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느낀 것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어쩌면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야 보이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혹시 꿈을 꾸는 것도 죽었던 것일까?
나는 어떻게 되었는지 영문도 모른 채 절벽에 매달려있었다. 팔에는 핏줄이 튀어나오고 나는 온 힘을 다해서 매달려 있었다. 나는 매달려있는 중에도 목이 터져라 살려달라고 외쳤다. 내 목소리는 메아리쳐서 여운을 남기었고 그 소리를 들은 누군가는 날 도와줄 거라는 작은 소망이 있었다. 하지만 내 팔은 점점 힘이 빠져갔고 내게 다가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아마 그곳에는 사람이 없었을 거다. 내 힘이 다했을 때 내 손은 풀려갔고 나는 떨어졌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슬로모션으로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의 시작을 향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귓가엔 바람소리가 들리고 손에서 나는 피는 핏방울이 되어서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조금은 의아했지만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떨어지고 있었고 땅바닥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쯤에는 주마등이 스쳤고 나는 기억을 잃었다. 내가 다시 깨어났을 때에는 작은 바람소리가 들리고 나는 생각했다.
'천국인가?'
그리고 눈을 떴을 때에는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었다. 절벽에 매달려있을 때에 보았던 그 전경 그리고 나는 다시 절벽에 매달려있었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실감이 나게 손이 저렸다. 눈에선 눈물이 떨어지고 나는 작은 안도와 한탄이 조금 뒤섞여있었다. 죽지 못했다는 그렇지만 살았다는 여러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내 생각에 결론이 나왔을 때에는 나는 내 생각을 바로 실행에 옮겼다. 손을 놓았다.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생각했던 그대로였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다. 조금 떨어지나 싶더니 나를 누군가가 잡아주었다. 그리고는 나를 위로 끌어올려 주었고 나는 역광 때문에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작게 토닥거리는 것 같았다. 이것들은 모두 꿈이었고 어쩌면 아직은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는 걸 수도 있겠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옆을 돌아보니 네가 아직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방을 빠져나가서 창밖을 보니 오늘은 날씨가 흐렸다. 어제는 밝았고 오늘은 흐렸다. 아마 인생 같았다. 어제가 아무리 환상적으로 좋았더라도 오늘이 오면 그 환상은 쓸쓸하게 막을 내린다. 오늘은 좋을 거라는 기대감과 함께 있지만 오늘이 별 볼 일 없는 하루가 되면 어제와 비교하게 된다. 커다란 롤러코스터처럼 그리고 그런 날들이 조금 더 지나면 이제는 누군가에 기억 속에서 추억 속으로 숨어든다. 작년을 너만 바라보고 평가한다면 더없이 좋았지만, 너를 빼고 본다면 솔직히 힘들었을 거 같다. 그렇게 너는 내 삶 속으로 소리소문 없이 스며들었다. 어쩌면 내가 네게로 들어간 걸 수도 있겠다. 내가 널 찾은 건 내게는 벅찰 만큼 큰 행운이었고 이제 나는 너와의 날들을 추억하며 기대하며 살아가야지.
나는 너를 보며 웃었다. 아마 네가 잠에 취해서 웃고 있는 웃음이 내게도 전염되었다. 아무렴 좋았다. 그냥 아직은 살아가야겠다는 느낌이었다. 죽고 난 뒤에는 아무것도 느끼지도 보지 못하니까 아직은 아니었던 것이다.
어제 본 아침 햇살에 일렁이는 윤슬이 자꾸 기억났다.
말로 설명할 수 없게 부드럽고 찬란하던 빛들이 내게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래서 오늘은 너와 붙어있기로 했다. 내 꿈이 너무 흉흉해서, 어쩌면 꿈에서 날 구해준 사람이 너일지도 몰라서 너랑 함께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