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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박물관

by 김귀자

지금 로마는 아카시아 꽃이 한창이다.


이곳의 여자들은 담배를 많이 피고, 고부간의 갈등이 심하다고 하였다.

거기다가 난폭운전의 대부분은 여자라고 한다.

출산율 또한 적으며, 결혼을 거의 하지 않아 이혼율이 적다고 하였다.


자녀는 18세가 되면 성년으로 인정하여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독립하여, 학교에 가는 문제 등은 부모에게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스무 살이 되고, 서른이 넘도록 독립하지 못하고 사는 것보다는 더 합리적이지 않나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부모들과는 많은 차이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곳에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로마 최대의 명소 바티칸 박물관을 관람하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러 9시부터 줄을 서야

했는데, 수많은 인파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 바티칸으로 오는지.' 의문이 생겼다.

우리보다 일찍 온 사람이 많아 한참을 기다려야 했고, 우리 뒤로도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성벽 주변에 여러 대의 C.C 카메라가 이 나라 국민이 문화유산에 대한 경호가 얼마나 투철한지 느끼게 해주었다. 성벽에 자란 풀 한포기, 돌멩이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삶이 부럽기도 했다. 줄을 서는 동안 거리의 악사 연주를 들을 수 있었고, 구걸하는 걸인을 만날 수 있었는데,

경찰관이 출동하여 바로 데리고 가는 것도 볼 수 있었다.

2시간여 줄을 서서 기다려, 박물관 관람을 하면서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올 수 밖에 없는지,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아니! 이 그림, 조각, 건축을, 현대도 아닌 그 옛날에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감동이 밀려왔다.

말로만 듣던 미켈란젤로의 천정벽화를 보면서 그 웅장함에 놀랐고, 그 천정을 헤매고 다녔을 한 예술가의 고뇌가 나를 슬프게 했다.

"로마는 3일안에 부셔버릴 수는 있지만, 3개월 안에 다 볼 수 없다."는 말이 실감이 갔다.


또한 바티칸 박물관을 30년 동안 공부하며 보아도 다 이해 할 수도 없고,

다 알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들만의 역사로 만든 어느 벽화 앞에서 코리안 아줌마는 말을 잃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되뇌이고 있었다.


미켈란젤로의 최고의 걸작 천지창조는 촬영이 금지 되어 있어 눈으로만 담아가지고 왔다.

그것을 보면서 그 당시 한 예술가의 고뇌와 슬픔에 가슴이 아렸다.

천정벽화 밑에서는 미사를 드리는 사람도 있었고, 찬송을 부르는 사람도 있고, 기도를 드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감동을 뒤로 하고 나는 빨간 깃발을 찾느라 혼비 백산이 되었다.


박물관을 나와 이태리 "스파-게리"로 점심을 먹었다.

이곳 거의 대부분 식당은 가족 구성원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1인 이상 종업원이면 노조를 결성 하여 권리 등을 주장하는 노조활동을 하여, 골치 아프기 때문이란다. 어느 나라에나 노사갈등은 존재 하나보다.



20070423(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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