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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도시인 조수일 Oct 01. 2022

강원도 양구 두무산촌 세 달 살기

- 군밤 구이 파티가 열렸어요

ㅇ공무원연금공단에서 은퇴자 공동체 마을 살기를 신청해 전국의 은퇴자 6팀이 모여든 우리 숙소는 양구군 두무산촌으로 예전 폐교를 펜션 화한 곳이다 우선 학교였으니 만큼 운동장은 잔디가 깔린 앞마당으로 수영장도 치도 군데군데 놓여 참 예쁘다  교실이었던 1,2층이 개조한 숙소인 셈이다 정자도 있고 자작나무도 있고 무엇보다 방앞 테라스가  엄청 넓어 테이블과 의자가 4개씩 놓여 있어 거기서 식사도 차도 앉아 즐겨 마시곤 한다 왼쪽 사무실과 조리실 뒤로 숲이 있는데 거기 밤나무가 많아 요즘 우린 아침에 일어나면 밤을 주우러 다닌다 산밤, 쥐 밤 이어 작지만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각 실마다 밤을 주워 모은 게 꽤 많아졌다 아침 산책을 다녀오니 회장님이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하고 계셨다 얼마 후 나가보니 오늘은 군밤 파티를 한다고 하셨다 6호실 선생님은 숯불을 지피고 계셨다 강원도를 많이 속속 들 히 사랑하시는 3호실 권 선생님과 4호실 총무님꺼지 합세해 먼저 밤의 꽁무니에 칼집을 내느라 애쓰고  계셨다

방안에 있으려니 펑펑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총무님이 숯불 위에서 익어가는 군밤 사진을 올려 주었다 좀이 쑤셔 바베큐장으로 내려갔다 여전히 밤은 펑펑 소리와 함께 자신의 존재를 알리느라 쉼 없었다  입을 절반쯤 벌린 군밤을 까먹었다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날 사 먹던 군밤을 이 산골에서 먹을 줄이야  너무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아침마다 밤송이는 밤새 떨어져 입을 벌린 채 누워 있거나 그 벌린 입에는 밤이 두 개나 세 개가 나란히 세 쌍둥이처럼 누워있었다 어떤 것은 입을 앙다문 채 퍼런 송이인 것은 운동화로 가운데를 밟으면

꼭 숨기고 있던 밤이 툭 빠져나오기도 했다 아니 이 두무 마을  계곡물을 따라가면 고추밭 고춧대 사이로 떨어져 나뒹구는 밤송이들이 천지였다 집집마다 큰 밤나무의 밤송이가 누렇게 익어 입을 벌린 채 곧 쏟아질 듯했다

밤을 군밤으로 만들어 먹자니 다들 소년 소녀시절로 돌아간 듯 흥분을 못 감춘 채 우린 군밤을 까먹고 또 까먹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화덕 속에서 밤들은 펑펑 터지곤 했다 하얀 눈이 내린 겨울이었음 얼마나 더 낭만적일까 하는 낭만파 귄 선생님의 멘트에 우린 또 다 호응하며 즐거워했다

컵 가득 군밤을 건네주시던  6호실 선생님께 죄송했다 나는 도와드린 것도 없이 애써 구운 군밤만 날름날름 먹은 것이 죄송했다 염치없이 입만 가져간 것이다   아 30년 넘게 40년 넘게 충실히 다니던 직장을 은퇴하고 일면식도 없이 살던 사람들이 자연에서 자연 속에서 숲과 나무와 함께 살아 보고 싶었다는 하나의 목적 아래 이렇게 모여  정다운 시간을 꾸리며 살 수도 있음에 나는 새삼 이 연금공단의 프로그램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매년 세달살이를 떠날 것만 같기도 했다  팡팡 터지던 군밤 소리처럼 우리의 마음도 익어가 서로의 마음에 가 닿는 따스하고 황홀한 순간이었다 와인과 샴페인 없이도 충분히 행복한 군밤 파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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