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음식 이야기
지난주 전주엘 다녀왔습니다. 수년 전 갔을 때는 그다지 인상이 좋지 않았습니다. 전주 한옥마을을 말하는 겁니다.
몇 년 전 느꼈던 그곳의 인상은 이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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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이라기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고즈넉하여 유유자적할 수 있는 곳으로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망가진 인사동에 다름없었습니다. 한옥마을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한 광경이 거리 곳곳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껍데기만 한옥이고, 속을 뜯어고친 '한옥 상가'라고 부름이 마땅해 보였습니다. 명색이 한옥마을이라는 곳에서 양꼬치와 탕후루, 튀르키예 아이스크림 돈두르마를 파는 광경은 정말 꼴불견이었지요. 그 음식을 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풍물시장에서나 볼 법한, 한옥마을에는 어울리지 않는 음식이 즐비한 것이 불편했던 것입니다. 외국인 관광객이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진땀이 흘렀습니다. 우리의 전통이 담긴 한옥마을에서 정체성을 훼손시키며 외국 이곳저곳의 음식을 파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상술에 지나지 않습니다.
두 번 다시 찾지 않으리라 마음먹은 그곳을 가족들과 함께 다시 찾아 나섰습니다. 아내와 딸이 기획한 여행이라 군소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전주 한옥마을의 풍경은 많이 개선되어 있었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보는 눈은 다 똑같은 것이었지요. 뭐 그래도 어울리지 않는 물건을 파는 민망한 곳이 여전히 눈에 띄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지 장사를 하기 위해 개조한 빈 집들도 많았습니다. 곳곳에 임대 팻말이 붙어 있었으니까요.
전주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해보겠습니다. 전주 하면 떠오르는 음식 중의 하나가 비빔밥입니다. 그러나 그다음으로 손에 꼽을 두 번째 음식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전주 분께는 죄송하지만 제게는 전주의 넘버 투 음식이 없었습니다.
전주에 도착해 택시로 이동할 때의 일입니다. 기사 아저씨께 전주 음식을 추천해 달라고 하니 무슨 음식을 좋아하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이 질문이 제게는 의아했습니다. 외지인이 물어보면 그냥 자연스럽게 전주 고장의 베스트 음식을 줄줄이 나열해 주실 줄 알았는데, 반문을 하는 겁니다. 이 분의 설명을 듣고서야 질문의 의도를 깨달았습니다. 이 분은 전주 음식보다 맛있는 식당을 생각했던 것이지요.
아무튼.
두 번째 전주 음식으로는 한정식이 리스트에 올랐습니다. 뭐 한정식이 전주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합리적인 결정이라 생각합니다. 짧은 일정이라 먹는 것은 다음으로 미뤘지만요.
그래서 무엇을 먹었나 말씀드려야 할 텐데 아쉽게도 특별한 것이 없네요.
한 끼는 아내와 딸이 선택한 메밀국수, 또 한 끼는 아들이 먹고 싶어 한 피순대였습니다. 제법 유명하다는 맛집을 찾았지만 솔직히 그저 그랬습니다. 다음에는 꼭 비빔밥과 한정식을 먹고 전주 음식 자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왠지 전주에 미안한 느낌.
현재 저희 식당에서 가장 잘 팔리는 메뉴는 낙지볶음입니다. 그다음이 낙지순두부이고요. 나머지 네 개의 메뉴도 골고루 팔리는데 이게 전부 낙지와는 무관한 음식입니다(이거 좋지 않습니다). 결국 낙지집에서는 낙지 메뉴가 가장 잘 팔리고 있네요.
처음에는 욕심이 앞서 다른 낙지 전문점에서 파는 메뉴는 다 팔았습니다.
낙지볶음, 산낙지볶음, 산낙지회, 탕탕이, 연포탕, 낙지해물파전과 그 외 해산물 메뉴 다수.
그러나 이제는 영리해졌습니다. 메뉴가 많다고 장사가 잘되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주 메뉴를 정해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식당 장사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한 것은 그래야 오래 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잡스러운 메뉴는 걷어 내고 전문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여야 합니다.
식당을 언제까지 할는지 모르지만, 내년부터는 낙지볶음 한 메뉴만 파는 것이 제 희망사항입니다. 물론 초능력자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기에 희망대로 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요.
아무튼 주변의 잘 되는 식당을 보면, 주력 메뉴가 하나씩 꼭 있습니다. 어쩌구 순댓국은 순댓국이 맛있어야 하고, 저쩌구 감자탕은 당연히 감자탕이 맛있어야 합니다. 다른 건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구색일 뿐입니다.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 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만두입니다. 낙지볶음이 아닙니다.
이왕 식당을 할 거라면 좋아하는 음식, 잘하는 음식을 하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딜레마가 생깁니다. 저는 만두를 좋아하지만, 잘 만들지는 못합니다. 정말 만두집을 하고 싶다면 비법 전수라도 받아서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관건은 만두를 만드는 수고를 제가 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부려 만들면 비용이 발생하여 어려워집니다(프랜차이즈라면 다르겠습니다). 사장이 직접 만두를 만드는 것이 원가 절감 측면에서 가장 좋겠지만 그렇게 하기에 현실이 녹록지 않습니다. 솔직히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만두를 만드는 수고도 감당할 자신이 없고 수익을 내는 식당으로 일으킬 자신도 없습니다.
만약에라도 누군가 식당을 한다면 본인의 성향에 잘 맞는 음식이 있을 것입니다. 채식주의자가 고깃집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비건 음식점을 하는 것도 고역일 것입니다. 사장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식당을 하기는 어려워도 최소한 무난한 쪽으로 음식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세상의 모든 식당이 잘 되면 좋겠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손님을 감동시키고 사장도 돈을 많이 벌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먹는 일만큼은 걱정도 고민도 없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끝