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는 싶지만, 발걸음이 쉽게 떼어지지 않는 곳.
수산시장을 방문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싱싱한 수산물을 먹기 위해서 사실 수산시장만한 곳도 없지만, 그곳이 그리 유쾌한 곳이 아니라는 것. 포털사이트에 '수산시장' 네 글자만 쳐봐도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과거에 비해 수산시장 문화가 많이 개선되었다 해도 여전히 뿌리깊게 인식된 그 곳만의 이미지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시장 가는데 뭘 그리 걱정하냐...'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직도 누군가에겐 수산시장이 도전하기 꺼려지 두려운 공간일 것이다. (수산시장 갈 때 수산물 회사에 다니는 나를 꼭 데리고 가려고 하는 내 주변 친구들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나의 친구들을 위한 '수산시장 미니 가이드북'을 만들어볼까 한다. 수산물 회사에 다니면서 습득한 잡다한 팁(?)들을 영혼까지 긁어 모아 방출해보겠다.
대부분은 "돌아다니다 보면 괜찮은 곳에서 살 수 있겠지." 혹은 "그냥 가격을 싸게 부르는 곳에서 사야지."라는 생각으로 왔다가, 입구에서부터 호객 상인에게 잡혀버린다. 그러다 얼떨결에 구매까지 해버린다. 만족을 하면 다행이지만, 아무런 비교·대조 없이 구매해버리면 도대체가 이게 맞나?싶다. 옷가게를 가서 옷을 사더라도 이곳저곳 비교해서 가장 괜찮은 옷을 사고싶지, 처음 들어간 매장에서 그것도 점원의 강매로 '구매를 당하고' 싶진 않은 것 처럼 말이다. 사실 이런 경우는 대게 자신이 구매할 품목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1) 수산물 시세를 미리 알고 가자
어떤 수산물을 구매할지 결정했다면, 방문하려고 하는 수산시장의 시세를 미리 확인해보는 게 좋다. 호갱이 되지 않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장비를 장착하는 과정인 것이다. 예를 들어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킹크랩 한 마리를 사먹고 싶다면, 네이버에 '노량진 킹크랩 시세'를 쳐보거나, 수산시장 시세를 알려주는 앱으로 노량진수산시장의 '오늘 킹크랩 kg당 시세'를 확인하면 된다.
이게 되게 귀찮은 과정처럼 보여지지만, 내가 사려고 하는 수산물의 평균가와 최저가까지만 알고 가도 반 이상은 성공이다. 적어도 '부르는 게 값인 상술'에 속지는 않을테니까.
2) 리뷰 확인 후, 방문할 점포 리스트업
시세 확인이고 뭐고 다 귀찮다면, 그냥 방문할 점포 몇 군데라도 미리 점지해두고 가시는 걸 추천. 확인 방법은 간단하다. 이것도 수산시장 전문 어플. 요즘은 정말 어플로 안되는게 없음..! 방문하고자 하는 시장에 어떤 점포들이 있는지 미리 확인할 수 있다. 나는 별점 리뷰를 일일이 확인해가며, 방문할 곳을 3군데 정도 미리 정하고 갔다. 사실, 돌아다니다 보면 거기서 거기이기에 몇 군데 정할 필요도 없다. 리뷰가 많고, 평이 괜찮은 곳은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수산시장을 안 가는 가장 큰 이유이지 않을까. 호객행위.. 시장 중에서도 유독 수산시장이 심한 거 같은데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시장마다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에 '대처법'이라고 일반화하여 쓰기엔 조심스럽지만, 실제 수산시장을 방문하는 고객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들 몇 가지가 있다.
1) 상인들이 말을 걸면 일일이 대답해야 할까?
일일이 반응해 줄 필요가 전혀 없다. 우리야 수산시장이 낯설고 호객 행위가 부담스럽지만, 수산시장 상인들은 그게 일상이다. 물음에 일일이 답하지 않아도 상인들은 신경도 안쓴다. 우물쭈물 망설이는 행동이 오히려 레이망에 걸리기 딱 좋으니,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알아보고 온 데가 있어서요." 혹은 "한 번 둘러보고 싶어요."와 같은 멘트로 적당히 예의를 갖춰 거절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2) 유독 싼 곳은 이유가 있다.
가끔 말도 안 되는 서비스나 가격으로 흥정하며 호객하는 곳이 있다면 싸다고 좋아하지 말자. 특히 미리 알아보고 온 평균가와 많이 차이 나는 가격이라면 의심부터 해야 한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품질로 들어온 수산물은 점포별 시세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3) 무게를 쟀는데 꼭 사야할까?
뭐 찾냐는 물음에 대답했을 뿐인데, 저울로 무게를 재거나 혹은 꼭 사야만 할 것 같은 행동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게만 재면 다행인데, 생선 대가리까지 내리쳐 기절시킨 후 저울에 올려 꼭 사게 만드려는 상인들이 간혹 있다. 구매에 대한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았다면, 구매하지 않아도 된다. 만약 여기서 뭐라고 한다? 수산시장 상인회나 수협에 조용히 신고를..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경우(저울 장난, 불친절한 응대 등)
-갑각류 수율/중량 부족한 경우
-품질이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
-음식을 먹고 탈 난 경우
가장 좋은 것은 사장님과 직접 얘기하여 원만한 소통으로 문제를 마무리 짓는 것이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게 아니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 "다신 안 가고 말지."라고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부당한 일에 맞설 수 있어야 '요령'이라는 것이 생긴다.
혹시, 원만한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방문한 시장의 상인회나 수협에 연락하여 민원 신청을 하면 된다. 다만 품질이나 갑각류 수율처럼 기준이 애매한 경우는 보상이 어려운데, 이 때 알고있으면 정말 도움되는 꿀팁 하나가 있다. 앱으로 보고 간 점포에서 수율 문제가 일어난다면, 앱 고객센터에 사진을 찍어 연락하면 보상이 가능하다. 실제로 이러한 제도(?)를 몰라, 아쉬우면 아쉬운대로 넘어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 글을 읽으신 분이라면, '수산시장에서도 보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꼭 기억해두시길!
배송비가 비쌀뿐..^^ 수도권 기준으로 수산시장 회도 퀵배송, 당일 택배배송, 픽업, 편의점배송이 가능하다. 주문은 전화나 앱으로 할 수 있다. 퀵 배송비는 서울을 기준으로 10,000원부터 시작하고, 당일 택배배송비는 조금 저렴하지만 대부분 오전 중으로 주문을 완료해야 한다. 집에서 간단히 먹기엔 동네횟집 만한 곳이 없긴 하지만, 제대로 된 만찬을 즐기고 싶은 날에는 수산시장만한 곳도 없는 게 사실이다. 멀어서 문제지. 아무튼 다 장·단점이 있으니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결국은 미리 확인하고, 미리 주문하고, 신고까지 해야하는 방어기제 가득한 가이드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런 글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과거에 비해 수산시장 문화가 점차 개선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수산시장을 자주 오고 가는 나는 적어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보고 있다. 수산시장을 도전하고 싶지만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오늘의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