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바흐 - 바이올린 소나타
바로크 클래식 음반 소개
음반명: J.S.바흐, 바이올린 소나타 3~6번 BWV. 1016~1019
연주자: 르노 카퓌송(바이올린), 다비드 프라이(피아노)
레이블: 에라토
바흐의 바이올린 소나타 4곡을 담고 있는 음반으로 보석처럼 정밀하게 가공된 정교하고 서정적인 바이얼린 연주가 돋보이는 명반이다. 바흐는 1700년대 초 독일의 쾨텐에서 궁정음악감독으로 재직시 모두 6곡의 바이얼린 소나타를 작곡했다. 6곡은 모두 감정의 백과사전이라 할 만큼 다채로운 악상들을 담고 있는데 바흐로 대표되는 독일 바로크 음악의 특징이라고 할 만한 건축적 화성 구조와 대위법적 기교가 이탈리아적인 세련된 선율미와 결합해 독일 바로크 바이올린 음악의 전형을 들려주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바흐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바흐의 어떤 음악들 보다 감성적이고 멜랑콜리하며, 느린 악장의 곡은 신파적이기까지 하다.
독일 쾨텐의 바흐광장과 바흐 조각상
프랑스 피아니스트 다비드 프레이의 여성스러운 뉘앙스의 피아노가 무표정한 바흐의 음악에 제법 잘 어울린다. 단순한 멜로디 한 소절에도 여러가지 표정을 싣는 터치와 뉘앙스가 섬세하게 펼쳐지는데 쇼팽과 슈베르트의 피아노곡에 어울릴 법한 로맨틱한 감수성을 절제 속에서 바흐의 멜로디와 섞어가는 솜씨가 돋보인다. 바이올린 소나타이지만 피아노의 적극적인 표현으로 두 악기가 거의 대등하게(?) 느껴지며 바흐의 지적인 음악에 따스한 터치를 심어 넣었다. 르노 카퓌송의 바이올린은 프랑스-벨기에 악파 스타일의 연주를 근사하게 들려주는데, 매끄럽고 윤택하며 절제된 감정의 프랑스-벨기에 스타일의 모범답안 같은 연주다. 이 정도로 섬세한 바이올린 연주는 흔치 않다. 그만큼 카퓌송은 본인이 추구하는 연주 스타일의 정점을 이 음반에서 찍고 있다. 20세기를 풍미했던 바이올린 연주자들인 자크 티보, 아르투르 그루미오, 지노 프란체스카티, 지네트 느뵈, 오귀스탱 뒤메이 등 프랑스-벨기에 악파의 연주를 연상시키는 고상하고 담백한 해석이 일품이며, 디테일 마다 살아 숨쉬는 감정의 맥이 아름답다.
프랑스-벨기에 스타일의 바이올린은 20세기 들어 러시아 스타일의 호방하고 남성적인 바이올린 연주에 가려 대중적 인기를 잃은 감이 있다. 하이페츠, 오이스트라흐, 코간 등으로 대표되는 러시아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은 현란한 테크닉과 장쾌한 스케일로 웅장한 협주곡, 빠르고 기교넘치는 작품을 드라마틱하게 소화해냈다. 프랑스-벨기에 악파 연주자들은 이들 러시아인들과 레퍼토리 선정부터 다르다. 실내악 중심의 소품을 자주 연주하고 연주 테크닉도 절제되었지만 디테일의 우미함을 살려내는 흥취에 더 음악적 강조점을 두었다. 카퓌송이 이 음반에서 들려주는 스타일이 바로 프랑스-벨기에 악파 연주의 정석. 따라서 J.S.바흐의 소나타는 독일음악 특유의 견고하고 지적인 형식미를 보여주지만 이들 두 명의 프랑스 연주자들의 손끝에서 감정적인 뉘앙스를 얻었으며 관능적인 멜랑콜리함까지 덧칠해져 프랑스적 생기를 얻었다. 바꿔말하면 바흐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낭만적 흥취를 씨앗을 가지고 있는 매우 선구적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씨앗이 없었더라면 애초에 이런 우아한 연주도 불가능했을테니.
바로크 시대의 음악은 보통 평정한 흐름이 돋보이지만 바로크 시대라고 해서 격정적이거나 낭만적인 감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굉장히 절제되어 있고 음악 역시 형식적 질서가 강조된 논리의 감수성을 보여주었다. BBC 드라마 <음악을 영원히 바꾼 날 the day that changed music forever>을 보면 베토벤 <영웅 교향곡>의 초연을 듣고 한 귀족이 시끄럽고 무질서한 음악이라고 혹평을 날린다. 17-18세기는 그런 시대였다. 음악에서 조화를 찾는 시대. 하지만 이 프랑스 연주자들의 연주는 우아한 절제의 모범을 보여주는 동시에 애조띤 감수성을 살짝 덧붙이며 바흐의 음악에 감정을 덧입혔다. <소나타 3번> 3악장의 애수어린 노래는 관능적인 슬픔의 빛깔을 터치한다. 연주의 절정은 <소나타 4번>의 1악장 '시실리안느'이다. 1724년에 초연되는 바흐의 대작 <마태수난곡> 중 콘트랄토가 부르는 아리아 "우리를 긍율히 여기소서"의 호소력 깊은 노래와 동일한 멜로디인 이 선율은 바이올린이 슬퍼하되 어디까지 균형을 잃지 않고 경건하게 노래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중용의 명연주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6V2FPE6FkM8
바흐 바이올린 소나타 4번의 1악장 시실리안느를 연주하는 카퓌송과 프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