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김장김치와 대파 한 단의 행복

by 유연


시집간 딸에게 친정 엄마는 아직도 무엇이든지 마냥 해주고 싶은 마음뿐인데

언제 철이 들었는지, 엄마집 김치냉장고에 김장김치를 한가득 채워 주던 날!


얼마나 기쁘고, 고맙고, 행복했던지.....

딸은 “예전에 담가주던 엄마 손맛 김치가 생각이 나지만, 엄마의 힘들어하시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이젠 내가 할 차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하였다.


우리 딸이 불혹에 가까워지면서부터, 제 자식을 키우고 한 가정의 주부로 생활을 하다 보니,

자신의 바쁜 사회생활 속에서도 살림꾼이 다 되었나 보다.


이웃 지인 언니들과 품앗이하면서 알뜰하고 야무지게 배운 솜씨로

정성을 담아 담근 딸의 김장김치가 나에게는 큰 보물처럼 소중하였다.

남편도 김치를 먹을 때마다 맛있다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해하는 미소를 짓는다.


딸내미가 담아주는 김장김치 덕분에 그동안 묵은지 걱정도 없이 잘 살아왔었는데...

작년 가을, 김장철이 다 지나가는데도, 어쩐 일인지 딸이 김장한다는 소식이 없었다.

딸은 한동안 건강이 나빠져서 김장철을 놓쳤는데도 엄마에게 말도 못 하고 혼자서 걱정을 했던 것 같다.


“염려하지 말거라. 김장을 못하면 사 먹으면 되지, 건강이 최우선이니 건강부터 잘 챙기도록 하자"며 딸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딸에게 주려고 미리 사놓았던, 태양에 잘 말린 고춧가루와 갈치속젓 한통이 있었기에 그 재료를 곁들여서 뒤늦게나마 온 가족이 좋아하는 파김치, 갓김치라도 담아보려는 마음으로 마트와 시장에 돌아다녀 보았지만,

김장철에는 그토록 탐스러워 보였던 쪽파나 갓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나는 헛웃음만 나왔다.

3년 동안 딸이 해주던 김장김치에 의존하여,

때를 놓친 줄도 모르고 나태하게 살아온 나를 자책해 볼 수밖에....


독감으로 고생하느라 어떻게 맞이한 지도 모를 새해가 어느새 훌쩍 한주가 지나고,

최강 한파가 밀려왔던 날, 아파트 입구에서 큰 트럭에 쌓여있는 대파를 보고 너무 반가웠다.


한겨울 추위에 대파를 팔고 계시는 할아버지가, 언제 다 팔고 가시려나 걱정이 되면서도 고마운 마음으로 큼직하게 묶여있는 무거운 대파 한 단을 사들고 왔다.


저장용 대파인가 싶기도 하고, 아니면 김장철에 다 팔지 못한 대파일지도 모른다.

이 대파도 나처럼 김장철을 놓쳤나 보다.

어느 해인가 초가을에 큼직한 대파를 숭숭 썰어서 대파 겉절이를 담아 보았는데,

고기와 곁들여서 먹어보니 맛있었다.

대파김치는 곰삭아도 맛있다,


이번에도 그렇게 해 먹어보자. 대파김치를 한 아름 담아두니 행복하고 부자가 된 기분이다.


무엇이든지 때를 놓치면 모든 계획에서 어긋난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작은 일도 소홀히 하지 말고, 매사를 꼼꼼히 점검하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긴장을 늦추지 말자.

나이의 깊이를 더할수록 내 삶도 거듭나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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