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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출근, 누군가의 여행

세상은 항상 나보다 먼저 움직인다.

by 혁이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누구나 입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


그 누군가의 앞에 펼쳐질 여정이 고난하다 해도,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해도.


나에게 여행이라는 경험은 몇 번 있지는 않았다. 친구들과 간 해외여행 세 번, 그리고 가족끼리 갔던 해외여행 한 번. 국내로 따지면 조금은 더 있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값진 여행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여행이 아니다.


나에게 가장 와닿았던 값진 여행은 오전 5시의 서울이었다.


서울은 명절 때만 갔었고, 성인이 되고서야 놀러 몇 번 온 것이 고작이었다. 20대 초반의 나에게 서울은 그저 정신없는 동네에 불과했다. 사람이 많은 곳들을 지금까지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겐 얼마나 정신없이 느껴졌을까? 놀러 갔다 와도 항상 버스나 차에선 기 빨려서 기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겪었던 그 한 번의 서울로 인해서 나는 서울이 너무 좋다.


서울에 있는 동기네 집에서 지냈을 당시의 얘기다. 매번 동기들과 술도 먹고 아니면 같이 지내는 동기와 둘이서 술을 먹고 다닐 당시에 오전 4시 정도 됐을 때, 난 출근하는 사람들을 봤다. 내가 주변에서 흔히 보던 공사장 출근이나 용역 출근하는 사람들이 아닌 정말 정장을 입고 서류가방을 들고 출근하는 사람들을 봤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난 작아졌다. 세상은 넓고 우주는 지구에 비해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커서 우리는 우주에 비하면 먼지보다도 작은 존재라는 걸 듣고 살아왔지만, 고작 내가 오전 4시에 출근하는 사람을 보고 내가 작아졌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 당시 나에겐 출근 시간보다 한참 전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고 여유롭게 출근을 하거나 오전 이른 시간에 출근을 하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항상 시간이 내 발 뒤꿈치에서 날 잡아먹을 듯이 쫓아오는 감정을 느끼면서 출근을 했었던 것 같다.


그날 이후에 난 신기하게 생각해서 집 근처에 있는 지하철역 첫 차 시간에 맞춰서 나가보기로 했다.

서울의 오전 5시 즈음이었다. 첫 차 시간이 되니 사람들이 하나 둘 오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이 출근 때문에 온 건지 밤새워 놀다가 첫 차를 기다리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난 그냥 내가 경험해 보지도, 보지도 못했던

그런 순간들이기 때문에 놀라웠다. 일을 하러 가는 것 이어도, 놀고 난 후에 집에 가서 잠을 자는 사람들 이어도 어쨌든 나보다 먼저 깼거나 혹은 밤을 지새운 사람들이었다.

세상은 나보다 항상 먼저 돌아가는구나, 세상은 내가 없어도 되는 곳이었구나, 세상은 항상 나보다 먼저 움직이는구나, 내가 자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열심히 일을 하고 나보다 열심히 놀고 있구나.

사실 당연한 소리다. 내가 자는 동안에 미국은 낮일 테고, 우리가 자는 동안에 시장은 돌아가고 있다. 아니 시장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돌아가고 있다.

전 세계가 나보다 바쁘다는 건 당연히 알지만, 난 서울에서 느꼈다. 오전 3시 4시도 아닌 5시의 서울이었다.


경험하고 나니까 엄청난 겸손함? 이 몰려왔다. 마치 내가 살면서 어릴 적에 어른들께는 인사를 해야 한다고 교육받은 뒤에 동네 어르신들을 본 그런 감정이었다. 세상엔 배울 점으로 가득하구나 나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 세상을 더 오래 사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들을 느꼈다.


누구에게나 24시간이라는 시간은 똑같이 주어진다. 그중에서도 3분의 1인 8시간 정도는 평균적인 수명시간으로 소비한다. 그럼 잠을 줄여서라도 혹은 나에게 수면시간을 제외한 16시간이라는 시간을 상당히 효율적으로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아직도 이런 마음가짐들이 나에게 쉬운 일들은 아니다.

힘들지만 하고 나면 보람이 있는 일들이다.


여행을 가면 기분도 좋고 느낀 점들도 많고 나아가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면서 배워가는 것들이 많은 것은 누구에게나 물어봐도 당연한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최고의 여행을 꼽으라면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오전 5시의 서울을 고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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