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자: 파비오 비온디(바이올린), 안토니오 판티누올리(첼로), 잔자코모 피나르디(테오르보),
파올라 폰체트(하프시코드)
레이블: 글로싸
이탈리아 바로크 음악 연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바이올리니스트 파비오 비온디. 바로크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들을 많지만 비온디만큼 이탈리아 레퍼토리를 깊고 집중적으로 연주하는 연주자는 없을 것 같다. 그의 즐비한 음반 목록 중에서도 이 음반은 18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음악의 정수를 간추린 음반이며, 당시 유럽 음악계를 주도했던 이탈리아의 화려한 바이올린 스타일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에센스 같은 음반이다. 이탈리아는 유구한 역사와 함께 음악에 있어서도 유럽의 문화를 선도하는 국가였다. 적어도 근대 음악의 흐름이 독일/오스트리아 쪽으로 넘어가기 전에 이탈리아의 도시들은 유럽 음악의 표준을 만들어내는 유행의 중심이었다.
만일 누군가가 이탈리아 바로크 음악이 궁금하다거나, 파비오 비온디의 연주를 제대로 들어보고 싶다고 하면 비발디의 <사계> 음반과 함께 이 음반을 추천해 줄 것 같다. 베라치니, 제미아니니, 코렐리, 타르티니, 로카텔리 그리고 비발디까지 당대를 주름잡던 이탈리아 대가들의 바이올린 소나타 6곡을 묶었다. 이들의 작품은 이후 근대 바이올린 소나타 양식의 원형이 되며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전 유럽에 걸쳐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이 음반에 실린 6곡의 바이올린 소나타들은 그 당시 최고의 가장 앞서나간 세련된 유행 음악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하지만 이 음반의 주인공은 이 대가들의 소나타 작품이 아니다. 연주자 파비오 비온디도 아니다. 일 토스카나(Il Toscana)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1690년산 바이올린이 그 주인공이다.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악기 명장인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1644-1737)가 제작한 '일 토스카나' 바이올린이 티없이 밝고 선명한 소리를 내뿜는다. 녹음을 위해 연주자 비온디는 스트라디바리가 메디치 가문의 페르디난드 토스카나 대공의 주문을 받고 제작한 역사적인 바이얼린 '일 토스카나'를 로마 산타 체칠리아 국립 아카데미로부터 대여해 연주했다. 르네상스 미술의 후원 활동으로 유명한 메디치 가문은 중세말 이후 약 300년간 피렌체를 통치했으며 미술 뿐만 아니라 음악 후원 활동도 열정적이었다. 페르디난드 대공은 당시 스트라디바리에게 바이올린 2개, 비올라 2개, 첼로 1개 총 5개의 현악기를 주문했는데 역사적으로 이 악기들은 '메디치 퀸텟 (medici quintet)'으로 불리우고 있다. 하지만 정확하게 누가 몇 점의 악기를 언제 주문했는지는 기록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학자들 간에 논란이 있는 상황이다.
이 5개의 악기 중 테너 비올라 1개와 첼로 1개는 피렌체에 보관되어 있지만, 바이올린 1개의 행방은 알수 없고, 콘트랄토 비올라 1개와 바이올린 1개는 불법적으로 외국으로 유출되었다. 이 음반에서 비온디가 연주한 '일 토스카나'는 해외로 유출된 후 여러 딜러와 컬렉터들 손에 전전하다가 1953년에야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오게 되었고 현재는 로마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메디치 가문의 페르디난드 대공(오른쪽에서 두번째)와 그의 음악가들
하이 톤의 광채가 나는 '일 토스카나'의 음색은 스트라디바리 악기의 오리지널 음색 그대로이다. 오디오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나서 잠시 후 첫 음을 튕기는 바이얼린 소리가 흘러나올 때 그 청량한 소리에 상쾌한 충격을 받을 정도로 악기의 음색은 선명도와 텐션이 높고 최신 녹음 기술로 온전히 담겨 있다. 음향적 쾌감과 함께 이어지는 이탈리아 바로크 음악 특유의 활기와 선율, 비온디의 추진력있는 힘있는 연주, 노래하듯 이어지는 아름다운 선율은 이탈리아 바이얼린 음악의 향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최고의 명장 스트라디바리의 명기로 최고의 음악가 코렐리의 소나타를 듣는 것. 그것이 이 음반의 매력이다.
이 음반의 작곡가들 중에 가장 위대한 음악가로 여겨지는 음악가는 단연 아르칸젤로 코렐리다. 코렐리는 소나타 양식을 정립한 음악가로 평가받는데, 그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은 네 악장 형식의 느린 곡과 빠른 곡을 교차로 배합하여 안정적인 형식감에 더해 감정적 전이를 드라마틱하게 일으키는 전형적인 소나타 양식을 보여준다. 이렇게 악장간 다른 악상과 빠르기의 교차 배치는 18세기 이탈리아에서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이 양식은 전 유럽에 걸쳐 유행하게 되었고 이후 코렐리 음악에 대한 모방과 유파가 생기게 된다. 파리나 런던으로 건너간 이탈리아 음악가들이 파리와 런던에 이탈리아 음악을 심을때 근본이 될 정도의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2악장 지그(알레그로)는 각종 매스컴에서 시그널 뮤직, CF 배경음악 등으로 자주 사용되어 매우 친근한 선율이다. 음반을 여는 첫 곡 베라치니의 구슬프고 애절한 샤콘느 연주, 잃어버린 사랑을 애도하는 관능적인 타르티니의 소나타, 이탈리아의 태양을 닮은 비발디의 활기찬 선율까지 스트라디바리 바이얼린의 눈부신 음향은 단번에 토스카나 대저택의 시원한 로비 한켠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18세기 로마와 피렌체로 떠나는 긴 시간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