따라오는 상실과 멜랑콜리는 우리가 통과해야 할 심연과 같은 터널이다. 존 플레처도 자신의 희곡에서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음반은 그 희곡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켜 28곡을 모두 우아한 멜랑콜리 작품으로 구성했다. 그 속에서 단 한곡만 꼽으라면 나 니콜라 마테이스의 8번 트랙 <환상곡 A단조>를 꼽겠다. 무반주 바이올린곡으로 시적이고, 명상적이며, 내적이다. 영국의 바로크 음악을 담은 이 음반은  모든 곡들이 우아하기 이를데 없지만 그 어두운 감정을 직접적인 묘사로 인해 상실이라는 단어와 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사랑, 상실, 우울, 광기의 무드가 류트와 바이올린의 선율을 통해 고아하게 울려 퍼진다. 감정적 파괴력이 강한 폭력적 단어에 비해 연주 자체는 고풍스러워 그 역설적 괴리감이 감정에 휘둘리며 평생을 살아가는 우리의 애잔한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사랑이라는 눈먼 큐피드의 화살 대해.  



https://www.youtube.com/watch?v=rQH3udsV6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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