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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박

by 김귀자

탁구채를 들고 집을 나셨다.

이슬비가 내리고 있다.

밖이 내다보이는 투명한 우산을 쓰고 잿골로 향한다.

오랜만에 구장에 간다.

'편안한 마음이다.'

'이 마음은 오래갈까.'

그동안 내마음은 늘 불안했다.

뭘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텐데도, 불안한 마음은.

'아직도 "휴직"이 아닌 근무중인걸까.'

세상살이와 인간관계에 늘 마음을 써왔다.

무가 뭐라하지도 않는데, 좌불안석, 노심초사 였다.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앞선 어른신이 우산도 없이 짐을 들고 건너고 있었다.

얼른 우산을 씌어 드리고 짐을 받아 들었다.

마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어르신 집은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빨간 기와집에 파란 대문이다.


어르신이 집앞 호박 덩쿨에서 "얘호박"을 하나 따 주었다.

정말 먹기에도 아까운 "애호박"이다.

주먹보다 조금 더 크다.

봐두었던 호박이었는지, 주저없이 따 준다.

그냥 마음이 따뜻해진다.

몇번을 "감사하다." 말했다.


얘호박이 아닌 "애호박"

오늘 저녁, '남편과 버섯을 넣고 나물로 먹어야지.' 생각했다.


이젠 남편에게 사랑받고 싶다.

좀 편해지고 싶다. '언제까지 존재감 있는 남편처럼 지내야 하는 걸까.'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오주여 나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그럼에도 감사하자

그냥 오늘 저녁은 "얘호박 버섯 나물" 먹으면서

"愛호박" 이야기나 하자.

"그냥 우산만 같이 쓰고 갔는데, 그 어르신이 얘호박을 따 주었다고."

"어쩌구 저쩌구"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노래가사 처럼.


IMG_9646[1].JPG

20251012[일], 호박꽃이 나란히 피었네요. 같이 피었만 있어도, 호박은 열리네요.

추워지기 전에 열매 맺기를, 얘호박으로 누군가 손에 "愛호박"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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