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봄(靑春)

by 석현준

널 알기 전 그러니까 널 지나가는 사람 1로 생각했을 땐 네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누구에게나 그랬다.

내가 가진 게 엄청난 능력이었었을까 아님 저주였을까. 그건 중요하지 않고 난 네 얼굴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보이는 눈, 코, 입을 난 볼 수 없었다. 그저 하얀 도화지를 보는 듯했다. 그러다 네가 작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던 말들로 난 점차 널 볼 수 있어졌다.


"아마도 나는 너를 좋아하나 봐"


나도 처음 듣는 말이었고 너도 처음이었던 건 같다. 말을 하고 나서는 네 도화지가 붉게 물들어 올랐다.

그리고는 덥지도 않은 날씨에 연신 손부채질을 하며 덥다고 말했다. 그러자 마법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네 얼굴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의 얼굴까지 볼 수 있어졌다. 네 얼굴에는 너의 눈, 코, 입이 만화 속 캐릭터처럼 점차 그려지기 시작했고 이내 네 얼굴이 완성되었다.

다 그려진 그러니 진짜 네 얼굴을 보는데 너무나도 예뻤고 그리고 빛났다. 네 작은 미소가 띠는 네 얼굴을 놓칠 수 없을 만큼 너는 무지 예뻤었다.


그 후에는 네 곁을 지키며 너랑 붙어서 다녔다. 다른 사람들을 보며 웃어줄 때면 이유 모를 작은 심술 때문에 네게도 툴툴거렸다. 아마 독점하고 싶었던 것 같은 욕심 많은 날 넌 웃으면서 안았다. 조금 더 정확히는 품었다였을 거다. 언제나 내 마음까지도 품어주고 감싸주는 너였다.


사실은 내가 알기도 전에 내가 깨달을 수도 없을 만큼 천천히 그리고 많이 너를 좋아했다.

조금은 서툴고 신선한 그렇지만 성장하고 있는 우리들을 사람들은 '청춘'이라고 부른다.

푸르고, 젊고, 고요한 봄이었다. 상큼 달달한 계절 웃고, 울고, 화해하는 그리고 마음이 설레는 봄이었다.




눈을 떴다. 아직 검은 하늘을 보며 알았다.

아주 달콤한 지독하도록 달콤한 꿈을 꾸었다고.

아직은 아니어서 봄이 오지 않았지만 난 아마 봄을 갈망하고 빛을 갈망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닿을 수 없는 빛이었다. 내겐 아직까지도 찐득하게 달라붙은 그림자가 있어서 아마 그래서 춥고 어두운 데로 숨었던 것 같다.


네 곁에 있으면 네 곁에 있으면 내가 너무 훤히 드려다 보여서 더 이상은 염치없게 굴 수 없어서였다. 휴대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너였다.

아마도 달콤했던 꿈은 아니었지만 한 번만 더 염치없이 네게로 네 곁으로 다가가려고 한다. 병원의 무연등 처럼 빛나는 네 곁에서 내 그림자가 사라지기를 기다리며 다시 너와 같이 빛날 수 있기를 바라며 네게 전화를 걸었다.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점차 태양을 떠올리고 있었다. 하늘은 파스텔톤의 오만가지 색을 띠고 나와 너는 하얀 입김이 자꾸 뿌옇게 가리는 새벽의 하늘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때 내 몸에서 검은 그림자가 떨어져 나가는 건 너도 나도 아무도 모른 체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아마도 청춘이었던 것이다.

마침내 빚어진 푸른 봄.

아픔과 함께 피운 꽃은 모두에게 사랑을 받진 못해도 나에게만은 언제나 사랑스럽고 정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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