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의 시절

by 석현준

창고를 정리하다 보니 먼지가 잔뜩 쌓인 상자 안에 잠들어있는 오래된 폴라로이드 카메라랑 사진 한 무더기가 있었다.

여러 빛바랜 사진들 속에 유독 고이 포장되어 있는 한 장의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빛바랜 사진들과는 달리 너무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너와의 추억들.


널 만난 뒤로 내 사진들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내 사진들엔 네가 담겨있었다. 이전까지는 일절 사람을 사진 속에 담지 않았는데 넌 왜인지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날 뒤흔들었다. 네가 무지 밝아서 네 주변마저도 밝게 빛을 냈다. 그래서 너에게 더 이끌렸다.

처음에는 어쩌다 한번 잘못 눌러버린 셔터 때문에 널 찍었고 그 사진은 너무 예뻤다. 붉은 노을이 지고 있는 사진 속에 발그레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 사진이. 그래서 널 좋아하기로 했다. 아니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얼핏 네가 들어있는 사진을 찍었을 땐 알 수 있었다.

이제껏 찍어본 사진들보다 아름다운 네 미소 때문에 사진이 빛이 났다.

네 사진들을 보며 난 네게 물었다.


"왜 사진 찍을 때면 더 활짝 웃는 거야?"


매번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에 눈을 가져다 대고 한쪽눈을 감고 렌즈 속으로 너를 보면 유독 네가 조금 더 활짝 웃고 있는 것 같아서.


"사진 찍을 때 네가 꼭 나를 보며 웃는 거 같거든."


넌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내게 대답했다.

그리고 밴치 위에 놓여있는 카메라를 들고 내 등을 떠밀며 말했다.


"내가 사진 찍어 줄게 웃어봐 더 활짝"


사진을 찍고 나서 사진을 보는데 어정쩡하게 웃고 있는 내 얼굴이 있었다. 넌 나온 사진이 네겐 부족했는지 내게 미소를 지어보라고 했다. 처음으로 난 네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넌 아무런 감흥도 없는지 얼굴빛하나 바뀌지 않았다. 그렇게 거의 평생 지을 미소를 다 지었을 때쯤 네가 사진기를 들었다. 그리고 일말의 걱정도 없이 셔터를 눌렀다.


"찰칵"


네가 담겼다. 널 보니 내가 보였고 작은 사진 한 장에 너와 내가 담겼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는 닿아있었다. 사진 속에서 살짝 닿았지.

잘 찍혔냐고 물어보는 네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진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진을 나만 알고 싶어서 숨겼다. 보이지 않는 곳에 고이 숨겼다. 아니 담겨버렸다.


이런 작은 추억을 회상하며 바라본 여러 사진들 속에는 너의 시절이 찍혀있다.

그 사진들 속 너를 보면 내가 어렴풋이 보인다.

사실 그 사진 속에서는 너와 내가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작은 추억들이 담긴 사진들을 보니 웃음이 피식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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