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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의 탄생

81. 네 고단함에 불평하지 마라

by 판도



이런 말 한 번쯤은 해보시지 않으셨나요?


"힘들어 죽겠네."


사람의 말도 유행을 타기에 한 때는 '~해서 죽겠네'라는 말이 전염병처럼 번진 적이 있습니다. 물론 안타깝게도 이 말은 지금도 어디선가 쓰이고 있을 겁니다. 이처럼 부정적인 사고가 지배하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따라 쓰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이 말을 습관처럼 말끝마다 붙여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음식을 맛있게 먹고서는 배불러 죽겠다니요? 정말 환장해 죽겠네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고, 당연히 제게도 들려주고 싶은 말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이런 말을 쓰지도 말고 생각도 하지 말자는 겁니다.


세상의 일이란 대부분 힘이 들게 마련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힘든 일이라도 나름 차이가 있습니다. 일을 하는 동기에 따라 그 격이 달라지는 것이죠. 지금 간절히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칩시다. 다른 열 일보다 정말 하고 싶고, 안 하면 죽을 때까지 후회가 될 것 같은 일이 눈앞에 놓여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면요? 끼니를 거르고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해야 하는 일이라면 어떻게 하실 건지 묻고 있는 겁니다. 자, 어떻게 하시렵니까?


아, 제게도 묻겠습니다. "판도, 너라면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런데 말이지요. 지금 바로 제 앞에 그런 일이 놓여 있습니다. 물론 식당 일이 아닙니다. 식당 일은 생업이지요. 생업도 미친 듯이 해내야만 하지만요.


이렇듯 자신이 원해서 하는 일이라도 힘들기는 매한가지이지만, 성취욕이란 차원 높은 동기가 있기에 견딜 수 있을 겁니다. 배드민턴 세계 1위 안세영 선수가 떠오르네요. 문제는 아무리 좋아서 하는 일이라도 그 친구처럼 대단한 위치에 오르기도 어렵거니와, 그 친구만큼 죽도록 노력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지금의 저처럼 적당히 핑계를 대며 그냥 보통 사람으로 살아갈 겁니다.


한편 마지못해 먹고살기 위해 어떤 업에 뛰어드는 사람은 무얼 하나 해도 힘들게 일하기 쉽습니다.

저라는 인간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힘들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손님이 무례하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일을 못한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제게 닥친 모든 일에 대하여 불평을 했습니다.






웍질을 처음 배울 때를 생각하다가 문득 영어 필기체를 연습하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중학교를 갓 들어가 영어를 배우면서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잉크와 펜(만년필이 아니었어요)을 준비시켜 필기체를 익히게 하셨지요. 그 시절에는 아마도 연습장에 수도 없이 필기체를 그렸을 겁니다.


그런데 말이죠. 저는요 아직 길이 안 든 펜촉의 서걱거리는 느낌이 너무 좋았답니다. 몇 글자를 쓰고 다시 잉크에 펜촉을 담그는 것도 너무 좋았고요. 지금도 소위 아날로그 감성이 살아 있기에 가끔은 만년필로 낙서를 끄적거리기도 하고요.


웍질을 처음 배울 때가 생각납니다. 웍에 생쌀을 한 줌 넣고 마른 웍질을 하는 것이죠. 그 짓을 지겹게 반복하다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지? 하는 한심한 생각이었습니다.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창피하기도 하고 왕년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데 하는 쓸데없는 자존감도 고개를 들었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조차 못하게 막아버리는 몹쓸 뇌 덩어리는 대체 어떻게 혼내야 할까요? 역시 자신의 성공을 방해하는 자는 그 자신 뿐입니다.


두 번째로 들었던 생각은 이거 이 정도만 하면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닌가 하는 근거 없는 자만심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다는 겁니다. 도대체 몇 분이나 연습을 했다고 그런 건방진 생각을 했는지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웍질을 한 지 7년이 지난 지금도 손님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면 급한 마음에 낙지가 웍 밖으로 튀어 나가는데 말입니다.






얼마 전의 일입니다. 알바생이 새로 들어왔는데 불과 보름을 버티지 못하고 도망을 치더군요. 첫날부터 헤매던 그 친구에게 며칠이 지나 물었습니다. 왜 이 일을 하게 되었지? 인생 경험을 쌓으려고요. 그런데 많이 힘드네요.


저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리고 걱정을 했습니다. 이 정도 일로 힘들다고 하는 걸 보니 오래 못 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그 친구 걱정을 한 것이 아닙니다. 가게 걱정을 한 것입니다. 시간 낭비하면서 별 도움도 안 되는 사람을 쓰고 있네 하고요.


다행히도(?) 그 친구는 며칠 못 가 스스로 그만두었습니다. 같이 일하는 친구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은지 쉽게 그만두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인생의 선배로서 몇 마디 조언을 건넸는데, 정작 그 친구는 떠날 때 인사도 안 하고 사라지더군요.


그 친구는 앞으로 어느 곳에서 어떤 인생 경험을 쌓을까 궁금해집니다. 저도 그 친구 덕분에 또 하나의 경험을 쌓았습니다. 경험을 쌓겠다고 일을 하겠다는 사람은 절대 가까이하지 말아야 하겠다고 말이죠.


지금 함께 일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알바생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함께 일한 지는 몇 달이 되었습니다.

현재 일하는 알바생 중에서 가장 일을 잘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자꾸만 실수를 하고 몇 번이나 알려줘도 까먹고... 그런 식이었습니다. 저한테 혼도 많이 났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다른 알바생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7년 식당 일을 하면서 이런 학생이 없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면, 조금이라도 자신이 일하는 곳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던 것입니다. 보통은 아무 생각이 없거나, 시키는 일만 하는 알바생이 대부분이었는데 말이죠. 이기적인 식당 주인 입장에서는 가장 훌륭한 학생이었습니다. 당연히 식당이 아니라도, 어디에 가더라도 인정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고마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누구나 잘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나름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불평하는 삶은 잘 살 수 없는 삶임을 뉘 늦게 깨달았습니다. 세상 이치가 그렇게 돌아갑니다. 나만 예외가 되는 경우는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제가 불평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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