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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4편

by 석현준

새해의 다짐은 작심삼일이라고 했던가

그게 오늘인 것 같다

새해라고 읽기 시작했던 겨우 반만 읽고 접어버린 작은 책 한 권을 보면서 그때가 떠올랐다

내가 가장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던 그때가


이른 새벽, 원룸을 아득하게 가득 채우는 작은 알람시계소리에 눈을 떴다. 누군가는 그렇게 작은 집에서 살면 안 갑갑하냐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나에겐 첫 보금자리였다. 아마 내가 기억하는 처음으로 내가 '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장소였다. 내 일상은 남들과는 친구들과는 조금 많이 다를 수도 있다. 아마 누군가는 지금까지 술에 취해서 술을 끊겠다고 다짐한 내 모습을 기억하고 비틀거리며 집으로 걸어갈 수도 있고 누구는 아직 잠에 취해서 단잠을 이루고 있을 수도 있다. 이것들이 평범한 갓 어른이 된 아이들의 모습일 거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다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평범하지 않으니까 사실은 나도 평범하고 싶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아직까지도 철없이 부모님께 실없는 소리도 하고 친구들과 놀고 이렇게 딱 대학교 입학식까지만이라도 쉬고 싶었다. 난 그럴 수가 없었고 그래서 일을 하기로 했다. 이유는 말을 하지 않아도 모두 알 수 있듯이 돈이었다. 언제나 세상은 내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이런저런 별 생각을 다해가면서 택배 승하차장에 도착했다. 일명 까대기였다. 과메기, 김치, 귤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직은 겨울이라 목장갑을 껴도 손은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해가 뜰 때쯤 되니 일이 끝났다. 내 온몸에는 먼지가 붙어있고 김치가 들어있던 상자가 터졌는지 바지엔 김치 국물이 묻어있었다. 일당을 받고 나서 얼른 다른 일을 하러 나섰다.


편의점 알바 겨울엔 따뜻하게 여름엔 시원하게 일할 수 있어서 좋은 일인 줄 알았는데 사람을 응대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다 먹고 나서 쓰레기 청소 안 하고 가는 중학생 아이들부터 멀건 대낮에 술 담배를 사러 오는 고등학생들, 애가 마신 건데 좀 어떠냐며 계산을 하지 않고 나가는 극성 아줌마까지 모든 진상이란 진상을 상대하는 것 같았다. 손님만이랴 사장님도 역시였다.


진상 손님들 오면 그냥 내쫓으라고 말했지만 말 뿐이었다. 매출 떨어지게 왜 손님을 내쫓냐, 내가 언제 그냥 손님을 내쫓으라고 했냐 자신이 빠져나갈 구멍을 언제나 만들어두고 일이 꼬이면 바로 손 빼시는 사장님. 세상은 내게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았다. 아니 조금은 주었다. 하지만 내가 발로 걷어차 버렸을 뿐이었다. 그땐 일에 치여서 사람들에게 치여서 언제나 넌 뒷전이었다. 참아주고,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널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바보처럼. 너와의 관계는 조금씩 소원해져 갔다. 그저 힘들다는 핑계로 나는 내 생각만 했다.


지금 와서는 모든 걸 알 수 있지만 그땐 몰랐다.

사실 그때 널 놓지 말았어야 했다.

다시 잡았어야 했다.


그해 봄, 나는 쓸쓸하게 군대로 입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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